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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 - 영혼 있는 직장인의 일 철학 연습
배리 슈워츠 & 케니스 샤프 지음, 김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일이 없다면 모든 인생은 부패한다. 그렇지만 일에 영혼이 없다면 인생은 질식사한다.
-알베르 카뮈-
베리 슈워츠· 케니스 샤프의『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에 대해 궁금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답을 하기 때문이었다. 바쁜 일상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일하는 인간, 즉 ‘호모 워크스’(homo workers)와 마주 친다. 만약에 일을 하지 않는다면 카뮈 말대로 우리의 인생은 부패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일을 하면서도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기계적인 탓에 아무런 삶의 가치도 없을 것이다. 오직 일해야 하는 규칙만 있고 대신에 일해야 하는 영혼이 없다면 앞서 카뮈가 경고한 대로 우리의 인생은 질식사할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질식사의 위험에 놓여 있다. 이러한 까닭은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만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을 하다보면 선택을 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업무의 규율과 목적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가령, 교사는 학생들이 카르페 디엠, 즉 오늘을 즐기면서 공부를 하도록 이끌어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학생들의 성적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최선이 아닌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결국 교사는 무력감이라는 굴레 탓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만족의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phronesis)를 제시하고 있는데 충분히 고전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추상적이거나 소수만 갖춘 재능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데 있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이론이 아닌 실천의 문제로 파악했다. 즉 분노가 좋은가, 나쁜가라는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누구에게 얼마나 오래, 어떤 식으로 무엇을 목표로 화를 내야 하는가’가 중요했다. 따라서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똑똑함’이 아니라 ‘탁월성’을 발휘해야 한다. 탁월성
(excellences)이란 자제력, 공정성, 용기, 포용력 같은 기질을 일컬으며 달리 ‘미덕’(virtues)으로 불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된 탁월성, 즉 실천적 지혜는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회공동체의 미덕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먼저 ‘도덕적 자각’이 절실하다. 실천적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은 특수성을 인지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이해라는 서사 구조를 지닌 존재여서 ‘도덕적 상상력’과 ‘감정이입’이 요구된다. 도덕적 상상력은 ‘다양한 상황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간파하는 능력이며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정서적 기술이다. 그러나 도덕적 자각만으로 부족하여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통찰력(자기 성찰)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우리는 행동을 조율하면서 적절한 균형을 추구한다. 적절한 균형은 곧 ‘중용’이라고 하는데 산술적인 평균이 아니라 ‘공감과 거리감을 조율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내면으로는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냉정함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 책은 실천적 지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삶을 향상시키고 있다. 그리고 삶을 향상키는 목적은 행복을 조명하는 것이다. 행복학에 있어 ‘긍정 심리학자’로 불리는 마틴 셀리그먼은 자기가 하는 활동에 빠져드는 ‘몰입’과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하는 ‘의미 찾기’를 행복의 ‘대표적 강점’(signature strengths)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직업 심리학 교수 피터 워는 ‘자기 일에 만족하려면 몰두와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다채롭고, 일 처리 과정에서 재량권이 있어야 하며, 회사의 목적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심리학자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는 앞의 주장을 뒷받침하면서 ‘소명’(calling)과 ‘생업’(job)이나 ‘직업’(career)을 구분했다. 브제스니에프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재량권을 가진 자기 일을 소명으로 하는 사람들은 일에 크게 만족한다. 이것이 바로 ‘일과 지혜의 선순환’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공공기관이나 병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제도를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서는 규율과 인센티브가 원칙적으로 필요한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원칙이 바람직하다고 해서 모두 올바른 것은 아니다. 바람직한 원칙에도 판단이 들어가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해지고 만다. 즉 규율과 인세티브가 재량권을 통제한다면 실천적 지혜를 발휘할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긴다. 저자 말대로 규율이 도덕적 기술을 없애고 인센티브가 의지를 꺾는다, 는 것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결과적 똑똑한 만큼 무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기 일을 생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한계는 최소한으로 몰입하면서 최소한의 의미 때문에 만족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일과 규율의 악순환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실천적 지혜가 일과 지혜의 선순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며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떠한 일의 목표나 목적을 가리켜 텔로스(telos)라고 했다. 진정한 행복은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 텔로스를 찾아내고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행복과 함께 친밀한 사회적 관계에서 ‘온전한 행복’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성과주의, 능력주의의 문화로 인해 공정성이 불안정하고 삭막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럴 때 실천적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살 맛 나는 세상’에 대한 만족감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