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든 것
벨 훅스 지음, 윤길순 옮김 / 동녘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꼭 읽어야 할 책 중에 하나지만,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책이다.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을 때는 이 책에 대해 이런 반응이기 십상이다.
“또 사랑이야?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뻔한 게 아닐까?”
물론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진부할 정도로 넘쳐나는데, 이 책의 리뷰를 쓰는 이유는 이 책만큼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서이지만, 좀 지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싶다.

저자는 사랑이 지침을 따른다고 완성되는 전략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철저한 자기 반성 위에 싹튼 자기애의 확산이며, 사랑의 본질은 ‘윤리’에 있으며.  자기애에서 피어나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인 성장을 돕는 의지라고.

인기 있는 자기 계발서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보면, '남성은 자기 굴 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남자가 혼자 있고 싶을 때 방해하는 여자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레이는 변화가 필요한 것은 여성의 행동이라고 믿는다.  이런 언급의 상당수가 성차별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흔히 선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의 습관들을 남성 지배를 유지하고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들 뿐이지 않을는지.

저자의 지적 중에 ‘낭만적인 사랑’은 환각제에 불과하다는 말 또한 인상적이다.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그녀의 첫 번째 책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에서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사상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것이 파괴적인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의지나 선택할 능력이 없어도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 망상 때문이다. 수많은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탓에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이런 환상은 우리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환상을 지탱하기 위해 사랑을 로맨스로 대체한다.
로맨스가 프로젝트로 그려질 때, 또는 대중 매체, 특히 영화가 우리에게 그렇게 믿도록 하려 할 때, 기획을 하고 계획을 짜는 사람은 여성이다.

이 책은 그 환각에 속아 몇 차례 사랑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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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박사 2006-05-12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사랑은 낭만적인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누가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icaru 2006-05-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만적인 사랑만이 득세를 하면... 분명...그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에서 엑스트라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거든요... 벨 훅스가 말하는 낭만적 사랑은 영화나 드라마 속~ 화려한 사람들의 그런 이야기에 우리가 폭 빠지며, 그런 사랑(백마 탄 왕자 쯤) 을 그리는 걸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지... 싶어요.
벨 훅스가 말하는 사랑 안에서 한쪽은 패배하고 한쪽은 승리하는 사랑의 동역학은 깨졌다. 나이, 성, 인종, 계층에 상관없이 존중받을 수 있다죠. 학대하거나 상대의 의지를 꺾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사랑은 연인을 존중하고 가능성을 더욱 열어주는 것이며 자녀의 의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라는... 음..무척 윤리적이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말들이 가득한 책이랍니다...

2006-05-14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6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6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6-05-1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h 님... 말씀이 맞소... 아무래도 이 책은 하나 사 뒤야 할 것만 같으이.. 때때로 들춰볼 일이 생길 거 같아서... 그런데 선본지 석달만에 다른 여자랑 결혼했다는 그 남자... 정말 인생 허무하게 하네... 얼마나 잘 사나... 궁금한데..
아래 속삭님.. <행복한 페미니즘>도 필 받게 하는 책이군요... 찾아 읽어야지!!
근데.. 이 책에 대한 느낌 다들 조금씩 비슷한가 봐요... 좀 지루한듯한.. 근데 또 지루한 게 또 잔상에 오래 남는 성향이 있는 것두 같고 그래요~ 그죠?
 
워커홀릭 1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날 연휴를 앞두고 서평 도서가 착! 하고 도착했다. 틈새 시간에 슬쩍슬쩍 보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잘 포착한 배송이었다.

진도가 잘 나간다. 재밌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다.

상승세를 타다가 곤두박질친 사태를 맞이한 주인공에게....

“모든 답을 다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지 마. 항상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 비전을 갖고 있을 필요도 없고,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필요도 없어. 때로는 자신이 다음 순간에 무엇을 할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팁도 나온다.

*흔히 직장 생활에서 크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경우는 믿었던 인간성 좋아 보이는 상사에게서 라는 것. 그리고 사태의 수습을 도와주는 쪽은 되려, 냉혈한이라고 싫어했던 상사라는 것.
*회사에서의 책상 주변을 말끔히 치우고 살아야 무시무시한 함정에 빠질 일이 적어진다는 것.
*대도시의 직장인들은 회사 근처의 테이크아웃 커피점의 커피에 사족을 못 쓴다는 것.  

사만타의 직업을 더 뽀대나게 해 주는 재밌는 장치라면, 주인집 부부의 변호사지망생 조카 멜리사랄까. 사만타가 가정부로 있는 집으로 기자들이 몰려들자, 자기를 인터뷰하러 온 줄 아는 멜리사. 라는 캐릭터였다.

근데 내가 스물아홉 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변호사 사만타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직업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전처럼 죽어라 일만하는 삶은 되풀이하지 않으리. 가정부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맛보았기 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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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5-1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아주신 팁, 와 닿는데요? 잘 지내시죠? 뱃속도(?) 편하시죠? ^^

icaru 2006-05-1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뱃속도 편안하답니다~
제 책상이 그래요, 늘어놓는 걸로는 끝장을 내 주시는(^^:: 무에 자랑이라고~ ) 이 책읽으면서 허걱했거든요...

플레져 2006-05-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열심히 읽고 있어요 ^^
아침 저녁 침대에서 누워 쬐금씩 읽어서 진도가 팍팍 나가진 않지만
읽을때 마다 재밌어요.
나라면... 가정부 안해요. 내 집 일도 하기 싫은데 가정부가 웬말! ^^;;

마늘빵 2006-05-1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벌써 보셨군요. 전 <전사와 나비>가 내일까지인 관계로 아직 못보고 있는데.

하루살이 2006-05-11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답게 사는 법을 맛보셨다구요?
갈켜 주세요~~~

icaru 2006-05-1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제말이요~ 제말이.. 집안일이 껌인가요~

아프락사스 님... 아마도 일단 잡게 되면 휘리릭 읽으실 수 있을겝니다..

하루살이 님... 내가 아니라...^^;; 주인공이 그랬단 말씸..

히피드림~ 2006-05-1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쇼퍼홀릭]을 쓴 작가의 작품이군여. 주인공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쓰신 따옴표 안의 말이 너무 멋진 걸요.

잉크냄새 2006-05-1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순간이 모여서 삶이 되고 영원이 된다는 말씸!

icaru 2006-05-1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 님... 저말이 꼭 저한테 들려주는 말 같았어요... 이 책 보니까..
쇼퍼홀릭 또한 진도나가는데는 따를 무엇 없는 책일듯..

잉과장님... 음.. 순간순간이 행복한 게 먼저겠죠~

2006-05-14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옐로사전
일본 무라카미월드 연구회 지음, 김선영 옮김 / 새물결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하루키의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보인다. 뭔가 흥미진진한 것이 수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껏 기대하게 만드는 목차와 깔끔하고 견고하게 양장된 하드커버.

그러나 연거푸 실망이다.

일테면 “1. 하루키의 사생활 1-8. 주부(主夫)생활”이라는 장을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독신이었다거나, 이혼 경험이 있다거나, 직업이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남자 주인공이 집에서 가사를 하는 장면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라는 이야기를 피력한 부분을 보자. 왜 그런고 하니 “하루키 자신도 결혼 2년째에 반 년 정도 주부를 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란 식이다.


그 밖에 “3. 하루키의 세상 읽기”를 보면 하루키의 작품들 하나하나의 줄거리를 요약해 주는데 들으나 마나한 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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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3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피드림~ 2006-05-0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매니아들이 원할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stella.K 2006-05-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도 이제 늙나 봅니다.

kleinsusun 2006-05-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하하하하하.
1. "무라카미월드 연구회" 라는 이름 자체가 상당히 수상쩍어요. "월드"는 왜 들어가는걸까요? ㅎㅎㅎ

2. 그럼에도 불구하고....별을 두개나 주신 님의 착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져요.^^

2006-05-14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책은 점점 더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순응해야만 하는 일종의 상품이 되어 갔다. 대량 생산된 책은 돈만 지불한다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책의 소유가 곧 소유자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책을 실내를 꾸며주는 고상한 장식품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관습은 현재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또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 신분이나 지식의 유무를 드러내는 가치 척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도 대략 이 시기와 일치한다.



-p.179쪽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얻게 된 고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독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빨아들일 정도로 강한 궤적을 남기면서 삶은 독자의 주위를 지나가고, 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성벽은 삶의 흡인력을 막아낼 정도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188쪽


< 회복기의 환자> 1923, 24년 피츠윌리엄 박물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우리는 이 그림에서 피곤해 보이지만 몹시 단호한 표정의 병약한 젊은 처녀를 본다. ... 그림을 그릴 때 사용된 주저하는 듯한 양식은 화가와 그림 속 인물 모두가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패의 위험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힘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감각 기관의 과민 반응,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신경 상태, 점증하는 자아 집중과 함께 진행되는 신경 쇠약 상태에서 그녀의 많은 동시대인은 지금의 시기와 예술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그웬 존의 감정 상태를 보았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다음과 같은 가정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즉 이런 감정 상태에서는 독서가 도움이 될 수 있고, 다른 경우라면 신경과 의사가 맡았을 역할을 자기 자신이 맡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바로 그것이다. 병든 사람은 외부에서 생긴 추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개입이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도 완수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그것이 정확하게 독서의 정의, 오직 독서에만 해당하는 정의라고 말했다. 독서는 피곤한 상태에서 다시 정신력과 강한 의지를 돌려주는 치료제처럼 작용한다. 독서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p.227쪽

<<메릴린 먼로가 <율리시즈>를 읽다.>> 1952년

"그녀가 읽었을까, 아니면 읽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자제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20세기 금발의 섹스 표상인 메릴린 먼로가, 20세기 고급 문화의 표상이며 많은 사람들이 현대 소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평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었을까? 혹은 그냥 읽는 척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같은 사진집에 연속해서 찍은 다른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에서도 메릴린이 읽고 있는 것은 바로 조이스의 책이기 때문이다.
문학 교수 리처드 브라운은 그것이 궁금했다. 결국 연속 사진 촬영이 이루어지고 난 지 30년이 지나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사진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이브 아널드는 즉시 자신은 메릴린이 이미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대답했다. 메릴린이 자신은 그 책의 어조를 좋아하며, 그것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소리 내서 읽고 있지만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고 사진가는 말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두 사람이 미리 약속한 장소에 멈추었을 때 메릴린은 <율리시스>를 읽고 있었으며, 그동안 이브 아널드는 필름을 끼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녀는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p.249 쪽

책을 읽는 사람은 깊이 생각을 하게 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갖게 된다.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가진 사람은 대열에서 벗어나고,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적이 된다.


-p.256쪽

"여자가 읽은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Marie von Escenbach의 말이다. 책을 읽는 여자는 근거를 묻고, 그리고 근거를 묻는 것은 단단하게 맞물린 세상의 규칙을 파괴한다.
-p.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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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5-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험하다면서 이리도 많이 읽으시나이까!!!

icaru 2006-05-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는요~ 무신... 그동안 칩거생활의 묵은 때를 벗고 있는 중이랄까요~ 호호..(여승 같은 말을 하고 있네요^^) 잉과장님은 어찌 그리 뜸하셨을꼬~

하루살이 2006-05-0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경우엔 책을 읽는 사람이 깊이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벽을 쌓는 건 맞는것 같아요. 님은 반대이실거라 믿으면서...

2006-05-14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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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봉 협상에 대한 회사측 발표가 있어서, 오후 네 시부터 1시간 반 가량 회의실에 소집되어 있다가 나왔다. 올 연봉은 작년 수준 그대로 (연봉 동결이란 말씀) 가고, 내년 4월 회계 분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매출이 일정 목표에 달성한다는 조건에서만 성과급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이맘때쯤, 협상할 때 호봉 간의 극간이 있어, 인상폭이 적게 이루어진 가운데 2006년 협상 시즌을 1년 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에겐 울화가 치밀 일이다. 동결이라는 말은.

사장님 말씀. 주주들과 사원들 양쪽의 입장을 헤아려봤을 때, 동결 밖엔 길이 없었다. 부장 이하 사원들까지는 동결이지만, 임원진은 10% 대표 이사(사장)는 15%의 삭감이 있을 거라 한다. 미래적인 홍보성 투자, 경상 비용 같은 걸 최대한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그나마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을 감축하겠다고 나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일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덕을 보게 되는 경우는 경제성장이 잘 되어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 아닌가... 돈 있는 사람들은 이 체제나 저 체제 큰 차이가 없다. 장하준과 정승일의 말은 그랬다. 일각에서는 재벌들을 깨면 노동자들이 덕을 볼 거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사실 그 과정에서 재미 보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과 금융자본이라고.

장하준과 정승일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첫째 내수 부진, 둘째는 투자부진으로 본다. 그리고 저투자 현상을 방치한 상태에서 내수 부진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는다고.

민주 노동당도 분배가 잘 이루어지면 내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내수 부분의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순환 구조는 이해한다는 것을 이들(장하준&정승일)도 인정한다. 그러나 ‘분배를 통한 성장’은 단기적 효과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토를 단다.

중소기업의 저투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이들은 내다보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완전히 시장 관계로 들어가면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원래 시장 관계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너와 나는 언제든 계약이 파기되어 남남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지 말고 일본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장기적인 거래 관계를 맺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을 보증하는 식으로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식.

암묵적 지식을 가진 숙련 노동자들이 제일 무서운 경쟁의 무기...
이들은 우리가 가야 할 모델을 스웨덴에서 찾고 있다. 스웨덴이 의외로 외국 기업들에게 인기를 끄는 나라.... 임금 높고 노동조합 강하고, 행정부는 사회민주당에 장악되어 누진세로 따지면 소득의 60%까지 긁어 갈 정도로 부자들을 괴롭히는 사회임에도 외국 자본이 악착같이 들어온다. 외국 자본이 탐내는 것은 스웨덴의 우수한 사회보장 제도와 무료로 제공되는 기술 훈련 시스템, 그에 따라 숙련된 현장 노동자들과 대학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 그리고 노동조합 전국 조직과 경영자 전국 조직 간에 유지되는 산업 평화라고.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그런 사람들을 고용해야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또한 국내 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은 인적 자원밖에 없는 나라이므로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대안이다.

현재의 정부에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 해도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우리 시민들이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있다고. 지금은 어떤 토론 과정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미국 식 시장주의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미국 식 시스템이란 것이 까놓고 말해 돈 많고 배운 것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윈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헤집는다.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은 ‘시장의 자유와 사유 재산권 수호’에 있다고.
시장의 자유는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사회를 나누게 마련이고, 그렇게 형성된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사유재산을 지키려 한다. 따라서, 없는 자들에게까지 투표권을 주겠다는 민주주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고, 그 논거 또한 뚜렷하다.
예컨대 돈 없는 놈들이 투표권을 부여 받아 정치 권력을 장악했다가 부자들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계속 역설한다. 우리가 힘 있는 정부를 불온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박정희에 대한 반사적 거부에서 온 것이라고.
박정희 정부가 반민주적이었기 때문에 정부에 반대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보의 힘을 빼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고정관념화되어 버린 것....

그렇다면 민주적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부분에서 이들은 말한다.

정부가 기업의 투명성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이 도리어 친시장적인 것이므로 이를 견제하고, ‘관료’에 대한 반사적 거부를 돌이켜 보자는 데 있다. 어차피 관료라는 것은 수천 년 전 국가라는 조직이 탄생할 때 함께 나타난 집단... 국가를 폐지하지 않는 이상 관료 집단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따라서 관치 그 자체를 비판하고 관료주의 그 자체에 욕을 퍼붓는 것은 별로 효용이 없으며... 차라리 관료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국민에 대한 국가 조직의 투명성, 즉 관치는 불가피하지만 불완전하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관료를 견제해야 한다...는 시각이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시장 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모든 경제 주체가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 사회가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자본의 주주에 대한 책임만 이야기하면서 공공성 따원 제쳐둔 지 오래...정부도 말로만 공공성을 떠들지 실제로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책임만 지려고 하는 식...더욱이 노동자들도 말로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정규직 간은 물론이고,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연대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니까.

지금 기업들은 주식 시장으로부터 경영관원 위협 당하는 관계로 적극적인 투자를 못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생산성이 자꾸 떨어지니까 노동자들이 피땀을 짜내고 있다.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해외로 떠나버리는 이런 메커니즘이 반복되면 한국 경제 전체의 기술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국가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게 되며 이는 기업도 망하고 우리 경제도 망하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던 당시 대학 시절을 보내고, 제5공화국에 묘사된 탄압의 공포 속에서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저자(정승일)였음에도 박정희 체제를 개발 독재적인 경제 발전 방식을 칭찬하는 것은 변절이거나 아니면 지독한 아이러니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또 말한다. 문제는 양심이 아니라 인식이라고.  역사와 사회 경제와 정치에 대한 냉혹한 인식과 지각이 오히려 중요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문제는 변절이 아니라 아이러니, 그것도 지독한 논리적 역사적 아이러니라는 것.  그리고 이런 아이러니에 빠져 있는 것이 비단 장하준 정승일 두 사람 뿐만이 아니라, 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 전체 그리고 보수 세력 전체가 해당된다고. 또한 이런 아이러니를 양산한 데에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환상이 자리하고 있기에. 

** 책을 거의 옮겨 적다시피 하다보니, 분량이 무지 길어졌다.  내 의견없이... 이런 식의 리뷰를 쓴 것은 이들의 말에 내가 뭐라 토를 달 수준이 안 되서 그렇기도 하고, 사회에 만연한 아이러니에 대한 이들의 문제 제기가 기실 훌륭해보인다는 데 대한 동조의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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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5-0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너무 오랫만에 오셨어요... 아니 제가 오랫만에 온걸까요? 무지 어려워 보이는 책이지만 불끈..!!!

icaru 2006-05-0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운 책인줄 알고 저만치 치워뒀다가 읽었는데... 그게글쎄 어려운 책이 아녔답니다 ^^
인터라겐 님...!! 리뷰 당선되셨던데... 제가 워낙 게으르고 또 과묵해서... 속으로만 축하드리고 앉아 있었어요... 이 기회에 축하의 말을 전합니덩~

진주 2006-05-0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그렇군요^^;;

2006-05-14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04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