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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평점 :
어느 동물보다도 말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질문을 합니다. 뭔가에 대한 호기심 내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질문이란 무엇일까요? 언어학자 촘스키는『촘스키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서 질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미스테리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풀 수 있는 질문입니다. 반면에 미스테리는 인간이 풀 수 없는 질문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너무나 분명하고도 단순합니다. 질문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문제나 미스테리는 그 결과로 보입니다. 혹은 질문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삶의 지혜를 듣게 됩니다. 질문보다는 상대적으로 대답이 인생을 더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가』는 생각의 차원이 다릅니다. 비록1.4kg 불과한 뇌이지만 우리의 모든 고민은 질문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즉, 대답에 앞서 질문을 찾아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말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질문하는 것은 가짜 질문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질문을 하면서 동시에 질문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질문은 ‘깊은 생각(Deep Thought)'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질문은 쉽게 잊히지만 어떤 질문은 잊히지 않습니다. 잊히는 듯하다가도 어떤 순간에 다시 떠오릅니다. 말하자면 다시 떠오르는 질문은 사실상 우리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의 내용에 따라 다시금 우리의 생각 속으로 파고들어옵니다. 깊은 생각은 다시 떠오르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만으로 질문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때 깊은 생각은 보거나 들었던 것을 상상하면서 본래의 그것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시 떠오르는 질문을 책 속에서 찾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박학다식해진다는 생각에 몰두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탐서주의(耽書主義)는 아주 일상적이며 깔끔합니다. 명쾌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책은 배터리가 필요 없다. 언제나 ‘켜 있고’ 인터넷도 필요 없다. 원하는 페이지로 바로 이동할 수 있고, 무게도 가볍다. 거기다 가격도 저렴하니 말 그대로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책은 또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인간의 뇌가 몰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읽는 자에게 새로운 만들어 줄 수 있는 책.(74p)
뇌과학자가 책을 선택한 이유는 책의 물리적 특성이 사용자들에게 최고라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굳이 책이 아니라도 사용자들에게는 정보를 얻는 다양한 채널들이 있습니다.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이용하여 정보를 쉽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터리가 없다면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맙니다. 그 순간, 우리는 어둠처럼 막막한 막힘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책은 다릅니다.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도 언제나 깨알 같은 글씨들이 정확하게 빈틈없이 살아있습니다. 살아있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합니다.
책의 존재 목적은 다른 것들도 많겠지만 책은 말의 재단사입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가’를 말하면서 질문을 찾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32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문학, 과학, 철학, 예술을 넘나드는 질문의 경계는 없습니다. 단 하나의 경계, 그것은 바로 세상을 발견하며 자시만의 언어로 의심해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질문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민도 없이 쓰여진 문장들은 단순한 자음과 모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 이것은 소통이 아닌 불통이며 희망이 사라진 문장을 고민하게 합니다.
저자의 질문을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되면 ‘함께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 혼밥과 혼술의 문화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남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번거로움은 어느 새 사르트르가『닫힌 방』에서 말했듯 지옥으로 변합니다.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것. 더구나 인생을 경제적인 교환의 가치로만 본다면 지옥은 그만큼 몇 곱절로 늘어나게 지요. 하지만 인생 전체를 본다면 ‘나 홀로’ 문화는 개인적인 이기심의 최대화이며 인간답게 잘 살고 싶다는 것도 해묵은 논리가 되고 맙니다. 오히려 삶의 가치를 고민하다 보면 나 홀로를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새로운 확신이 생겨납니다. 이유인즉, 인생은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함께 하면서도 결국 나 홀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질문은 미래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인공지능(AI), 로봇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발전시키면서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인류)'로 진화했습니다. 스마트인류의 핵심은 기술의 인간화입니다. 가령, 미국 시애틀에 생긴 무인(無人) 대형마트 ‘아마존 고(Amazon Go)'에는 점원도 계산원도 없습니다. 스마트한 인류가 될수록 기계 또한 스마트한 기술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계와 융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계와 경쟁하면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정체성입니다. 유발 하라리가『호모데우스(Homo Deus』에서 지적하고 있듯, 미래에 신과 같은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기술의 힘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인간성입니다.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성 없는 인간은 스마트한 기계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변모해 갈 수 있습니다.
고야의 판화 『변덕』 43번의 제목을 보니「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입니다. 제목 그대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대식의『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가』의 8번 제목은「대답에 앞서 질문을 찾아라」는 것입니다. 질문을 잘 모른다면 대답은 엉뚱해집니다. 삶의 관념으로 볼 때 고야의 이성과 김대식의 질문은 지적인 아름다움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데 있습니다. 때로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겠지요. 그러나 책을 통해 인생을 다시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를 궁리하게 합니다. 세계가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질문은 우리의 맥박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질문은 질문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더함으로써 더 많은 질문을 만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