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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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플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게서 그림이 없다면 내 삶은 폐허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림이 있으면, 내 삶 안에서 주고 받는 조화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좋은 그림이 탄생하겠지.” 잭슨 플록에게 그림이 삶의 즐거움이었듯이 사람마다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잭슨 플록과 우리와 다른 점은 그는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를 위대하게 했을까요? P.G. 해머튼의『지적 즐거움』은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에게 삶을 전환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저자 말대로 전략 혹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먼저 와 닿은 것은 건강이라는「육체적 기반」이었습니다. 지적인 생활에서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건강하기 위한 방법으로 운동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시간 절약을 위해 집중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한 평생 긴 안목으로 보면 건강은 최상의 투자라고 조언합니다.

다음으로 가난에 관련된「금전」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가난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으로 인해 지적 성장이 방해받는 것이 더 괴로운 일입니다. 만약에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돈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러면 콩트가 절망적으로 말했듯 “철학 상의 과제도 모두 내던지고 당나귀처럼 부지런히 일을 하며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시간을 지키는 방패로 돈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끝으로 독서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독서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고도의 지적 작용을 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에 늘 쫒기는 신세입니다. 그래서 독서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저자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목적에 가장 유용한 책을 선택하며 읽으라고 합니다. 또한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빼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빠뜨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지적 즐거움을 위한 7가지 엔솔로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지적 즐거움은 기계적 즐거움과는 다릅니다. 기계적 즐거움은 여기저기 다니는 활동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지적 즐거움은 고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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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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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는 사계(四季)는 어떻게 느껴지는 걸까요? 신영복은『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그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봄가을이 없다시피한 교도소의 계절을 ‘하하동동(夏夏冬冬)’이라고 했습니다. 교도소의 곳곳이 차갑고 메마른 콘크리트로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벽(壁)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지루한 고통이 봄(春)을 약하게 만듭니다.

봄이 없는 이곳에서 저자는 지난 날 가장 행복했던 봄날을 생각합니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청구회 추억’입니다. 문학 회원들과 서오릉으로 답청(踏靑)놀이를 가면서 우연히 만난 춘궁(春窮)에 찌든 여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했던 가슴 뭉클했던 시간을 되돌아 봅니다.

『청구회 추억』을 읽다 보면 아이들과 약속을 까맣게 잊었다는 것을 꾸밈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나오면 한 장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자 말대로 이 짧은 한나절의 사귐이 싫지 않은 장난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모르고 있다가 청구회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서야 선생님으로서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가 있었습니다. 저자와 청구회 아이들은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습니다. 저자는 아이들과 첫 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만약 첫 대화가 실패한다면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자의 이런 간절함이 처음에는 운명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두려워했던 마음 한 곳에는 ‘진정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열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그는 ‘사랑은 경작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랑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보낸 저자의 청춘은 고통과 절망의 반복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비열한 세상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비극을 견디는 것이 어쩌면 낭만적인 물음으로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저자가 꼭꼭 숨겨놓았던 청구회 아이들과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믿을 수 없는 운명과 마주서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까닭은 앞서 말했듯이 ‘사랑은 경작되는 것’이라는 훈훈한 감동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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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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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문(推口文)에 안중근 의사가 주장했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이 지금에 와서는 “하루라도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는다.” 로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스크랩을 하거나 댓글을 남긴다.

이러한 지적 재산의 변화를 경제학으로 탐구한 흥미로운 책이 있다. 바로 제레미 프로미의 『소유의 종말』이다. 그는 책 전반에 걸쳐 경제의 패러다임이 소유(Possed)에서 접속(Access)으로 되는 과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 날 즉 산업경제는 재산(유형자산)을 소유하는 것만이 물질적인 가치를 가졌다. 하지만 네트워크 경제는 문화적 재산(무형자산)을 접속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인간이 물질을 축적하고 가공하는 규모의 경제였다. 반면에 후자는 인간이 정신을 관리하는 개념의 경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기업이 어떻게 부(富)를 창출하고 있는지 제시하고 있다. 가령,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상품의 대량 생산이 아니라 개념의 대량 생산이 놀라운 성공 비결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제 부는 물적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소유에서 접속의 시대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체험이 상품화된다는 것이다. 체험이 중요해진 것은 체험의 공유가 문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본주의는 문화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변화 무쌍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즉 창조적 공연자다. 지난 시대 생산 중심일 때는 우리는 침착한 인간이, 소비 중심일 때는 매력있는 인간이었다.

일찍이 엘빈 토플러는『부의 미래』에서 미래 경제의 석유는 지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식은 어떤 상품보다도 이동이 편리하다고 했다. 또한 지식은 밀봉하기 어렵고 퍼져 나간다고 했다. 접속의 시대에서 지식을 상품화하기 위해 우리는 문화 생산을 하는데 놀이 정신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문화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지난 날 소유의 시대에 가장 큰 특징이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였다. 그래서 접속의 시대에는 배제당하지 않는 권리였다. 그러나 접속의 권리가 상업적인 관계로 탈바꿈되면서 진정한 문화적 관계가 점점 미미해졌다. 오로지 효용성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접속을 살펴볼 수 있었다. 소유의 반대인 접속은 물질이 비물질에 밀려나고 공간대신 시간을 상품화한다. 이렇게 될 때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마저 상품화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식견이 새로운 세계를 거듭거듭 생각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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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 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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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어쩌면 사랑에 빠져야 사랑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사랑의 전통적인 개념에 대해 스페인 어(語)를 보면 “떼 뀌에로”와 “떼 아모"가 있다. 전자가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당신을 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후자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는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데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진정한 사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의 차이에 대하여 에크하르트 톨레는『NOW』에서 에코의 치유력을 명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에코란 자기가 누구 인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며 자기 존재에 대한 허구의 느낌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가짜 자아이며 인간 의식의 기능 장애라는 것이다.

우리가 에코의 고통에 빠져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까닭은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의식이다. 이 세상에서는 서러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능들을 수행한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기능과 너무도 동일시된 나머지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지배해 자신이 연출하는 모습이 되어 버리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과거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내려 놓으려 하지 않는다. 과거는 기억의 형태로 당신 안에서 살아가지만, 기억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사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삶을 배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에서 감정적인 고통을 버리지 못한데 있다.

일찍이 프랑스 정신분석자 라캉은 “나는 머리가 아니라 발로 생각하고 이마를 부딪치면 이마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머리로 생각한다는 것은 곧 이 책에서 말하는 에코 즉 나의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가 발로 생각하고 있는 삶의 치유의 첫 번째는 “그노티 세아우톤- 너 자신을 알라!”에 있다. 앞서 말했듯 무의식 상태에서는 자신을 모른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두 번째는 지금 이 순간(현재)을 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의 친구이어야 한다. 만약 현재가 당신의 적이라면 당신이 바라는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는 침묵하라고 한다. 이 세상의 작고 조용한 것들을 깨닫기 위해서다.

우리는 누구나 제한된 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각자 행복한 삶을 바란다. 이럴 때 자신 만이 아는 방식으로 삶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자신 만이 옳다는 생각이 고통인데도 정작 그 고통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지혜의 가르침은 꽃과 같다.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깨닫기 때문이다. 한 송이 꽃에 대해 마음속에서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는 어설픈 감정보다는 눈으로 바라 볼 때 비로소 꽃이 꽃다워진다. 더 나아가 사람이 사람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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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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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 전에서 실패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폭력의 시대』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현상을 분석하는데 있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잊어버렸거나 잊고 싶어 하는 일은 기억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보다는 동시대의 기록에서 가능한 뒤로 물러서서 더 넓고 긴 안목으로 이 시대를 조망하고 있다.

그는 먼저 미국의 인도주의적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소련의 붕괴로 국제적인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서 힘의 균형이 미국으로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도 못 하고 있는 주권 국가의 위기가 발생하여 미국의 무력이 거침없이 사용되었다.

다음으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정치적 폭력에 있다. 그는 전쟁이라면 전술을 사용하는 정치적인 세력을 상대로만 치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전술로서의 테러는 비공식적인 단체가 사용하든 국가가 활용하든 간에 무차별적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한다. 덧붙이면 테러는 치안을 위협하는 문제이지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인데 미국이 오히려 테러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데 발생한 야만화를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일으킨 주요 원인은 민주주의를 확산을 통해 세계 질서를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강압적으로 전파하려는 행동은 보편적 가치를 손상시키며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제국, 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제국은 대영제국처럼 침략과 전쟁으로 세워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국의 몰락을 가져오는 것도 전쟁이라고 한다. 미국은 민주주의 전파와 인권 수호를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과대망상에 빠지면서 오히려 패권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정치적 이념의 기반이 무너졌으며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이 책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는 미국 제국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 사유가 담겨져 있다. 에릭 홉스봄은 “나는 제국주의를 혐오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이 담고 있는 사유는 비판적이며 절대적이다. 

지난날 영국은 ‘영광의 고립(splendid isolation)'이라고 표현했다. 국제적인 세력 체제에 자신이 일부분일 뿐 그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았다. 이번 책을 통해 미국을 성찰하게 되었다. 오늘날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미국의 탐욕이 ‘폭력의 고립’을 파악하는 중요한 열쇠임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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