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6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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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의 해결책만이 있는 양 이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래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최근에 가진 경험과 공포를 고려하여 인간 조건을 다시 사유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사유의 문제이다. 사유하지 않음, 즉 무분별하며 혼란에 빠져 하찮고 공허한 ‘진리들’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뚜렷한 특징이라 생각된다.

한나 아렌트,『인간의 조건』

 

 

정민의『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공허한 진리를 반복하지 않았다. 18세기 한(朝鮮) 지식인이라고 하면 우리는 북학파(北學派)로 불리는 몇몇을 아는 정도라고 답할 수 있다. 화이(華夷)의 명분론에 맞서 북학은 실학(實學)이었다. 하지만 18세기 한중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상당히 멀어져 허학(虛學)에 가까워진다. 18세기 중(靑代) 지식인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8세기 한중 지식인들의 필담(筆談)과 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드넓은 세계를 담론이 아닌 팩트(fact)로 다양하게 쏟아내면서 접근하고 있다. 이유인즉 팩트의 학문은 어느 순간 비월(飛越)하기 때문이다.

 

 

문예공화국(Republic Letters)의 운명! 저자가 보여주는 이러한 학문적 결실은 몸으로 쓴 결과다.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았는가’에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문예공화국이란 ‘라틴어를 공통 문어로 나라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인문학자들이 편지와 책으로 소통하던 아름다운 지적 커뮤니티를 일컫는 상상 속의 공화국’(p5)이다. 저자는 한문을 공통 문어로 쓰는 18세기 한중 지식인 문예공화국에 관심을 가지고 지난 1년간 하버드 옌칭도서관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저자는 후지쓰카 지카시의 구장(舊藏) 도서를 두루 섭렵하였다. 저자에게 후지쓰카는 18세기 한중 지식인 문예공화국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출발점이었다. 당시 조선의 학문이 송명의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편견에 맞서 그는 ‘청조학으로 가는 우주정거장’이라는 학문적 엄정함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이 책을 통해 후지쓰카의 학문적 자존감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도 고백하고 있듯이 그는 쓰기보다는 읽기를 사랑한 학자였다. 어디 그뿐인가? 빨간 펜 선생으로 불렸던 그의 메모벽은 미련할 정도여서 일종의 책속의 지휘관이라는 범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잘 정리된 그의 방대한 소장서를 빌려보는 것이 감동스럽다는 저자의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독서망양(讀書亡羊)을 깨닫는다고 말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좀 더 읽으면 책이 책을 부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불러내는 그 풍요로움과 다채로움을 알았을 때, 화려한 학문의 꽃을 빨리 피우기보다는 지루한 학문의 뿌리를 오래 다지려고 했을 때, 그의 붓끝은 특별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저자에게 후지쓰카는 끊임없이 살아있는 지식인이었다. 후지쓰카를 말하면서 과거와 현재라는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저자에게 그는 언제나 현재이다. 그래서 그들의 학문적 인연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문예공화국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들이 필담과 편지를 통해 서로 간의 그리움과 애틋함, 안타까움을 남겼다. 그들의 사귐은 단순한 우정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천애지기(天涯知己)였다. 지기는 ‘비아관아(非我觀我)’였다. 즉 나를 넘어서 안목으로 나를 객관화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들에게 지(知)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문벌(文伐)공화국이라는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북학(北學)이 아니라 북벌(北伐)로 첨예하게 대립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소통망 즉 문예공화국을 복원하면서 ‘문화는 선(線)’이라고 표현한다. 저자의 문화관은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하지만 결코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문화가 선이라고 하면 방향성을 있을 것인데 단선적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문화는 소통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화는 그들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는 모든 방향에서 선이 교차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문화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교차하는 리듬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19세기 문예공화국이 어떤 리듬인지 더욱 기다려진다. 그 기다림 동안에 이 책을 몇 백 년 소장하기 위해서 책 속에다 은행잎을 넣어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충분히 사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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