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감옥에서는 사계(四季)는 어떻게 느껴지는 걸까요? 신영복은『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그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봄가을이 없다시피한 교도소의 계절을 ‘하하동동(夏夏冬冬)’이라고 했습니다. 교도소의 곳곳이 차갑고 메마른 콘크리트로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벽(壁)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지루한 고통이 봄(春)을 약하게 만듭니다.
봄이 없는 이곳에서 저자는 지난 날 가장 행복했던 봄날을 생각합니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청구회 추억’입니다. 문학 회원들과 서오릉으로 답청(踏靑)놀이를 가면서 우연히 만난 춘궁(春窮)에 찌든 여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했던 가슴 뭉클했던 시간을 되돌아 봅니다.
『청구회 추억』을 읽다 보면 아이들과 약속을 까맣게 잊었다는 것을 꾸밈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나오면 한 장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자 말대로 이 짧은 한나절의 사귐이 싫지 않은 장난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모르고 있다가 청구회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서야 선생님으로서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가 있었습니다. 저자와 청구회 아이들은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습니다. 저자는 아이들과 첫 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만약 첫 대화가 실패한다면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자의 이런 간절함이 처음에는 운명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두려워했던 마음 한 곳에는 ‘진정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열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그는 ‘사랑은 경작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랑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보낸 저자의 청춘은 고통과 절망의 반복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비열한 세상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비극을 견디는 것이 어쩌면 낭만적인 물음으로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저자가 꼭꼭 숨겨놓았던 청구회 아이들과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믿을 수 없는 운명과 마주서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까닭은 앞서 말했듯이 ‘사랑은 경작되는 것’이라는 훈훈한 감동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