기시 유스케의 원작소설 <검은집>을 그야말로 오싹하게 봤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검은집>에 대한 기대도 커져갔다. 캐스팅이 약간 미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배우의 열연때문인지, 내가 그 배우에 대해 잘못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인지 제법 그럴싸한 인물을 그려냈다. 



  보험회사 사정담당자로 첫 출근을 한 준오. 그가 처음으로 만난 고객은 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 120일마다 병명을 바꾸는 사람. 준오의 상사는 그런 사람은 사기꾼이라며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준오는 되려 그 남자의 아이를 들먹여 양심에 호소한다. 이렇듯 준오는 다소 바보스러우리만큼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 여자에게 자살하면 보험금이 지급되냐는 전화가 찾아오고, 어린 시절 동생의 자살을 경험했던지라 회사의 규칙을 어기고 고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얼마 뒤, 수금원과의 마찰이 있어서 항의가 들어왔는데 준오를 콕 찝어 지명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게 된 검은 집. 준오는 그 곳에서 그 집 아들이 목을 매 자살해있는 것을 발견하고, 혹 부친(충배)에 의한 살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보험금 지급을 보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충배는 매일 3시가 되면 찾아와 준오를 찾아 어서 보험금을 지급해달라고 협박(?)을 한다. 그렇게 충배와 관련을 맺게 된 준오는 가서는 안되는 영역까지 걸어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원작을 워낙 무섭게 봐서 그런지 영화가 원작보다 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다소 느린 전개때문에 살짝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속도가 붙어 괜찮았지만. 또 하나, 불필요한 연장전(?)과 같은 부분이 있어서 저 부분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 나는 그렇게 약간 아쉬움을 느꼈지만 대체적인 관객들은 '무섭다'는 반응들이었던걸로 미뤄보아 무섭기는 했는 듯. 내가 어떤 공포영화를 보고도 무서워한 적이 없기때문에 무서움을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같이 간 사람도 몇 번이고 화면에서 눈을 돌리는 것으로 보아 무섭기는 했던 것 같다. (무서웠던 건지 잔인했던 건지)



  영화 속에 나온 말처럼 사이코와 사이코패스는 다르다. 단지 죽이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와 그 사람을 죽이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예를 들어,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죽이는 사이코패스는 격이 다르다. 사이코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면 사이코패스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고, 자신의 앞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없애버리는 것. 그게 사이코패스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치료법도 없고, 사회로부터 격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 사이코패스의 실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현실에서 만나고 싶지도 않다) 이 영화 속에서는 '냉정한 살인마'보다 조금 더 심한 정도로 표현된 듯. 한국 영화에서는 낯선 소재이긴 했지만 오히려 사이코패스라는 장치를 이용함으로 개연성을 쉽게 획득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황정민을 제외하고 크게 유명한 배우가 없어서(인지도면에 있어서) 지나치게 황정민에게 기대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행히 박충배 역을 맡은 강신일이나 충배의 아내 역을 맡은 유선이 영화와 잘 어울러졌던 것 같다. (유선은 캐스팅됐을 때 사실 내 걱정을 가장 많이 샀던 배역인데 여배우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배역에 몰입을 잘한 듯) 준오의 애인으로 나온 김서형의 비중이 너무 작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캐스팅도 이만하면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포스에는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간 나온 한국 공포, 스릴러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는 손색이 없었던 영화였다. 영화가 나오기 전 모 미스터리소설 클럽에서 어떤 분께서 이 영화는 '모 아니면 도'가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 걸 봤는데, 내 생각으로는 모까지는 안되도 윷정도는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는 편이 더 괜찮을 것 같은 영화였다.


덧) 표를 나눠주신 아프님께도 감사를~ㅎ
참고로 첫번째 사진은 원작자인 기시 유스케입니다.
영화 속에 엑스트라로 나온다고 하던데(보험회사에 찾아온 고객으로) 발견을 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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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검은 집>
    from Mrs. Nobody 2007-06-24 00:58 
    어제 남편과 동네 극장에서 <검은 집>을 봤다. 사실 포스터도 어설프고, 황정민도 왠지 안 어울려 보여서 별 관심 없었는데. 알라딘에서 기시 유스케의 소설을 원작으로 ...
  2. 검은집
    from 윤소니서재 2007-07-06 17:38 
    http://blog.aladdin.co.kr/trackback/imagination7/1327990    
 
 
마늘빵 2007-06-19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오셨군요. :) 저도 보고팠는데 어제 레폿한다고 집에 있어놓고는 일찍 자버렸습니다.

이매지 2007-06-19 12:34   좋아요 0 | URL
갔는데 아프님 이름이 없다고 해서 난감.
그렇지만 뭐 영화 시간이 임박해서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갔다가 깜짝 손님으로 황정민이 와서 무대인사까지 했다는 ㅎㅎ

프레이야 2007-06-1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소설 원작이군요. 이 영화 기대되는 걸요. 마지막 사진의 저 배우, 조연으로
연기 잘 하지요.

이매지 2007-06-19 14:46   좋아요 0 | URL
강신일씨도 그렇고 유선씨도 그렇고 원래 연기는 잘하는 배우들인데 아무래도 인지도가 떨어지다보니 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괜찮았어요^^ 혜경님도 한 번 보세요^^ 영화도 보시고 책도 보시면 올 여름 시원하게 보내실 수 있을 듯 ㅎ

스파피필름 2007-06-1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민 검은 뿔테안경을 쓰니 이미지가 굉장히 달라보이네요.. 소설을 먼저 읽고 볼까 갈등중이에요.. ㅋㅋ

이매지 2007-06-19 15:49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일단 영화를 보시고 소설을 읽으시는 게 더 좋을 듯.
전 영화보다 소설이 더 좋았거든요^^

윤소니 2007-07-0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섭게 읽은 책인데.. 영화로 보니 새롭더군요.. ㅋ

이매지 2007-07-06 19:32   좋아요 0 | URL
책은 정말 무서웠는데 영화는 글쎄^^;
그래도 뭐 보통이상은 된 것 같았지만요 ^^
 
붉은 죽음의 가면 기담문학 고딕총서 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정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품절


고통의 종류는 다양하다. 지상의 고통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고통은 광활한 지평선에 무지개처럼 걸려 있다. 고통의 빛깔은 무지갯빛만큼 다채롭고, 무지개가 그렇듯 선명하게 구분되는 동시에 함께 어우러져 있다. 고통을 광활한 지평선에 걸려 있는 무지개에 비유하다니! 내가 아름다움에서 일종의 추함을 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평화의 계약에서 슬픔의 비유를 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윤리학에서 악이 선의 결과이듯, 슬픔은 기쁨에서 태어난다. 지나간 행복의 기억은 오늘의 고통이며, '현실'속의 번민은 '상상'속의 환희에서 기인한다. -27~8쪽

어른이 되면서 동물들은 내게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충실하고 영리한 개에게 애정을 느껴본 사람은 여기서 얻는 희열이 어떤 것이고 또 얼마나 강한 것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한갓 인간이라는 존재의 우정과 의리가 얼마나 하찮고 얄팍한 것인가를 시험해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은, 사심 없고 희생적인 짐승의 사랑 속에서 마음에 직접 와닿는 뭉클한 뭔가를 느끼게 마련이다. -48~9쪽

가장 깊은 잠 속에서도, 아니 광기 속에서도, 혹은 정신을 잃고 기절했을 때라 해도, 죽음 속에서, 무덤 속에서도 모든 것을 전부 다 잃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에게 불멸이란 없다. 아주 깊이 잠들었다 깨어날 때, 우리는 거미줄을 걷어내듯 꿈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꿈이라는 거미줄은 너무나도 가늘기에) 우리는 꿈을 꾼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리는 데는 두 단계가 있다. 첫째는 정신 혹은 마음이 돌아오는 단계이고, 둘째는 육체가 돌아오는 단계다. 둘째 단계에 도달한 순간에 첫 단계의 인상을 기억할 수 있다면, 이런 인상은 심연 저편의 기억에 대해 많은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69~70쪽

아, 말이란 얼마나 공허한지! 우리는 한갓 단어의 온갖 소리 뒤에 영적인 것에 대한 엄청난 무지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191쪽

이런 느낌이 드는 글들 중에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조지프 그랜빌의 책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것이 그저 기묘한 글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글쎄, 이유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의지는 존재하며, 사라지지 않도다. 신의 본성은 열심이며, 따라서 신이란 만물에 스며 있는 위대한 의지일 따름이로다. 인간이 천사에게 굴복하는 것과 죽음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한 의지의 박약함 때문일 뿐 다른 것이 아니로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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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정신분석 프로이트 전집 14
프로이트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구판절판


표면적인 꿈속에 나타난 눈에 보이는 전체에 연연해 하지 말고 내용의 모든 부분을 분리해서 고려하고 각 부분이 어떻게 해서 꿈꾸는 자의 인상들과 기억들과 자유 연상들에서 연유하는지를 찾는 것, 이것이 꿈의 해석이 일러주는 해석의 기술이다. -92쪽

만일 환자가 자신의 환상을 확고부동하게 믿는다면 그것은 그의 판단력이 붕괴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믿음이 또 망상 속에 있는 비논리적인 것들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모든 망상은 어느 것이든지 한 줌의 진실을 갖고 있다. 망상 속에는 정말로 무엇인가 믿을 만한 것이 있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환자의 확신을 나름대로 정당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근원인 것이다. 그러나 이 한 줌의 진실은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었다. 이 진실이 마침내 왜곡된 형태로 의식에 다다를 때 그에 연결되어 있던 확신의 감정은 보상 작용을 통해 엄청난 강도를 갖게 된다. 이제 확신의 감정은 억압된 진실을 대체하고 있는 왜곡된 대리물에 집착하게 되고 모든 비판에 맞서 이 왜곡된 대리물을 옹호하게 된다. 확신은 말하자면 무의식의 진실에서 그 진실과 연결되어 있는 의식의 오류 쪽으로 이동한 것이고 바로 이 이동으로 인해 그곳에서 고정된 채 머무르고 만다-100~1쪽

표현의 이중성은 증후의 이중성이다. 말 그 자체도 증후인 것이다. 따라서 말은 증후들처럼 의식과 무의식의 타협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는 말의 이중적 기원을 행동의 이중적 기원보다 훨씬 쉽게 판별해 낼수 있는데 하나의 동일한 언어 배열 속에서 말이 갖고 있는 두 개의 의미 하나하나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유연한 언어적 장치의 속성으로 인해 이런 경우는 자주 있다-우리는 흔히 <모호함> 속에 있게 된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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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이사카 고타로의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된 지라 그의 첫 단편집이 나왔다는 소식에 괜히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신치바>의 경우도 단편집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는 일종의 연작소설이라 단편이라 하기엔 뭔가 찝찝한 마음도 드니까. 이 책은 <사신치바>와 같은 연작소설이 아닌 전혀 별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작품의 배열자체가 지어진 순서이기 때문에 각 단편마다 이사카 고타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기에도 좋은 책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이미 이사카 고타로의 몇 편의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중력삐에로, 사신치바,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그의 다른 소설들과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피쉬스토리>라는 제목과 함께 물고기의 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져있는 탓에 이 이야기가 물고기와 관련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렇지만 책장을 한 장 넘기니 앞날개에 피쉬스토리가 무슨 의미인지 등장하고 있어 나의 궁금증은 금새 풀렸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더 증폭됐다고 해야할까?) 피쉬스토리(fish story)란 '1. 허풍. 터무니없는 이야기. 만들어낸 이야기. 낚시꾼이 자기가 낚은 물고기를 실제보다 과장해서 말하기 쉽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2.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소설의 제목. 만년에 폐가에 틀어박혀 벽에 끊임없이 글을 써내려갔다고 하는 한 작가의 유작. 3. 세 장의 앨범을 남긴 채 해산한 록밴드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간주 부분에 1분 정도 음이 끊기는데, 이에 대한 진위 여부는 한때 화제가 되었다. 4. 이 책의 제목. 어느 작가의 열세 번째 작품인데, 2번과 어떤 관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라고 한다. 역시 단순히 이런 정의만 살펴본다고 해서 이 책의 면모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는 총 4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번째 이야기인 <동물원의 엔진>은 한 때는 직원이었지만 팀버 늑대가 우리 밖으로 도망친 사건때문에 그만 둔 나가사와라는 남자가 매일 밤 팀버 늑대의 우리 앞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우연히 밤에 동물원을 찾은 사람들이 그와 몇 년 전 살해당한 시장과의 관계를 두고 자신의 추리를 진행시키는 이야기. 작가는 <독 초콜릿 사건>처럼 한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의 추리를 이끌어내고 싶다고 했는데, 뭔가 말장난을 하는 듯 하면서도 과연 숨겨진 진실은 뭘까하고 호기심이 자극됐던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인 <새크리파이스>는 본업은 빈집털이, 부업은 탐정인 구로사와가 야마다란 인물을 찾기 위해 고구레 마을을 찾아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구로사와가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은 고모리사마를 하는 중이었다. 고모리사마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막힌 동굴에서 며칠을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아직도 이런 풍습이 있구나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구로사와는 뭔가 알 수 없는 의혹에 빠져들게 되고, 마을 촌장인 요이치로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그의 집에 몰래 잠입한다. 그리고 밝혀진 요이치로와 고모리사마에 얽힌 진실. 

  세번째 이야기인 <피쉬스토리>는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글을 가지고 20여 년 전, 현재, 30여 년 전의 이야기가 차례대로 나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저 책의 구절이 등장한다는 점만 빼고 크게 개연성이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그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매력있게 다가왔다. 특히, 그 구절을 노래가사로 삼아 마지막 앨범을 녹음하는 록밴드의 "이 노래가 누구에게 닿고 있는거야"라는 외침은 짠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이야기인 <포테이토칩>에 또 다시 구로사와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조연으로(그렇지만 나름대로 비중있는) 등장한다. 한 때 잘 나갔지만 이제는 한 물 간 야구선수 오자키. 그의 집을 털러 간 이마무라는 집을 털기는 커녕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노닥거린다. 그러던 중 오자키의 집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왠 여자가 오자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전에도 한 번 이런 경험(빈집털이를 하러 갔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기린을 타고 가겠다는 말로 자살하려는 여자를 막았다)을 했던 이마무라는 전화 속의 여자가 말한 장소로 달려가고 오자키를 둘러싼 하나의 음모를 알게 된다. 오자키와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는 이마무라는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그 음모를 막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데...

  네 편이 작품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의 짜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떻게 보면 네가지 이야기는 모두 fish story, 허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잘 짜여진 허풍이 아니던가. 얼마큼 그럴싸하게 이야기하는지가 허풍의 관건이라면 이사카 코타로는 분명 재기발랄한 허풍쟁이리라.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짠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사카 코타로. 그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를 들었다 놓을지 궁금해졌다. 단편이라 뭔가 아쉬움을 남기고 끝나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지만 오히려 그런 여백이 이야기 속의 밴드의 노래처럼 내 삶을 바꿔줄지도 모르는 여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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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6-1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이매지 2007-06-17 15:32   좋아요 0 | URL
아까 리뷰 쓰면서 만두님꺼도 봤어요. ㅎㅎ
저 역시 만두님의 리뷰에 동감했다는^^
 
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구판절판


"탐정이란 건 말이야. 먼저 선언부터 해놓고 이론을 만들어가는 법이야. 요리사도 그렇잖아?"
"요리사?"
"메뉴부터 정해놓은 다음 재료를 사 모으는 것과 뭐가 달라."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26쪽

뜻을 찾아 헤매는 것도 인간뿐일지도 모르지-27쪽

"풍습이란 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무엇을 숨기려고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거지."
"무엇이라는 건 뭐죠?"
"공포나 죄책감 같은 거 말이야, 그리고 욕망 같은 거. 그런거야. 그런 것들을 어영부영 얼버무리려고 풍습이라는든가 설화라든가, 그런 게 생기는 거 아닐까."-74쪽

구로사와는 얼토당토않은 추측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곤란한 상황을 얼버무리려고 적당히 다른 것으로 위장하는 수법은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것이 성에 대한 것이거나 죽음에 대한 것, 공공연히 밝히기 힘든 것일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은폐할 가능성이 높다. -75쪽

공동체를 이끌어가려면 권위만으로는 부족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통치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도 되면서, 사람들을 견인해나가야만 해. 그 대신 개개인의 공포나 불안, 불만을 받아줄 사람도 필요하지. 내 아버지는 엄격했어. 할아버지는 사람이 좋고 너그러웠지. 두 분 다 마을 사람들의 불만을 샀어. 엄격하면 굴욕이, 만만하면 경멸이 생겨나지. 제대로 거느리려면 그 양쪽의 균형이 필요해. -128쪽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139쪽

애초에 말이야, 정의라는 건 주관적인 거잖아. 사람들이 그런 걸 내세우면 무서워. -141쪽

내 용기가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젊음으로 햇빛을 반사하는 수면을 한층 빛나게 할 것이다. -152쪽

큰 문제가 있다. 사악한 것은 번창하고 올바른 것은 짓밟힌다는 흔해빠진 사실이다. 악은 응징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언젠가는 파멸한다는 일반적인 경우의 일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선한 자가 승리를 얻었다는 예는 최근 듣기 힘들지 않은가. -157쪽

정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악에 필적하지 못했던거예요. 이 사실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분통 터져요. -158쪽

"여느 사람들 같았으면 정의의 사도라고 하면 변호사나 경찰, 소방관 같은 직업을 떠올리겠지만 아버지는 달랐어요." 그는 지친 목소리로 자조하듯 말한다. "아버지 말씀이, 중요한 것은 직업이나 직함이 아니라 준비라는 거예요."
"준비?"
"강한 육체와 흔들림 없는 마음. 그것들을 익히는 준비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요."-158쪽

"남자란 좌우지간 잘난 체를 해서 자신을 포장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죠." 나는 대뜸 대답했다. 남성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은 나에게도 몇 명쯤 남자들이 꼬인 적이 있다. 노부인의 말처럼 "난 고급차를 몰고 다녀" "고교 축구로 국립대에 갔지" "난 치한은 결코 용서 못 해"하며 자신의 장점을 큰소리로 내세우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사실과 전혀 다른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그 차는 사업을 위해 팔았다는 둥, 우리 고등학교는 축구 명문이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만 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둥, 그 치한한테 대들었다가 우리에게 불똥이 튀다니 그보다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냐는 둥 횡설수설 핑계를 둘러대어 나를 놀라게 했다. -163쪽

내 좌절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비통과 우스꽝스러움에 강에도 바다에도 살 곳이 없어질 것이다.-177쪽

내 하루는 이런 식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그 하루가 쌓인 1년도 결국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겠지-267~8쪽

"난 타인을 무시해"하며 냉정하게 말했다. "이모저모 신경은 쓰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래서?'라는 느낌밖에 못 가져. 그래서 어쩌라고? 타인을 향한 내 관심은 그 정도 선이야."-269쪽

이 세상엔 무리한 일투성이야.-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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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재밌을 것 같아서 리스트에 담았습니다. ^^

이매지 2007-06-16 14:46   좋아요 0 | URL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과는 다른 맛이 있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혹 엘신님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넘겨드리지요 ㅎ

비로그인 2007-06-1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럼, 이매지님 만날 때까지 기다릴까요? (웃음)

이매지 2007-06-17 15:45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어느 세월에 만나게 될런지. ㅎㅎ

비로그인 2007-06-19 10:39   좋아요 0 | URL
푸하하핫. 지구에 빙하기가 오기 전에는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