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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공중그네>와 <인더풀>, <라라피포>로 국내에도 많은 고정팬들을 갖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남쪽으로 튀어!>. 물론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해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2006년 서점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서점대상 수상작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밤의 피크닉>도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안겨줬기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래저래 한껏 기대를 하면서 읽게 된 작품.
책을 받고 보니 애초에 예약판매를 받던 때의 표지가 아니라 조금 아쉬움이 남았지만(개인적으로 난 그 표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두께감있는 책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갔다. 이 책의 주인공은 우에하라 지로라는 초등학생 6학년 학생이다. 도쿄에서 살고 있는 그는 수업이 끝나면 만화 전문 헌책방에 들러 만화책을 읽고 집에 돌아가는 평범한 학생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범해보였던 그에게 엄청나게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가 있다. 맨날 집에서 노는 주제에 구청에서 나오는 사람들만 만나면 "체제의 개"라는 소리를 해대고(게다가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게다가 콜라와 캔커피는 "미국의 음모이며 독이다."며 마시지 못하게 한다. 도저히 아버지가 하는 말을 알아들 수 없는 지로. 그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겪으며 아버지를 이해하고 가족과 함께 성장해나가게 된다.
책은 총 2권으로 되어 있다. 간략히 나눠 얘기하면 1권은 도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주로 지로와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괴팍한 행동, 우연찮게 지로가 큰 사건에 말려드는 이야기, 중학생 형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 그동안 몰랐던 외가 식구들을 만나는 이야기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뒤이은 2권에서는 사정상 남쪽에 있는 이리오모테섬으로 내려가 살게 되는 이야기로, 마을 사람들의 인심과 도시를 떠난 지로의 심경의 변화 등을 다루며 이어가다가 끝부분에서 마침내 섬을 개발하려는 사람들과 한 판 붙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재미를 더해간다. 어찌보면 다소 산만해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는 책인 것은 사실.
이 책에는 기존의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 만났던 엽기적인 인물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편이다. 지로의 아버지는 캐릭터적으로는 독특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걸 엽기적으로라고 보기에는 현실감있게 보였다. 한 예로, 최근 대학가에서는 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외면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존(4.19나 유신독재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던 시대)에는 뚜렷하게 타도해야할 대상이 있었고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던만큼 많은 학생들이 학생운동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현재 운동권 학생들은 뚜렷한 타도의 대상을 찾지 못하고 점점 더 학생들의 참여도 낮아지게 되었다. 시대적으로 학생운동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학에 남은 한총련 학생들도, 이 책에 등장하는 지로의 아버지인 우에하라 이치로도 변해가는 시대는 무시한 채 단순히 체제에 반기를 드는 형태로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신이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차마 버릴 수 없는 무엇으로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이해심마저 들었다. 묵직한 사회적 모순들에 대해 비교적 가벼운 인물을 통해 그려냄으로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책을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색채의 작품이라 새로운 맛이 있긴 했지만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만화같은 소설이라는 느낌은 여전한 것 같다. 초등학생이라는 성장기의 아이의 눈으로 괴상한 아버지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쑥 자라버린 것 같은 지로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히 지로나 아버지 이치로의 모습에서뿐만 아니라 지로의 친구들과 지로의 동생 모모코도 책의 재미에 쏠쏠한 보탬이 되어준 듯 싶다. <공중그네>의 엽기적인 웃음도, <라라피포>의 블랙코미디도 아닌 지로의 성장담이지만 읽는 동안 즐거웠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