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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icaru ㅣ 2004-05-31 처음 읽음
기록을 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이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중에서
11년전 나는 정말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다른 사람의 리뷰였을까?
참으로 아름다웠던 문장들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희미한 흔적들만 남기는 연약한 무엇일 뿐이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러니까 허무한 느낌말이다.
참으로 온전하지 않은 삶이고 독서인데, 산다는 것의 실체이기도 할지 모르겠다.
다음은 그 때 썼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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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결국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무슨 일인지 이 글 속의 `나`인 롤랑 기는 자신의 과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최근에는 흥신소에서 위트라는 사내를 도와 일을 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자신의 신상의 전부다. 하지만 위트도 흥신소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고향인 니스로 떠난다. 이제 기 그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그가 ‘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남은 것과 남겼던 것이 무언지를 생각해 보면서 - 조용히 따라가 보았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들이 건넨 과자통이나 낡은 상자 속에 담겨 있는 사진에는,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나’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물었다.“이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는 나와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아뇨,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그렇지만 어쩌면......”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기’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지금 이 순간을 찬란한 감동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무심히 흘러 망각의 무(無 )로 변해갈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이 작품은 마치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언뜻 지나쳐본 장면, 창에서 내려다본 낯익은 거리의 풍경,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에서 포착하는 과거 한 때의 체험,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들이 무채색의 그림처럼 사람을 매료시킨다. 신문지상에 나왔던 모 작가의 말처럼, 참 매혹적인 소설이다.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