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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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숨 쉬듯, 저 멀리 숨을 내뿜으며 땅도 숨 쉰다. (…) 땅이 인간처럼 숨 쉰다고 말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땅이 숨을 쉬듯이 괴테가 숨을 쉰다고 말해야 한다. 괴테는 땅이 충만한 대기(大氣)로 숨을 쉬듯이 폐를 힘껏 넓혀 숨 쉰다. 숨 쉬는 영광에 도달한 자는 우주적으로 숨 쉰다.
                                                                                    바슐라르,『몽상의 시학』 중에서

미야베 미유키의『영웅의 서』를 읽는 동안 괴테가 땅처럼 숨을 쉬었다면 나는 책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숨을 쉬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책처럼 숨을 쉰다? 만약 책이 나처럼 숨을 쉬었다면 나의 까다로운 독서에 다가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책처럼 숨을 쉬는 것이 즐겁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온갖 글자들로 가득 찬 책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곧 ‘있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있어야 할 이야기는 ‘인간이 가는 걸음 뒤에서 따라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지나간 뒤에 길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이야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모방하려고 한다. 작가는『영웅의 서』를 통해 인간의 마음이란 ‘이야기’라고 하면서 사뭇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에서 말한 이야기는 글자들이 만들어낸 단순히 재미가 있다거나 없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이야기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때로는 정의, 때로는 승리, 때로는 성공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사람이 얼마나 부조리한 존재인지,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독특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버젓이 일어나곤 한다. 작가는 그저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이야기에 살려 한 죄’라는 강렬한 욕망을 한껏 뿜어낸다고 했다.

『영웅의 서』에서는 놀랍게도 반 친구 두 명을 칼로 찌르고 도망간 완벽했던 오빠 때문에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는 어린 소녀 유리코가 나온다. 가족의 단란함이 하루아침에 산산이 부서져버려 가슴이 요동치던 유리코는 오빠의 방에서 책의 정령인 빨강 책, 아쥬로부터 오빠는 “너무나 빨리 그것에 씌고 말았어.”라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아쥬가 말한 그것은 ‘영웅’이었다. 그러나 영웅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회자되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오빠가 그렇게 무서운 것을 저지른 것은 영웅이 오빠에게 들러붙어 나쁜 짓을 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영웅이라고 하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아쥬는 영웅이 나쁘다고 했다. 정말로 영웅이 무서운 존재라고 한다면 영웅에게 홀려버린 오빠에게 잘못은 없다는 게 유니코의 소녀다운 생각이었다. 유니코 말대로 오빠는 피해자이며 희생자다. 정말로 그럴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라는 말은 듣기에도 위험하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런 말을 꺼내놓을 수 있는지 아픔이 느껴졌다. 더구나『영웅의 서』에서 완벽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히로키마저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를 계기로 한 순간 잃어버린 것들이 새삼스럽게 드러났다.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을 동안 알 수 없었던 것들이 터무니없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말이다. 행복은 얼마나 약하며 기쁨은 얼마나 쉽게 빼앗기는지, 그리고 사악한 힘은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히로키를 변화하게 만든 사악함의 정체가 ‘영웅’이라고 밝혀지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여자 친구 미치루를 위해 히로키는 영웅다운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히로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되었다. 히로키의 영웅다운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복수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복수는 히로키에게 복수의 끝으로 되돌아 왔다.

이렇듯 이 소설은 영웅에 대한 갈망과 강박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영웅의 정체는 뭘까? 소설에 따르면 영웅의 양면성이 문제였다. 이것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영웅의 씩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영웅의 초췌한 모습으로 여겨졌다. 모든 사물에는 앞과 뒤가 있듯 영웅에게도 빛과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이러한 빛과 그림자는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한다는 것이다. 마치 다른 한쪽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열정으로 말이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도 짙어진다.’ 그래서 영웅의 빛이 정의라고 한다면 영웅의 그림자인 불의가 서로 경쟁하면서 어느 순간 사람의 혼을 빼앗아버린다. 겉만 봐서는 히로키의 복수의 끝은 정의롭다고 하겠지만 사실상 불의라는 것이 없이는 발현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슬픔이라고 할까.

그런데『영웅의 서』는 앞서 말한 대로 초등학교 5학년 유리코의 흥미로운 모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유리코는 행방불명된 오빠를 걱정하는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유리코는 여자이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는 않았다. 유리코에게는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같은 용기가 있었으며 ‘이름 없는 땅’에서 기이한 책과 싸웠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오직 오빠를 구하고자 하는 바람뿐이었다. 오빠는 영웅의 그림자라고 부르는 ‘황의(黃衣)를 입은 왕’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당하고 있다. 바로 영웅의 사본인『엘름의 서』의 주문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유리코는 오빠없는 세상은 불안하다고 하면서 ‘신비한 새로운 세계’(테두리)로 접어들었다. 이 테두리에서 유리코는 인간과 책이 싸우는 원인이 봉인된 영웅이 파옥(破獄)되었음을,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는 다시 ‘죄업의 대륜’을 타고 영웅을 봉인해야함을, 하지만 무명승으로 부터 결코 영웅은 봉인될 수 없음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영웅이 봉인될 수 없다는 것은 유리코에게 커다란 아픔으로 아른거렸다. 오빠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의를 입은 왕에게 매료된 ‘최후의 그릇’이기는 해도 유리코에게는 언제나 오빠였다.『엘름의 서』에 무슨 사연이 들어있는지 확실히 알 지 못했지만 오빠는 커다란 분노를 발산하고 싶었으며 이런 욕망이 영웅이라는 자신보다 더욱 큰 존재를 만나게 했다. 비록 테두리 영역에 사는 자들은 이름 없는 땅을 순환하는 이야기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도 결코 유리코가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테두리에서 오빠는 없다. 오직 무명승 즉 ‘죄업을 진 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무명승에서도 미숙한 무명승인 오빠가 진짜 무명승이 되기 위해서 지금 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화는 ‘맑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는 희망 같은 것이다.

누구나 히로키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성장과정에서 큰 상처를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영웅의 서』에 나오듯 영웅의 어두운 황의를 입은 왕에게 이끌리게 된다. 무명승이 될 수 있겠다는 두려운 마음에 가슴 아래께가 묵직했다. 무명승은 ‘하나이자 만, 만이자 하나’였다. 다시 말하면 ‘아침에 한 아이가 아이를 죽이는 세계는, 저녁에 만 명의 군사가 살육을 하기 위해 내닫는 세계’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하나의 정의가 만 개의 불의이며 만개의 불의가 하나의 정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하나 히로키의 복수심이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인지 파문을 일으켰다. 일찍이 수잔 손택은『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은 두 가지 가설을 통해 확대된다고 했다. 첫 번째 가설은 모든 사회적 일탈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모든 질병이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잔 손택의 논리대로 한다면 히로키의 불행이 복수심을 낳았고 복수심이 영웅에게 홀려버린 것이다.

복수심이 질병이라고 한다면 우리들 상식으로는 치료해야만 한다. 혹은 선은 강하고 악은 약하다는 흑백논리로 영웅에 기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작가는 ‘기성세대의 판결’에 대해 『영웅의 서』로 기묘하게 저항했다. 기성세대의 판결을 따르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좀 더 편한 해결이며 굳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영웅의 서』는 대단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오빠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오빠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과 ‘울어도 되지만, 절망해선 안 돼.’라는 메시지를 책의 정령들의 입을 빌려 어린 소녀 유리코에게 타이르듯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작가에게 뭔가 새로운 해결책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용서와 절망해서 안 돼, 라는 것은 나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답 없는 세상에서도 우리들이 숨 쉬는 것은 다 아는 것들을 반복하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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