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논쟁 - 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김대식.김두식 지음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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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게 착각일까? 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다. 공부를 즐겁게 하면 모를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출세를 하고자 한다면 공부를 지겹도록 해야 한다. 공부가 성공의 척도이다 보니 남들과 경쟁 해야만 한다. 경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경쟁이라는 공회전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을 통과한 사람들이 천재(天才)가 되다보니 우리는 천재에게는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 숨겨진 욕망이며 불가피한 변명이지 싶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공부를 하면서도 무기력에 빠져든다. 공부를 하면서도 ‘공부’의 정체성은 흐릿해지고 대신에 ‘천재’라는 것이 절망적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공부’가 중요하다고 누누이 역설해왔다. 그럼에도 공염불에 불과했던 것은 천재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모른다. 누군가가 정의감을 못 이겨 한국 교육의 허상을 폭로한다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싸움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게 사실이었다. 한 순간 시한폭탄이 터져 놀라면 그만이다. 괴짜 물리학자(김대식)과 삐딱한 법학자(김두식) 형제의『공부 논쟁』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천재에 집착하는 오직 일등주의에 쏠리는 현실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한 발자국씩 다가서기는커녕 역행하고 있어 우리의 미래가 서글퍼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를 줄기차게 염려하는 이 두 학자의 창의성을 보면서 불안한 희망이라는 뇌관을 제거 할 수 있었다. 창의성이란 김두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본적으로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다.

 

『공부 논쟁』에 있어 가장 민감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우리나라 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상을 수상한다고 하면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형제들이 이것을 반대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한국 사람에게 집착하고 있는 반면에 형제는 ‘한국에서 박사를 딴 사람’에게 더 의미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 박사를 딸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한국 사회가 그만큼 기초 과학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타게 된 것도 기초 과학의 인프라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기에 가능했다. 아인슈타인은 굳이 노벨상을 타지 않아도 큰 실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노벨상의 전부인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를 앞세우면서 말이다.

 

오직 한명, 즉 천재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의심하기란 어렵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천재에 대한 환상이 만연하여 불평등한 대가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들이『공부 논쟁』에서 천재의 허구론을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15세에 인생이 결정되어 일찌감치 번아웃(burn out)되는 학생들이 그렇고, 해외 명문대 교수의 연구를 따라하면서 하버드대 한국 분교가 되어 버린 교수들이 그렇고, 이 모두가 한국식 공부가 목표로 하는 ‘장원급제 DNA’을 주입한 결과다. 장원급제 DNA에서 중요한 것은 학문적 성과보다는 입신양명이다. 비록 입신양명 때문에 한국 사회가 괄목한 만한 경제적 성공을 이뤘다고 하더라도 돈벌이와 출세의 수단이라는 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우리의 교육이 ‘장인(丈人) DNA’으로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장인 DNA은 호기심을 가지고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인 DNA은 창의성이 있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 논쟁』을 읽고 나면 과학자를 중소기업사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삐딱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경쾌하다고 할 수 있다. 형제는 한국 공부의 풍토에서 장원급제 DNA은 천재인 동시에 바보가 된다고 역설한다. 천재라는 타이틀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며 이러한 감옥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천재는 무죄라는 담보를 제공받는다. 그러니 자신이 사는 세계의 고통에는 무심하기 짝이 없는 바보가 쉽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갑자기 돌출한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문제는 진짜 공부를 하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진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장원급제 DNA가 아닌 장원DNA으로 진짜 공부를 하는 거대한 전환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사회 공부에 직격탄을 날리는『공부 논쟁』은 굳이 읽지 않아도 왠지 책을 읽은 것 같은 ‘책에 대한 책’이 아니다. 진짜 공부는 장인 DNA라는 것. 더 이상 공부 논쟁을 하지 않기를 기대해 볼만한 가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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