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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카를 힐티가『행복론』에서 말했던가요? 사람이 의식에 눈뜬 최초의 순간부터 의식이 사라질때까지 가장 열심히 찾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행복의 감정이라고.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서 행복을 손에 넣을 수는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합니다. 행복의 방정식에 있어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다고 합니다. 반면에 불행한 사람은 행복으로 역전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행복이라는 것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사실상 행복은 나중에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불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이켜보면 불행이 불행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강상중의『살아야 하는 이유』는 고민의 흔적이 뚜렷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더욱 고민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스포츠화하면서 고민꺼리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적인 잣대에서 ‘베스트 원’이 되고자 합니다. 이런 경쟁에서 이제 우리에게 호모 사피엔스는 유효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호모 파티엔스’(home patiens) 즉, 고민하는 인간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생각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불투명하게 한다면 고민은 투명하게 합니다. 문제는 투명함의 정도에 따라 고민은 양날의 칼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고민은 진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인 반면에 지극히 사적이고 지나치다 싶으면 ‘자기추방’내지 ‘자기비방’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을 독파하면서 근대의 병인(病因)인 고민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돈, 사랑, 가족, 자아의 돌출, 그리고 세계에 대한 절망입니다. 돌이켜보면 다섯 가지는 지금의 고민과 상당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 기법을 빌리자면 그만큼 ‘사생’(寫生)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민에 휩싸인 사람은 겉만 보면 얼마든지 문제적인 인간이라고 속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윌리엄 제임스가『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말한 ‘거듭나기’(twice born)을 언급하면서 고민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임스에 따르면 거듭나기는 ‘병든 영혼’의 소유자가 하는 것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 그때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 인생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건전한 마음’의 소유자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으로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살아갈 근거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거듭나기’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듭날 수 있을까요? 저자는 빅터 프랑클이 말한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 질문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는 창조, 경험, 태도입니다. 이중에서 프랑클은 인간의 가치 중에서 태도를 가장 중요시 했습니다. 뭔가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경험하는 것도 아닌 뭔가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도 인간다운 업적을 하는 것이 곧 태도라는 것입니다. 가령, 톨스토이의『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고통 때문에 힘겨워하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구원받지 못한다는 태도를 깨닫고는 ‘죽음은 끝났다!’라고 하면서 비로소 행복했습니다.
우리들은 유한한 존재여서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라는 고민에 항상 쏠립니다. 무엇이 행복의 시작과 끝이라고 여기며 모두들 미래를 바라보며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눈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살아야 하는 고민에 대해 언제든지 “예”라고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거듭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창조나 경험이 아닌 태도를 통해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비하면 어쩌면 소극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을까, 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태도에는 ‘진지함’과 ‘사랑’이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만약에 진지함과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한 번 태어나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고민하는 예리한 통증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행복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