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 베스트 텐
가쿠타 미츠요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이전에 <프레젠트>를 읽고 '괜찮구나'라고 생각했던 가쿠다 미츠요. 나의 판단이 옳은지 알기 위해 같은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고 잡은 책이 바로 이 책 <인생 베스트 텐>이다. 총 6개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비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는 류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첫번째 이야기인 <바닥 밑의 일상>에서는 누수를 고치기 위해 간 곳에서 홀로 아래층에 와서 일하게 된 벽지 견습생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평소처럼 집주인에게 근처에서 밥 먹을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나 의외로 집주인 여자는 직접 음식을 해주겠노라고 한다. 머쓱한 분위기에서 함께 앉아 밥을 먹게 된 두 사람. 여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데... 두번째 이야기인 <관광여행>에서는 애인과 정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간 주인공이 그 곳에서 결벽증을 가진 엄마와 히스테리한 딸과 만나 어쩌다 함께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세번째 이야기인 <비행기와 수족관>에서는 새로 시작하기 위해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다 써버리려 그리스에 다녀온 남자가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이고 울고 있는 여자와 만나게 된다. 이윽고 그녀의 사연을 듣게 되고, 비행기에서 내린 그는 그녀의 뒷일이 궁금해 연락을 해보지만 스토커 취급을 받으며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네번째 이야기인 <테라스에서 한 잔의 차를>에서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해 중고맨션을 알아보고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다섯번째 이야기인 <인생 베스트 텐>에서는 40세 생일을 일주일 앞둔 여자가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첫사랑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잔뜩 꾸미고 나가고, 첫사랑과 우연히 만나 둘만의 동창회를 시작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뒤에 생기는 인생 베스트 텐에 들 법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이야기인 <일일 데이트>에서는 남편과의 이혼을 앞둔 여자가 남자와 부딪혀보기 위해 일일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 와중에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고, 알아차렸다고 해도 그것을 치유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치유되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됨을 통해서였다.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인지 대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었고, 그들의 부서질 것 같은(혹은 흔들리는) 내면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가벼운 내용의 단편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일본 소설이라는 느낌은 들지만 읽으면서 그래도 뭔가 나 나름대로의 비일상적인 일(그것이 자발적이어도, 타인에 의한 것이라도 좋다)을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가쿠다 미츠요의 다른 작품들(예를 들어 나오키 상을 수상한 <대안의 그녀>와 같은)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적인 감수성이 묻어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