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은 결국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신의 한수는 통하지 않았다. 대신에 신의 한수를 보여준 것은 알파고였다. 알파고의 알고리즘의 수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러면서도 인공지능의 묘수였다. 좁게는 인간 대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을 흥미롭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둑판을 벗어나면 인공지능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깨닫게 된다. 당장 우리는 인공지능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만 한다. sf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점차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 순간, “과학은 장례식만큼 진보한다”는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이 말이 떠올랐다.

 

알파고의 시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시대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유발 하라리의『호모 데우스』는 호모 사피엔스의 장례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장례식을 치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쓸모없는 계급’이라는 잉여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날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지배자가 될 정도로 쓸모있는 계급이었다. 농업혁명으로 동물들을 침묵시킨 동시에 신을 믿었다. 그리고 과학혁명으로 신을 침묵시키고는 인본주의를 믿었다. 이제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기우제를 지낼 필요는 없다. 과학은 신성을 넘어섰다. 문제는 인간마저 넘어서면서 미래에 인간이 쓸모없는 계급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본주의의 제1계명은 ‘무의미한 세계를 위해 의미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좀 더 말하면 과거에는 신이 맡았던 역할을 인본주의에서는 인간이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 영혼,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생명과학, 뇌과학은 호모 사피엔스가 더 이상 신비한 블랙박스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어떤 결정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도 자유의지가 아니라 유전자, 호르몬이라는 전기화학적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자유의지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도 불투명하다. 개인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이 약 37개조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인간은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호모 데우스는 나눠질 수 없는 존재에 가깝다. 신이 된 인간을 과학적으로만 설명하다보니 적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현대 과학이 아무리 인간의 비밀을 해독한다고 해도 인간이 산소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도스토옙스키의『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나오는 ‘지하인’이 2×2=4가 꽤 괜찮은 녀석이라면, 2×2=5는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 호모 데우스는 종교적이다. 저자는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그리고 비유기체 합성을 말했다. 여기서 비유기체 합성은 바로 신성(divinity)을 획득하는 것이다.

 

미래에 호모 데우스가 신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놀랍다. 호모 사피엔스는 기독교, 힌두교, 불교 등 종교와 계약을 맺고 예수, 알라, 부처라는 그들의 이름을 창조했다. 하지만 호모 데우스에게는 유일신 같은 이름이 없다. 대신에 정보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호모 데우스에게 새로운 종교는 ‘데이터 교(敎)’다. 다시 말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인본주의 종교를 통해 영적 여행을 했지만 호모 데우스는 기술 종교를 통해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데이터 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보의 흐름이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호모 데우스가 ‘만물인터넷(Internet-of-All-Things)’가 되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데이터의 처리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지식이다. 지식은 석유, 태양 같은 에너지와 차원이 다르다. 보통 에너지는 사용하면 고갈되는데 지식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늘어나는 성장하는 자원이다. 하지만 우리의 뇌가 막대한 지식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떠한 지혜나 정보다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정보의 흐름이 막혀 버려 우리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이럴 때 데이터는 정보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면서 정보를 자유롭게 하고는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게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지식이나 지혜 같은 생화학적 알고리즘보다는 데이터라는 전산 알고리즘을 신뢰하게 된다.

 

저자가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의 정체를 광범위하게 파악하려는 것도 여기에 있다. 21세기 첨단과학으로 펼쳐지는 삶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다. 즉,

 

이 책이 현시점에 우리가 처한 조건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에 대해 훨씬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542~543p).

 

“역사에는 공백이 없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4차 산업혁명의 지각변동으로 지구촌이 들썩거리고 있다. 경험이나 감정이 아닌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호모 데우스가 우리의 미래이며 가능성이다. 삶의 모든 권위가 ‘나’가 아닌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미가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좀처럼 답할 수 없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얽매임 때문일까?『호모 데우스』를 읽으면서 호모 사피엔스의 장례식을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틀린 것이 아니다. 저자의 지식 생산은 역사의 공백을 없앴는데 탁월했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가 사랑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