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뜨겁고 고결한 자신의 영혼을 느끼는 것이요, 치욕스럽고 어리석은 것들에 대한 경멸을 유감없이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내가 오늘 무엇인가에 쓸모 있는 존재라면 그것은 내가 홀로 서 있기 때문이요, 증오하기 때문이다.

 - 에밀 졸라, [나의 증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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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 자체 - 현대 과학에 숨어 있는, 실재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울프 다니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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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공을 다루는 기술을 물론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과 경기에 감각이 대한 있어야 합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변수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축구 선수에게 수학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러한 도발적인 질문에 이론물리학자 울프 다니엘손은『세계 그 자체』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나, 수학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축구를 하는 동안 수학방정식을 풀어가며 매순간 공을 차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 수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의 노하우는 많은 경험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수학적 계산을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셋, 그럼에도 수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발상입니다.

 

되돌아보면 과학자들의 창의성은 수학적인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뉴턴의 사과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수학이 없다고 한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당연히 수학이 더 필요합니다. 수학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입니다.

 

저자는 수학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학이 정말로 필수불가결해야 하는가? 라는 까다로운 딜레마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필수불가결의 논리에 따르면 만유인력법칙 때문에 사과는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평범하면서 타당해보입니다. 문제는 사과와 만유인력은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사과는 실재하지만 만유인력이라는 자연법칙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발견하는 자연법칙이란 실재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우리가 만든 기술입니다.

 

저자는 기술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반격합니다. 그리고는 거듭 “부디 세계를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술과 혼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수학이 발달하면서 복잡하다고 의심되는 문제들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자연법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연법칙이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연법칙이 모든 것에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법칙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집착합니다. 이것이 저자는 말하는 “플라톤의 유령”입니다.

 

저자는 계속에서 ‘데카르트의 유령’을 이야기 합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곧 정신입니다. 정신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생각해보면 뇌 속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물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정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움직이는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파악합니다. 가령,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세계란 무엇일까요? 세계는 실재이고 실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자연법칙이 있을 것입니다. 자연법칙은 세계의 방정식을 해결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합니다. 자연법칙의 복잡한 계산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은 수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것은 수학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결과적으로 8가지 실재에 관한 연구를 통해 거듭 세계 그 자체가 분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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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파리. 반갑지 않은 해충이다. 소나 말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그래서 소나 말에게 여간 성가신 존재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쇠파리처럼 귀찮은 사람이라고 비유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을 귀찮게 해서 그랬다. 사람들에게 , 자신을 알라!”고 계속해서 말하니 듣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귀찮은 존재였을지 짐작이 간다. 나라면 쇠파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한 무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얼마쯤 가지고 있으니까.

 

밀란 쿤테라의 불멸을 읽는 도중에 귀찮은 쇠파리라는 말을 다시 들었다. 작가는 인생의 어느 순간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3단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인생의 어느 순간은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현상이다. 인생의 1단계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신경쓰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 죽음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인생의 2단계에 이르면 죽음이 보인다. 때로는 죽음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죽음 때문에 인생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을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3단계에 이르면 죽음에 무감각해진다. 예전처럼 죽음에 대해 전망도 사그라든다. 죽음을 너무 잘 아는 탓에 오히려 죽음에 대해 피로를 느낀다. 피로에 지친 나머지 죽음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의 3단계는 새로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죽음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이다. 일종의 마음이 건강해지는 자기 돌봄이다. 자기 돌봄이 풍부하고 깊어질수록 우리는 순수한 자유를 느낀다. 그래서 활력적인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당한 매력을 느끼면서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을 만끽하며 귀찮은 쇠파리라고 말하게 된다.

 

나는 소크라테스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 탓에 스스로를 귀찮은 쇠파리라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대신에 긴 세월 동안 공부(工夫)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독서는 내게 귀찮은 쇠파리라는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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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환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의사, 아니 자기 자신과 세계를 치료하는 의사인 것이다. 세계는 병이 인간과 뒤섞이는 증상들의 총체이다. 따라서 문학은 건강 계획서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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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 이 니라에 놓아 둔 쇠파리처럼 귀찮은 사람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어떤 곳에서든 당신을 붙잡아 자극히고, 설득하고, 나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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