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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인생 - 개정판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었던 게 1998년이었으니까, 17년 되었다. 당시에는 신문의 북칼럼란을 꽤 꼼꼼히 보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알라딘이 없었으니까. 이 책은 고 박완서 님의 추천 북칼럼을 통해 알았다. 거기에서 박완서 작가는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지 못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첨가하였다. 17년이라,,,하하 어떤 책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어도, 인생의 기조 같은 게 되어 준다. 어떤 기조? 인생 뭐, 있어 짧게 살더라도 유쾌하게 살자~ 라고.
이제 열살 된 우리집 큰애도 말놀이를 하는 유희를 아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사소하다 싶은 것에도 리엑션 빵빵 터뜨려 주는 통에 실력이 차츰 좋아지고 있는 듯도 하다.
얼마 전에는 애아빠가 편의점에서 건빵 몇 봉지를 사다주면서, 저 빡빡해 빠진 과자가 뭐라고, 건빵 예찬론을 애들 앞에서 펼쳤다. 군대에서는 이것을 그냥 먹지 않고, 끓여도 먹을 수 있어, 그것도 맛있어. 별사탕하고, 이렇게 먹을 수도 있고..!"
큰애가 건빵은, " 총(건) 쏘는(빵) 연습하면서 먹는 과자라, 이름이 건빵인 모양이라고 한다. 동생(이름이 건)이 군대가서 총 쏘는 연습하면서 먹으면 제대로 일 것이라 한다. 군대라는 데가 훈련을 하면서 무언가를 먹을 턱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 말재간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빵~ 터뜨려 웃어줬고.
편집일을 처음 시작했던 출판사에서 만난 선배 언니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한다. 지나칠 정도의 특유의 꼼꼼함과 완벽주의로,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두손두발 다 들게 하고 머리까지 수그리게 만드는 놀라운 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언니를 완전주의자라고 부르겠다. 소리내어 불러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석제의 이 소설집에 <완전주의자를 위하여>라는 단편이, 마치 '나를 읽어보라'는 듯 내 눈앞에 버젓이 있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완전주의자'는 이런 식이다.
'류 박사' 로 불리는 이 분은 무슨 학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되, 텔레비전의 심야 토론에 나오는 어떤 박사보다도 더 박사처럼 생겼다. 그는 그가 사는 동네의 문관의 제왕이자, 배지없는 보안관에 정치평론가, 경제사가, 거기다가 유일무이한 언어학자이다.
특히, 언어학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것이, 그 동네의 약수터 옆에 만남에 광장이라는 푯말을 동사무소에 호통을 쳐서 '만남의 광장'으로 바꾸게 하였다. '뇌쇄(惱殺)'를 '뇌살'로 읽은 어떤 사람을 된통 망신을 주기도 하고, 그 동네 음식점의 차림표에서, '떡복기'를 '떡볶이'로, '김치찌게'를 '김치찌개'로 '육계장'을 '육개장'으로 일일히 지적하여 바꾸게 해 놓는다. 심지어 동네 미용실의 '스트레스 파마'가 '스트레이트 파마'로 까지 바르게 고쳐지도록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압권은 이런 완전주의자의 완전치 못한 일화를 하나 챙기는 데 있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저녁 연기>로 잘못 알고 있는 일화와, 빨대를 영어로 '스트롱'으로 발음했던 일이다.
소설의 효능은 이런 순간에 발현된다. 회사의 완전주의자 언니에게 전에 없던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상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완전한 사람은 진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것. 우리 회사의 완벽주의자 언니도 내가 보지 않는 어느 곳에서 가끔 이런 가당치 않은 실수도 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편의 소설이 묶어져 있는 소설집이지만 총 페이지가 200페이지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글들이 뒤틀리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우리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단편적이고 가벼운 꺼리로서의 재미가 아니라, 요절복통할 인생의 아이러니로서의 재미를 위하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