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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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각종 리뷰를 훑어보았다. 어디에고 똑같이 쓰여 있던 말은 이 이야기에 대한 결말을 듣지 말라는 것(옮긴이 또한 후기에서 줄거리만큼은 절대로 소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해 그런 평도 있었다. 이 소설의 저자는 말재간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소설을 아주 지능적으로 썼다는 얘기였다. 일단 읽고 나니 작가가 보통 똑똑이가 아니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공감하는 바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에 보았던 니콜 키드만 주연의 영화 디아더스가 생각난다. 이런 류의 영화는 그 결말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임에도 언급을 하자면 (벌써 개봉 한지 1년도 넘었으니, 볼 사람은 다 봤고, 그래 알 사람은 다 안다고 생각되어....)그 영화에서의 마지막 반전은 '네가 귀신이 아니라, 내가 귀신이란 말이더냐'였다. 귀신에게 그토록 시달림을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생지옥을 조성하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기만시켰다는 류의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늘상 팔에 솟은 소름을 쓸어내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런 이야기를 촘촘한 대화의 그물망으로 엮어 내었다. 재밌다.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한다. 나 자신은? 또 다른 나 자신 때문에 얼마나 엄청난 지옥불을 선사(?)받고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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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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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비평계와 세간에서 이 책을 향해 숱하게 쏠리고 쏟아져 내렸던 찬사와 호평을 잘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내 식으로 굳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하자면, 이렇다. 스물 한살의 프랑스 작가가 써내린 소설치고 퍽 훌륭한, 18세기 말을 배경으로한 베트남 여행기이네. 라고.

이 소설의 행간 어느 부분도 도발적이고, 문제적이라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부분이 없다. 그저 담담하고, 아릿하며, 고독하고 무상하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평정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길에 꺼내 놓고, 행간 사이를 음미하며 읽으면 전율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던 당시는 절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졸면서 띄엄띄엄 읽었기 때문인 즉, 감동은 반감하고 말았던 거 같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다 죽었다. 베트남에서 온 어린 왕자는 멀고도 낯선 이국 땅 프랑스에서 외롭게 죽었고,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여러달에 걸친 뱃길로 미지의 세계, 베트남에 도착한 선장과 선교사 수녀들도 우여곡절 끝에 모두 죽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숲속에서 살해당하거나 부상으로 죽었고, 선교사와 수녀 몇은, 프랑스에서 어린 아들을 외롭게 죽도록 한 데 대해 상심한 왕의 폭정으로 살해당하거나, 풍토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물론 이 모든 죽음이 참혹하고 슬픈 것이긴 하지만, 이 소설의 초점은 그 참혹한 슬픔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죽음과 가까워지고 죽어 잊혀지는 것이 생의 의미라는 것을 미학적으로 보여 준다고나 할까.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프랑스 선교사와 수녀들은 프랑스어를 가르치거나 베트남말을 배우는 등 논밭을 함께 경작하는 등 프랑스에서 지니고있던 모든 것을 잊고 이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 원주민과 더불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살고 있었던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 일행은 다른 지역에 선교를 할 목적으로 일부 선교사와 수녀 몇을 처음 정착한 마을에 두고,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고된 여행길에서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만이 살아남게 된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베트남에 왔지만, 이들의 일행은 모두 죽었으며 이 둘만이 고립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두 사람은 구체적인 생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들이 항상 나누던 기도와 복음과 말씀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7년이 지난 후, 이 둘은 한 날 같은 시간에 병으로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사족을 좀 달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베트남의 지역색도 아울러 맛볼 수 있기를 바랬다. 푸른 벼와 연잎에 찐밥, 코끼리를 타고 밭을 경작하고, 어린 아이들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 순박한 원주민, 풍토병.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말이다. 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 제목이 보여 주듯...... 알 듯 말 듯 모호하고 정적인 느낌으로 베트남의 풍광 묘사를 메우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체가 이것이 이 소설의 미학이라고 하니, 뭐 그런 줄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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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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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소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하나, 분단 문제를 다루는 작품. 둘, 소시민적 삶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 작품. 셋,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

이 작품은 첫번째와 세번째가 속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분단 이전 어린 여자아이의 성장 소설의 성격을 보이면서, 분단을 겪으면서 주인공의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점.

 

우리 아버지는 노래를 잘 부르시지도 않고, 그다지 음악을 즐겨하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예전부터 [가요무대]라는 프로를 좋아하셨다. (지금도 그 프로가 월요일 밤 10, 11시 무렵이 시작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아무리 무뚝뚝하고 완고한 지엄하신 어르신이라도 옛날 노래를 대하노라면 어린아이처럼 순한 얼굴이 되어 알싸한 추억에 잠겨드시는 것처럼 보인다.

참 의외인 것도 1930년에서 1950년도 당시를 살아본 일이 없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유년 시절과 장년 시절의 이야기 골짜기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빠져 읽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 박완서의 입을 빌자면 순전히, 그렇다. 순전히 기억에 의한 소설이라고. 그래서 요즘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장르 혼합의 포스트 모던한 소설들이나, 황당무계하다 싶은 역사 소설, SF장르의 소설과 많이 다르다. 작가가 서문에서 했던 말이 자꾸 속에서 밀치고 들어오는 것 같다. '기껏 활자 공해나 가중시키기 위해 진을 빼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다.'라던. 그렇다. 그의 이 소설은 결코 일회용품일 수 없다.

'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위의 인용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작가)은 자신의 벌레의 시간(공산주의에 물든 오빠로 말미암아 집안은 풍비박산되고, 주인공과 모녀가 겪는 시간의 과정)을 증언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하는데, 자신의 숙명을 예감하는 이 부분이 나에게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소설은 '나'라는 영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던 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니.....

그 밖에도 인상적인 부분은 많다. 특히 유년기를 보낸 박적골에서의 할아버지와의 추억담이 그렇다. 주인공(작가)을 '요 입 속의 혀 같은 것'이라며 이뻐하는 모습말이다. 그리고 도깨비와 화장실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이 참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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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인생 - 개정판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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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던 게 1998년이었으니까, 17년 되었다. 당시에는 신문의 북칼럼란을 꽤 꼼꼼히 보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알라딘이 없었으니까. 이 책은 고 박완서 님의 추천 북칼럼을 통해 알았다. 거기에서 박완서 작가는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지 못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첨가하였다.  17년이라,,,하하  어떤 책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어도, 인생의 기조 같은 게 되어 준다. 어떤 기조? 인생 뭐, 있어 짧게 살더라도 유쾌하게 살자~ 라고.

이제 열살 된 우리집 큰애도 말놀이를 하는 유희를 아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사소하다 싶은 것에도 리엑션 빵빵 터뜨려 주는 통에 실력이 차츰 좋아지고 있는 듯도 하다.

얼마 전에는 애아빠가 편의점에서 건빵 몇 봉지를 사다주면서, 저 빡빡해 빠진 과자가 뭐라고, 건빵 예찬론을 애들 앞에서 펼쳤다. 군대에서는 이것을 그냥 먹지 않고, 끓여도 먹을 수 있어, 그것도 맛있어. 별사탕하고, 이렇게 먹을 수도 있고..!"

큰애가 건빵은, " 총(건) 쏘는(빵) 연습하면서 먹는 과자라, 이름이 건빵인 모양이라고 한다. 동생(이름이 건)이 군대가서 총 쏘는 연습하면서 먹으면  제대로 일 것이라 한다. 군대라는 데가 훈련을 하면서 무언가를 먹을 턱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 말재간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빵~ 터뜨려 웃어줬고.

 

편집일을 처음 시작했던 출판사에서 만난 선배 언니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한다. 지나칠 정도의 특유의 꼼꼼함과 완벽주의로,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두손두발 다 들게 하고 머리까지 수그리게 만드는 놀라운 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언니를 완전주의자라고 부르겠다. 소리내어 불러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석제의 이 소설집에 <완전주의자를 위하여>라는 단편이, 마치 '나를 읽어보라'는 듯 내 눈앞에 버젓이 있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완전주의자'는 이런 식이다.
'류 박사' 로 불리는 이 분은 무슨 학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되, 텔레비전의 심야 토론에 나오는 어떤 박사보다도 더 박사처럼 생겼다. 그는 그가 사는 동네의 문관의 제왕이자, 배지없는 보안관에 정치평론가, 경제사가, 거기다가 유일무이한 언어학자이다.
특히, 언어학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것이, 그 동네의 약수터 옆에 만남에 광장이라는 푯말을 동사무소에 호통을 쳐서 '만남의 광장'으로 바꾸게 하였다. '뇌쇄(惱殺)'를 '뇌살'로 읽은 어떤 사람을 된통 망신을 주기도 하고, 그 동네 음식점의 차림표에서, '떡복기'를 '떡볶이'로, '김치찌게'를 '김치찌개'로 '육계장'을 '육개장'으로 일일히 지적하여 바꾸게 해 놓는다. 심지어 동네 미용실의 '스트레스 파마'가 '스트레이트 파마'로 까지 바르게 고쳐지도록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압권은 이런 완전주의자의 완전치 못한 일화를 하나 챙기는 데 있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저녁 연기>로 잘못 알고 있는 일화와, 빨대를 영어로 '스트롱'으로 발음했던 일이다.

소설의 효능은 이런 순간에 발현된다. 회사의 완전주의자 언니에게 전에 없던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상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완전한 사람은 진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것. 우리 회사의 완벽주의자 언니도 내가 보지 않는 어느 곳에서 가끔 이런 가당치 않은 실수도 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편의 소설이 묶어져 있는 소설집이지만 총 페이지가 200페이지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글들이 뒤틀리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우리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단편적이고 가벼운 꺼리로서의 재미가 아니라, 요절복통할 인생의 아이러니로서의 재미를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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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아드님의 말재간(?)에 우선 저도 환호를 보냅니다~~~~. 그런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는 말재간 좋아해요!!!!!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한국 소설은 정말 읽은 것이 별로 없어요. 그나마 토지 전집을 다 읽은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지요~~~^^;;;;
세상에 완전한 사람도 없고 상황도 없고 곳도 없고,,,, 그래서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근데 맞춤법 같은 거 못하는 저는 솔직히 조금 뜨끔했어요~~~~~^^;;;;;

icaru 2015-02-03 12:30   좋아요 0 | URL
말재간 조금 있기로소니,ㅎㅎㅎ 불새출판사 만 하겠어요, 비비아롬나비모리 님!!! ㅋㅋ 토지 전집을 다 읽으셨다고요!!! >.< @.@
저는 전집에는 정말 약한데,,,
맞춤법 못하는 거,음,,, 저는 그래요, 가까운 예로, 저희집아이도 그렇고요 심지어 애아빠도 안,과 않을 혼동해서 쓴다던지 아무튼 많이 어려워 하는 것을 볼 때,,,
맞춤법이 그 사람 소양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 ) ( ˝.˝)

라로 2015-02-04 12:52   좋아요 0 | URL
불새출판사 ~~~^^;;;;

단발머리 2015-02-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1998년에 이 책을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 때 뭘, 읽고 있었나,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

저도 어제밤에 성석제 단편을 읽었거든요. 문학동네 겨울호 속에 있는 거였는데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큰아드님 대단한데요~~ icaru님 좋으시겠어요~~


icaru 2015-02-03 12:25   좋아요 0 | URL
어므나 하나두 안 대단합니다~ 단발머리 님은 그 즘에 풋풋한 대학생이지 않으셨어요! 인생에서 더할나위 없이 윤택한 무언가를 하고 계셨을듯~ 저는 모..
옛날에 읽은 것들을 들쑤시고 있는 지금 제 모습이 대단할 만큼 가관입져 ㅎㅎ

성석제 재미있는 인생을 읽던 2,3년 동안 애정에 마지 않는 작가였어요,,,
궁전의 새 라는 책도 재미있는데, 저는 그 작가가 쓴 어린시절 시골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첫째도 둘째도 유머~~ 유머가 있어서,, 문학동네를 읽어보면, 그의 지금 작품세계를 알 수 있으려나요...
아 읽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네요 ㅎ


단발머리 2015-02-03 13:21   좋아요 0 | URL
네, 그 때 저 풋풋하다 못해 프르릇!! 맞는 말인가요??

전 사실 문학동네 김훈의 단편 때문에 샀는데요 (다른 작가님들 죄송요.)
김훈님 거랑, 김영하님 거랑, 성석제님 거랑 모두 완전 만족하고 있어요.
특히 성석제님은 이주의 발견으로 뽑히셨어요.
유머가 제일 주요한 무기시라니, 더 좋아지는데요.. 호홍~~

라로 2015-02-0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SOS입니다요!!!!! 체스 자주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앱으로 하시나요? 아님 컴??? 제 꼬마가 저희 가족 모두를 괴롭혀요~~~ㅠㅠ 체스 같이 하자고!! 그래서 아무래도 체스 앱을 깔든지 컴으로 하게 해야 할듯~~ 물론 가끔 같이 게임도 해주겠지만 이거 매일 몇 게임은 힘드네요. 저야 몇 게임 안 해줬지만~~~~^^;;;;
도와주세요~~~~~!

2015-02-04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5쪽-
이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icaru ㅣ 2004-05-31 처음 읽음


기록을 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이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중에서

11년전 나는 정말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다른 사람의 리뷰였을까?

참으로 아름다웠던 문장들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희미한 흔적들만 남기는 연약한 무엇일 뿐이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러니까 허무한 느낌말이다.

참으로 온전하지 않은 삶이고 독서인데, 산다는 것의 실체이기도 할지 모르겠다.

다음은 그 때 썼던. .....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결국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무슨 일인지 이 글 속의 `나`인 롤랑 기는 자신의 과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최근에는 흥신소에서 위트라는 사내를 도와 일을 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자신의 신상의 전부다. 하지만 위트도 흥신소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고향인 니스로 떠난다. 이제 기 그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그가 ‘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남은 것과 남겼던 것이 무언지를 생각해 보면서 - 조용히 따라가 보았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들이 건넨 과자통이나 낡은 상자 속에 담겨 있는 사진에는,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나’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물었다.“이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는 나와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아뇨,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그렇지만 어쩌면......”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기’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지금 이 순간을 찬란한 감동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무심히 흘러 망각의 무(無 )로 변해갈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이 작품은 마치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언뜻 지나쳐본 장면, 창에서 내려다본 낯익은 거리의 풍경,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에서 포착하는 과거 한 때의 체험,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들이 무채색의 그림처럼 사람을 매료시킨다. 신문지상에 나왔던 모 작가의 말처럼, 참 매혹적인 소설이다.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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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1-3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년 전의 리뷰가 이렇게도 근사하다니요.
저는 이 소설이 좋았지만,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좋았는데, 참 어려웠어요.
˝저를 아시나요?˝에서 웃기만 했을 뿐이구요.
icaru님~~ 예전 리뷰 카테고리 하나 만드셔야겠는데요.^^

icaru 2015-02-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감사해욧!! 지금은 저렇게 공들여 못쓰겠어요..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퇴보인지 진보인지도 모르겠고 ㅎㅎ
허나.. 그런 고민들은 해 보네요~
지금은 절판된 도서에 붙은 옛날 리뷰들을 긁어다 다시 개정판 책에 붙이는 작업을 할까... 하능~

아타락시아 2015-02-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읽고 있는데, 11년전에 읽으셨다니. 반갑네요.

icaru 2015-02-02 10:35   좋아요 0 | URL
아ㅡ, 지금 읽고 계시는군요~~ 제가 프랑스 문학에는 문외한인데, 이 작품을 읽고는 내가 불문학의 정수를 맛보고 있는 걸게라고 생각했던 듯해요~ 원래 아름다운 것은 손에 잡히질 않으니,,,
뭐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