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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공중그네>나 <남쪽으로 튀어!>의 이라부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그동안 오쿠다 히데오는 그저 '엽기적'이고 '웃긴' 작가라고 생각해왔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이라 그의 책을 몇 권 읽다보니 슬쩍 지겨워져서 어느샌가 그의 신작에도 소홀해졌는데, 우연히 이 책을 선물받게 됐다. 표지도 그닥 끌리지 않고, 무려 3권이나 되는 분량에 읽기를 미뤄오다가 이번 주말 집에서 뒹굴거리다 갑자기 '일본 소설'이 읽고 싶어져 큰맘 먹고(?) 읽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이 하나의 사건때문에 얽히고설킨다는 구성은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이들의 '관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기보다는 각각의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7년 전 사고로 아내를 잃은 경찰 구노, 두 아이의 엄마이자 그저 작은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오이카와 쿄코, 그리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유스케. 이 세 사람은 각자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들이 한 회사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때문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기 시작하고, 서서히 그 끈은 그들을 옭아매기 시작한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자신의 '행복'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쿄코는 남편이 방화 사건 제1발견자에서 용의자로 취급되면서 그동안 위태롭게나마 유지해왔던 '단란한 가정'이라는 그림이 깨지는 경험하고, 구노는 아내를 잃은 후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고 불면의 나날을 보내던 중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동료 하나무라때문에 고등학생 폭행으로 잘릴 위기에 처한다. 한편, 그저 조금 불량했던, 남들에게 돋보이고 싶었던 유스케는 구노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하나무라때문에 야쿠자와 연관된다. 이들은 행복을 놓쳐버린 뒤에야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행복했음을 깨닫게 되고, 그 행복을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200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로 뽑혔다는 말을 듣고 뭔가 미스터리한 면을 기대했는데 그 점은 생각보다 미흡했던 것 같다. 몇몇 궁금증도 던져놓고 제대로 수습을 하지 않은 면이 있었고(예를 들어 장모에 대한 문제), 초반에 각 인물의 삶에 대해 보여줄 땐 느슨한 감이 있어서 살짝 지루했었고,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사건(방화, 노동운동, 경찰 내부의 정치 등)를 다루고 있어서 자칫 산만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평범한, 그래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상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 섬뜩하게 보여줬다는 점, 오쿠다 히데오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기대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