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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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에 대한 인생수업! 고개를 끄떡이게 하며 인간에게는 극복하고자 하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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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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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삶을 전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프란츠 카프카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기 위해 책이라는 도끼를 들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철학이라는 망치를 들었다. 하지만 니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망치보다는 초인(超人)’이라는 인간의 형상이다. 지금에 와서는 초인보다는 위버멘쉬(Übermensch)’라는 말이 새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삶이 무엇인지를 갈구하던 시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위버멘쉬는 어떠한 고통에서도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는 말 그대로 위버멘쉬와 함께 하는 인생 수업이다. 삶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의 연속이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삶은 슬픔과 고통의 바다와 같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니체는 인간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있다. 바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가령, 니체는 강한 사람을 주장한다. 강한 사람이라는 비유는 고전적이지만 매우 유효하다. 강한 사람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강한 사람은 좋은 날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날보다는 나쁜 날이 많은 사람이다. 좋은 날은 삶의 변화가 없다. 반면에 나쁜 날은 삶이 무한히 변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법이다. 비록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가슴 뛰는 삶이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고통을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인지 고통을 앞에서도 자신의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위버멘쉬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버티고 싸우며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이다. 또한 극복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진보하는 용기가 바로 위버멘쉬였다. 고통 앞에서 적당히 살아온 나에게는 위버멘쉬가 정말이지 강한 사람이었다. 고통으로부터 삶을 배우는 용기 있는 영혼이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바라는 삶.


위버멘쉬는 진실의 힘을 믿는다. 진실은 단순히 거짓말의 반대는 아니다. 진실은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찍이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한 번의 거짓말은 스무 개의 거짓말을 더 만들어낸다고 했다. 결국 거짓말은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거짓말은 삶의 무수한 변명이다. 어디 그뿐인가. 삶에 대한 변명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방향을 알아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은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다.


되돌아보면, 나에게도 자유를 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니체를 만났다. 그의 철학은 불편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의 철학은 인간의 삶에서 자유의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만들어냈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의 핵심은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니체는 자유의지를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착각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우리는 착각 덕분에 삶을 살아가는 추진력을 얻게 되고 비로소 내 의지대로 살 수 있게 된다. 자유의지는 폭포와 같다. 폭포는 물리법칙에 따라 아래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폭포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아름답다. 만약에 자유의지가 없으면 폭포는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통을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믿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함부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위버멘쉬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불투명한 삶을 걱정하고 두려워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다. 막연히 열심히 사는 것이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단단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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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뜨겁고 고결한 자신의 영혼을 느끼는 것이요, 치욕스럽고 어리석은 것들에 대한 경멸을 유감없이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내가 오늘 무엇인가에 쓸모 있는 존재라면 그것은 내가 홀로 서 있기 때문이요, 증오하기 때문이다.

 - 에밀 졸라, [나의 증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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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 자체 - 현대 과학에 숨어 있는, 실재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울프 다니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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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공을 다루는 기술을 물론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과 경기에 감각이 대한 있어야 합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변수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축구 선수에게 수학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러한 도발적인 질문에 이론물리학자 울프 다니엘손은『세계 그 자체』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나, 수학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축구를 하는 동안 수학방정식을 풀어가며 매순간 공을 차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 수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의 노하우는 많은 경험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수학적 계산을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셋, 그럼에도 수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발상입니다.

 

되돌아보면 과학자들의 창의성은 수학적인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뉴턴의 사과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수학이 없다고 한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당연히 수학이 더 필요합니다. 수학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입니다.

 

저자는 수학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학이 정말로 필수불가결해야 하는가? 라는 까다로운 딜레마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필수불가결의 논리에 따르면 만유인력법칙 때문에 사과는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평범하면서 타당해보입니다. 문제는 사과와 만유인력은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사과는 실재하지만 만유인력이라는 자연법칙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발견하는 자연법칙이란 실재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우리가 만든 기술입니다.

 

저자는 기술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반격합니다. 그리고는 거듭 “부디 세계를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술과 혼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수학이 발달하면서 복잡하다고 의심되는 문제들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자연법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연법칙이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연법칙이 모든 것에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법칙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집착합니다. 이것이 저자는 말하는 “플라톤의 유령”입니다.

 

저자는 계속에서 ‘데카르트의 유령’을 이야기 합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곧 정신입니다. 정신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생각해보면 뇌 속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물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정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움직이는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파악합니다. 가령,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세계란 무엇일까요? 세계는 실재이고 실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자연법칙이 있을 것입니다. 자연법칙은 세계의 방정식을 해결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합니다. 자연법칙의 복잡한 계산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은 수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것은 수학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결과적으로 8가지 실재에 관한 연구를 통해 거듭 세계 그 자체가 분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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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파리. 반갑지 않은 해충이다. 소나 말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그래서 소나 말에게 여간 성가신 존재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쇠파리처럼 귀찮은 사람이라고 비유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을 귀찮게 해서 그랬다. 사람들에게 , 자신을 알라!”고 계속해서 말하니 듣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귀찮은 존재였을지 짐작이 간다. 나라면 쇠파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한 무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얼마쯤 가지고 있으니까.

 

밀란 쿤테라의 불멸을 읽는 도중에 귀찮은 쇠파리라는 말을 다시 들었다. 작가는 인생의 어느 순간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3단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인생의 어느 순간은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현상이다. 인생의 1단계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신경쓰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 죽음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인생의 2단계에 이르면 죽음이 보인다. 때로는 죽음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죽음 때문에 인생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을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3단계에 이르면 죽음에 무감각해진다. 예전처럼 죽음에 대해 전망도 사그라든다. 죽음을 너무 잘 아는 탓에 오히려 죽음에 대해 피로를 느낀다. 피로에 지친 나머지 죽음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의 3단계는 새로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죽음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이다. 일종의 마음이 건강해지는 자기 돌봄이다. 자기 돌봄이 풍부하고 깊어질수록 우리는 순수한 자유를 느낀다. 그래서 활력적인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당한 매력을 느끼면서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을 만끽하며 귀찮은 쇠파리라고 말하게 된다.

 

나는 소크라테스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 탓에 스스로를 귀찮은 쇠파리라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대신에 긴 세월 동안 공부(工夫)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독서는 내게 귀찮은 쇠파리라는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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