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비용 제로 사회 - 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의 부상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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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제러미 리프킨의한계비용 제로사회는 자본주의 가 몰락한 이후의 사회를 흥미롭게 파헤치고 있다. 자본주의가 몰락한 원인을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찾을 수 있다. 정말로 자본주의의 운용 논리는 성공에 의해 실패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일까? 가령, 기업들은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 한계비용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궁극적으로는 한계비용 제로수준이 된다. 결과적으로 상품 가격이 공짜여서 기업의 이윤은 고갈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이후의 사회를 전망하는 것은 불투명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거대한 경제적 변화를 폭넓게 살피면서 공유를 재발견하고는 협력적 공유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공유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유지의 비극을 떼어놓기란 어렵다. 1968년 미국의 하딘 교수의공유지의 비극에 따르면 100마리의 양을 키울 수 있는 공유지에서 사람들이 서로 소득을 높이기 위해 양을 한 마리씩 늘려가다 보면 개인의 소득은 잠시나마 올라가겠지만 결국 목초지에는 양들이 먹을 풀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이 이 정도라고 하면 공유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공유의 개념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즈의 공유지의 비극, 오스트롬의공유의 비극을 넘어 등등 이들의 근본원리는 공유를 긍정한다. , 시장에서 모든 공유물은 파멸한다거나 개인은 사리사욕만을 추구한다는 것을 반박한다.

 

1, 2차 산업혁명 및 3차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 변화를 보면 생산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1, 2차 산업혁명에서 경제활동은 자본주의의 에너지체계 아래 수직적이며 중앙집권적형이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과 스마트한 공공 인프라가 주도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수평적이며 분산형이다. 기존의 제조방식과 다른 사물인터넷이란 우리 주위의 여러 물건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지능형 인프라를 말한다. 가령, 정보화제조(infofacture)라 불리는 3D프린팅이 상용화되면서 누구나 제조인프라가 되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쓸 수 있는 대중시대가 됐다. 기업이 독점적으로 생산하던 대량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새로운 에너지체계와 그것을 조직하기 위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의 융합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가령, 1차 산업혁명의 증기동력에는 인쇄와 전신의 매체와, 2차 산업혁명의 석유와 자동차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매체와 융합되었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의 네트워크화 공유사회에서는 인터넷이다. 1, 2차 산업혁명의 케뮤니케이션 영역이 수직적이며 중앙집권적이라고 인터넷은 수평적이며 개방형이다. 결과적으로 매개체의 문화 영역이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전환했다. 예전에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차량 공유 네트워크로 인해 비효율적인 고정 자산으로 되었다.

 

지난날 우리는 세계화시대를 살았다. 국가 경계를 넘어 하나의 단일화된 공간으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세계화는 정부의 규제 완화라는 그럴듯한 속임수로 공공 재화와 서비스를 민영화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세계화라는 상호 연결성 대신에 엔트로피 청구서(entropic bill)’를 감당해야만 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으로 에너지 총량에 있어 상실된 에너지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상실된 에너지는 더 이상 l이용할 수 없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발생한 에너지가 지구 생물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엔트로피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제시하는 협력적 공유사회는 자본주의의 이후의 새로운 대안이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자본주의의 시작은 인클로저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동 경작지가 울타리를 두르고 양을 키우는 방목장이 되면서 시장경제와 재산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자본의 심각한 부작용은 엔트로피 청구서의 만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의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과적으로 협력적 공유사회는 소유의 종말,노동의 종말의 연장선으로 자본의 종말이다. 하지만 자본의 종말이라고 해서 자본주의 시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주장은 ‘13세기의 산업혁명때문이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수력 방아다. 봉건경제의 손 방아에서 산업시대의 증기 방아라는 구별 때문에 실질적으로 중세 경제의 수력 방아의 중요성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력 방아 한 개로 10~20명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동력 용량의 획기적 증가에 기여했다. 이것뿐만 아니라 평민의 방아로 불렸던 풍력에너지도 화약, 나침반, 인쇄기라는 3대 발명품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자가 이점을 다시금 주목하는 것은 연성 원시 산업적 시장경제과 사물인터넷과 함께 자본을 대신하여 문명을 위한 협력적이고 재생적인 경제적 어젠다(agenda)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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