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박완서의 소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하나, 분단 문제를 다루는 작품. 둘, 소시민적 삶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 작품. 셋,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

이 작품은 첫번째와 세번째가 속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분단 이전 어린 여자아이의 성장 소설의 성격을 보이면서, 분단을 겪으면서 주인공의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점.

 

우리 아버지는 노래를 잘 부르시지도 않고, 그다지 음악을 즐겨하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예전부터 [가요무대]라는 프로를 좋아하셨다. (지금도 그 프로가 월요일 밤 10, 11시 무렵이 시작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아무리 무뚝뚝하고 완고한 지엄하신 어르신이라도 옛날 노래를 대하노라면 어린아이처럼 순한 얼굴이 되어 알싸한 추억에 잠겨드시는 것처럼 보인다.

참 의외인 것도 1930년에서 1950년도 당시를 살아본 일이 없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유년 시절과 장년 시절의 이야기 골짜기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빠져 읽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 박완서의 입을 빌자면 순전히, 그렇다. 순전히 기억에 의한 소설이라고. 그래서 요즘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장르 혼합의 포스트 모던한 소설들이나, 황당무계하다 싶은 역사 소설, SF장르의 소설과 많이 다르다. 작가가 서문에서 했던 말이 자꾸 속에서 밀치고 들어오는 것 같다. '기껏 활자 공해나 가중시키기 위해 진을 빼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다.'라던. 그렇다. 그의 이 소설은 결코 일회용품일 수 없다.

'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위의 인용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작가)은 자신의 벌레의 시간(공산주의에 물든 오빠로 말미암아 집안은 풍비박산되고, 주인공과 모녀가 겪는 시간의 과정)을 증언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하는데, 자신의 숙명을 예감하는 이 부분이 나에게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소설은 '나'라는 영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던 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니.....

그 밖에도 인상적인 부분은 많다. 특히 유년기를 보낸 박적골에서의 할아버지와의 추억담이 그렇다. 주인공(작가)을 '요 입 속의 혀 같은 것'이라며 이뻐하는 모습말이다. 그리고 도깨비와 화장실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이 참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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