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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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봉 협상에 대한 회사측 발표가 있어서, 오후 네 시부터 1시간 반 가량 회의실에 소집되어 있다가 나왔다. 올 연봉은 작년 수준 그대로 (연봉 동결이란 말씀) 가고, 내년 4월 회계 분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매출이 일정 목표에 달성한다는 조건에서만 성과급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이맘때쯤, 협상할 때 호봉 간의 극간이 있어, 인상폭이 적게 이루어진 가운데 2006년 협상 시즌을 1년 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에겐 울화가 치밀 일이다. 동결이라는 말은.

사장님 말씀. 주주들과 사원들 양쪽의 입장을 헤아려봤을 때, 동결 밖엔 길이 없었다. 부장 이하 사원들까지는 동결이지만, 임원진은 10% 대표 이사(사장)는 15%의 삭감이 있을 거라 한다. 미래적인 홍보성 투자, 경상 비용 같은 걸 최대한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그나마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을 감축하겠다고 나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일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덕을 보게 되는 경우는 경제성장이 잘 되어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 아닌가... 돈 있는 사람들은 이 체제나 저 체제 큰 차이가 없다. 장하준과 정승일의 말은 그랬다. 일각에서는 재벌들을 깨면 노동자들이 덕을 볼 거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사실 그 과정에서 재미 보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과 금융자본이라고.

장하준과 정승일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첫째 내수 부진, 둘째는 투자부진으로 본다. 그리고 저투자 현상을 방치한 상태에서 내수 부진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는다고.

민주 노동당도 분배가 잘 이루어지면 내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내수 부분의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순환 구조는 이해한다는 것을 이들(장하준&정승일)도 인정한다. 그러나 ‘분배를 통한 성장’은 단기적 효과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토를 단다.

중소기업의 저투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이들은 내다보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완전히 시장 관계로 들어가면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원래 시장 관계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너와 나는 언제든 계약이 파기되어 남남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지 말고 일본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장기적인 거래 관계를 맺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을 보증하는 식으로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식.

암묵적 지식을 가진 숙련 노동자들이 제일 무서운 경쟁의 무기...
이들은 우리가 가야 할 모델을 스웨덴에서 찾고 있다. 스웨덴이 의외로 외국 기업들에게 인기를 끄는 나라.... 임금 높고 노동조합 강하고, 행정부는 사회민주당에 장악되어 누진세로 따지면 소득의 60%까지 긁어 갈 정도로 부자들을 괴롭히는 사회임에도 외국 자본이 악착같이 들어온다. 외국 자본이 탐내는 것은 스웨덴의 우수한 사회보장 제도와 무료로 제공되는 기술 훈련 시스템, 그에 따라 숙련된 현장 노동자들과 대학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 그리고 노동조합 전국 조직과 경영자 전국 조직 간에 유지되는 산업 평화라고.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그런 사람들을 고용해야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또한 국내 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은 인적 자원밖에 없는 나라이므로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대안이다.

현재의 정부에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 해도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우리 시민들이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있다고. 지금은 어떤 토론 과정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미국 식 시장주의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미국 식 시스템이란 것이 까놓고 말해 돈 많고 배운 것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윈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헤집는다.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은 ‘시장의 자유와 사유 재산권 수호’에 있다고.
시장의 자유는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사회를 나누게 마련이고, 그렇게 형성된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사유재산을 지키려 한다. 따라서, 없는 자들에게까지 투표권을 주겠다는 민주주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고, 그 논거 또한 뚜렷하다.
예컨대 돈 없는 놈들이 투표권을 부여 받아 정치 권력을 장악했다가 부자들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계속 역설한다. 우리가 힘 있는 정부를 불온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박정희에 대한 반사적 거부에서 온 것이라고.
박정희 정부가 반민주적이었기 때문에 정부에 반대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보의 힘을 빼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고정관념화되어 버린 것....

그렇다면 민주적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부분에서 이들은 말한다.

정부가 기업의 투명성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이 도리어 친시장적인 것이므로 이를 견제하고, ‘관료’에 대한 반사적 거부를 돌이켜 보자는 데 있다. 어차피 관료라는 것은 수천 년 전 국가라는 조직이 탄생할 때 함께 나타난 집단... 국가를 폐지하지 않는 이상 관료 집단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따라서 관치 그 자체를 비판하고 관료주의 그 자체에 욕을 퍼붓는 것은 별로 효용이 없으며... 차라리 관료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국민에 대한 국가 조직의 투명성, 즉 관치는 불가피하지만 불완전하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관료를 견제해야 한다...는 시각이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시장 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모든 경제 주체가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 사회가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자본의 주주에 대한 책임만 이야기하면서 공공성 따원 제쳐둔 지 오래...정부도 말로만 공공성을 떠들지 실제로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책임만 지려고 하는 식...더욱이 노동자들도 말로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정규직 간은 물론이고,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연대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니까.

지금 기업들은 주식 시장으로부터 경영관원 위협 당하는 관계로 적극적인 투자를 못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생산성이 자꾸 떨어지니까 노동자들이 피땀을 짜내고 있다.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해외로 떠나버리는 이런 메커니즘이 반복되면 한국 경제 전체의 기술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국가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게 되며 이는 기업도 망하고 우리 경제도 망하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던 당시 대학 시절을 보내고, 제5공화국에 묘사된 탄압의 공포 속에서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저자(정승일)였음에도 박정희 체제를 개발 독재적인 경제 발전 방식을 칭찬하는 것은 변절이거나 아니면 지독한 아이러니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또 말한다. 문제는 양심이 아니라 인식이라고.  역사와 사회 경제와 정치에 대한 냉혹한 인식과 지각이 오히려 중요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문제는 변절이 아니라 아이러니, 그것도 지독한 논리적 역사적 아이러니라는 것.  그리고 이런 아이러니에 빠져 있는 것이 비단 장하준 정승일 두 사람 뿐만이 아니라, 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 전체 그리고 보수 세력 전체가 해당된다고. 또한 이런 아이러니를 양산한 데에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환상이 자리하고 있기에. 

** 책을 거의 옮겨 적다시피 하다보니, 분량이 무지 길어졌다.  내 의견없이... 이런 식의 리뷰를 쓴 것은 이들의 말에 내가 뭐라 토를 달 수준이 안 되서 그렇기도 하고, 사회에 만연한 아이러니에 대한 이들의 문제 제기가 기실 훌륭해보인다는 데 대한 동조의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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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5-0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너무 오랫만에 오셨어요... 아니 제가 오랫만에 온걸까요? 무지 어려워 보이는 책이지만 불끈..!!!

icaru 2006-05-0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운 책인줄 알고 저만치 치워뒀다가 읽었는데... 그게글쎄 어려운 책이 아녔답니다 ^^
인터라겐 님...!! 리뷰 당선되셨던데... 제가 워낙 게으르고 또 과묵해서... 속으로만 축하드리고 앉아 있었어요... 이 기회에 축하의 말을 전합니덩~

진주 2006-05-0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그렇군요^^;;

2006-05-14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04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