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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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더구나 그건 죄악이거든.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죄가 아니라도 생각할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죄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난 죄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데다 죄를 믿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고기를 죽이는 건 어쩌면 죄가 될지도 몰라. 설령 내가 먹고살아 가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한 짓이라도 죄가 될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죄 아닌 게 없겠지.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었고, 또 죄에 대해 생각하는 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야. 죄에 대해선 그런 사람들에게 맡기면 돼. 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넌 어부로 태어났으니까.

『노인과 바다』 중에서

 

라 마르

당신은 바다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던 산티아고는 바다를 ‘라 마르’라고 부릅니다.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페인 말입니다. 산티아고는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어부들은 가운데 몇몇은 바다를 ‘엘 마르’라고 남성형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팔아 번 큰돈으로 모터보터를 사들인 부류들로 바다를 두고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은 84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했습니다. 처음 40일 동안은 고기 잡는 법을 배우며 그를 무척이나 따랐던 마놀린 소년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40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이제 노인이 살라오가 되었다고 하며 소년을 다른 배로 옮겨 타게 했습니다. 살라오는 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모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배는 첫 주에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습니다. 노인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소년은 아버지 말을 따라야 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신념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에게 다시 고기잡이를 같이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만약 소년이 친아들이라면 노인은 소년을 데리고 멀리 나가는 모험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자들 꿈을 꾸다

노인에게 85는 재수 좋은 숫자였습니다. 내장을 빼고도 450킬로그램이 넘는 고기를 잡아 가지고 돌아올 신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부모가 있었고 지금 운 좋은 배를 타고 있어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기잡이만큼이나 야구에도 관심이 많은 노인에게 소년은 가장 훌륭한 감독에 견줘 가장 훌륭한 어부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고맙다고 하면서 너무 큰 고기가 걸려서 소년의 생각이 틀리다는 게 입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비록 생각만큼 그렇게 힘이 세지 않을지 몰라도 요령을 많이 알고 있고 배짱도 있다고 노인은 거듭 말했습니다. 이제 노인의 꿈에는 폭풍우도, 여자도, 큰 사건도, 큰 고기도, 싸움도, 그리고 죽은 아내의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러 지역과 해안에 나타나는 사자들 꿈만 꿀 뿐입니다.

노인은 혼자 먼 바다까지 노를 저어나갔습니다. 그는 어떤 어부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어두운 해류의 층마다 정확히 그가 바라는 수심에다 미끼를 놓고 그곳을 헤엄쳐가는 고기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그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로 여겨 오히려 빈틈없이 일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노인은 굉장히 큰 고기가 미끼를 입에 물고 도망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기한테 끌려가면서 낚싯줄을 어딘가에 단단히 잡아맬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몸이 밧줄 걸이가 되었습니다. 서로가 필사적인 상태에서 고기가 선택한 방법은 온갖 올가미나 덫이나 계책이 미치지 못하는 먼 바다의 깊고 어두운 물속에 잠겨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가 선택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다다르지 못하는 그곳까지 쫓아가서 고기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디마지오 못지않은 사람이 되어야지

노인은 고기를 형제 사이마냥 끔찍이도 좋아하고 존경하였지만 고기를 꼭 잡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왼손에 쥐가 났습니다. 쥐가 나는 건 딱 질색이었습니다. 그건 자신의 몸한테 배신을 당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고기가 다이빙 선수처럼 온 몸을 물 위에 드러냈다가 유연하게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배보다 60cm도 넘는 고기가 왜 뛰어올랐을까, 생각했습니다. 마치 자기가 얼마나 큰지 자랑이라도 하려고 솟아오른 것 같다고 생각한 노인은 고기한테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고기가 자신보다 더 기품이 있고 힘이 세지만 다행스럽게도 고기는 자신보다는 똑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자신의 의지와 지혜로 고기와 맞서 싸웠습니다. 또, 얼마나 고통을 참고 견뎌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틀이 지나도록 결과를 모르는 상황에서 노인은 양키스의 디마지오를 생각하며 그에 못지않은 사람처럼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디마지오는 발뒤꿈치에 뼈돌기(발꿈치에 잘 생기는 돌기)가 박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참고 최후까지 멋지게 승부를 겨뤘습니다. 노인은 고통 같은 건 참을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기는 고통 때문에 미쳐 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노인은 머리를 맑게 하려고 했습니다. 머리를 맑게 해서 인간답게 고통을 견디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노인은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은 힘, 그리고 오래 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총동원해 고기의 마지막 고통에 작살을 꽂았습니다. 그렇게 싸움은 끝났고 이제 노예처럼 뼈 빠지게 일해야만 했습니다.

 

인간은 파멸을 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상어는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 냄새를 맡은 상어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노인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에게는 단호한 결의가 있었지만 희망은 별로 없었습니다. 상어가 공격해 오는 걸 막을 수 없더라도 혹시 해치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노인은 상어의 습격을 받아 몸뚱이가 30kg쯤 뜯겨져 나간 고기를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기가 습격을 받을 때마다 마치 자신이 습격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고기를 공격한 상어를 죽이고 나서 노인은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인간은 파멸을 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희망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죄악이었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죽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상어에게 최악의 사태를 당하자 노인은 고기한테 정말 미안했습니다. 고기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멀리 나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고기를 죽인 것은 다만 먹고살기 위해서, 또는 식량으로 팔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부라는 자존심 때문에 고기를 죽인 것입니다. 그는 고기가 살아 있을 때도 사랑했고 고기가 죽은 뒤에도 사랑했습니다. 고기를 죽인 건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 아닌 게 없었습니다.

 

백절불굴의 정신

바다에서 돌아와 침대에서 깊은 잠에서 깬 노인은 마놀린에게 자신이 고기한테 지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노인이 고기한테 진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김욱동은『노인과 바다』「작품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언뜻 보면 ‘패배’와 ‘파멸’ 사이에 이렇다 할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사전을 보아도 전자는 어떤 대상과 겨루어서 지는 것을 뜻하고. 후자는 파괴되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파멸’은 ‘패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헤밍웨이는 산티아고의 입을 빌려 물질적 승리와 정신적 승리를 엄밀히 구분 짓고 있다. 즉 ‘파멸’은 물질적 ․ 육체적 가치와 관련된 반면, ‘패배’는 어디까지나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노인은 육체적으로 파멸을 당해도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운 때문만은 아닙니다. 노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자 꿈을 꿀 정도로 사자를 사랑했습니다. 사자 꿈! 그것은 패배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백절불굴의 정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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