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죽음의 가면 기담문학 고딕총서 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정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품절


고통의 종류는 다양하다. 지상의 고통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고통은 광활한 지평선에 무지개처럼 걸려 있다. 고통의 빛깔은 무지갯빛만큼 다채롭고, 무지개가 그렇듯 선명하게 구분되는 동시에 함께 어우러져 있다. 고통을 광활한 지평선에 걸려 있는 무지개에 비유하다니! 내가 아름다움에서 일종의 추함을 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평화의 계약에서 슬픔의 비유를 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윤리학에서 악이 선의 결과이듯, 슬픔은 기쁨에서 태어난다. 지나간 행복의 기억은 오늘의 고통이며, '현실'속의 번민은 '상상'속의 환희에서 기인한다. -27~8쪽

어른이 되면서 동물들은 내게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충실하고 영리한 개에게 애정을 느껴본 사람은 여기서 얻는 희열이 어떤 것이고 또 얼마나 강한 것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한갓 인간이라는 존재의 우정과 의리가 얼마나 하찮고 얄팍한 것인가를 시험해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은, 사심 없고 희생적인 짐승의 사랑 속에서 마음에 직접 와닿는 뭉클한 뭔가를 느끼게 마련이다. -48~9쪽

가장 깊은 잠 속에서도, 아니 광기 속에서도, 혹은 정신을 잃고 기절했을 때라 해도, 죽음 속에서, 무덤 속에서도 모든 것을 전부 다 잃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에게 불멸이란 없다. 아주 깊이 잠들었다 깨어날 때, 우리는 거미줄을 걷어내듯 꿈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꿈이라는 거미줄은 너무나도 가늘기에) 우리는 꿈을 꾼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리는 데는 두 단계가 있다. 첫째는 정신 혹은 마음이 돌아오는 단계이고, 둘째는 육체가 돌아오는 단계다. 둘째 단계에 도달한 순간에 첫 단계의 인상을 기억할 수 있다면, 이런 인상은 심연 저편의 기억에 대해 많은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69~70쪽

아, 말이란 얼마나 공허한지! 우리는 한갓 단어의 온갖 소리 뒤에 영적인 것에 대한 엄청난 무지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191쪽

이런 느낌이 드는 글들 중에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조지프 그랜빌의 책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것이 그저 기묘한 글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글쎄, 이유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의지는 존재하며, 사라지지 않도다. 신의 본성은 열심이며, 따라서 신이란 만물에 스며 있는 위대한 의지일 따름이로다. 인간이 천사에게 굴복하는 것과 죽음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한 의지의 박약함 때문일 뿐 다른 것이 아니로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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