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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할까, 어떤 여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다. 숨 가쁘게 달리던 차들은 멈춘 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녀 혼자만이 횡단보도를 만보객(萬步客)마냥 걷고 있다. 그 순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도시인이 만보객으로 느릿느릿 걷는 것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리라. 허공을 걷는 것이다. 혹은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꼴리니꼬프가 네바 강을 배회하는 혼란스러움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슬픔에 대해서는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만이 자신의 슬픔을 우울하게 위로할 뿐이다. 정말일까?
6년 만에 김영하는 신작 소설집『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가지고 돌아왔다. 6년동안 작가가 세상에서 보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세밀하게 펼쳐놓고 싶었던 같았다. 이 소설집을 읽어보면 21세기 삶은 도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듯 정차(停車)된 것만큼이나 번잡하며 그 간격이 좁아지는 데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도시에서 버림받는 자들의 가혹한 운명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기심과 욕망은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타락은 우리들의 진짜 삶일까? 도시인의 타락을 바라보는 김영하의 시선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러나 E. A. 포우 말대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치울 수 있는 장르인 단편소설들이라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김영하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만으로 이미 소름이 돋았을’거라는 박민규의 엄살은 아주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산문은 벼락같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따분하지 않다는 것이며 쿨하다. 굳이 우리 시대의 굴곡이 무엇인지 또박또박 따지지 않았다. 그의 날렵한 산문은 작가 말대로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조용히 깃든 이 내밀한 유쾌’함에 우리들 가슴이 몹시 흔들리게 된다.
세상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상실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그 어딘가에서는 분명 멈출 수 없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건조해지고 탁해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전혀 꿈꿀 수 없는 신비로움이었다.「로봇」에서 수경은 황사 때문에 모래폭풍이 부는 도시를 ‘멋진걸’이라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 때문에 모두가 함께 고통을 겪는 실로 공평한 재난’이라고 했다. 수경의 상실감은 돈을 받고 사장과 이상한 관계를 맺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수경에게 스스로를 로봇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나타난다. 자신이 로봇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로봇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사랑하는 대상 즉 수경을 발견하는 순간 자신이 로봇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3원칙’을 들려주었다. 즉, 제1조. 인간을 헤쳐서는 안 된다, 제2조.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로봇3원칙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는데 수경이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그랬다. 그러자 남자는 떠나고 만다. 죽도록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수경의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이것은 분명 로봇3원칙의 딜레마였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로봇」과 달리「밀회」에 나오는 남자는 스스로를 ‘해파리’라고 했다. 허파를 갈망했던 남자는 ‘공기의 그 허약한 물질성마저 그리워’ 했다. 그 남자는 공기의 힘으로 세상을 유영했다. 그래서 왜 하필이면 해파리일까, 궁금했는데 아마도 허파 때문이라는 것이 선명해졌다. 공기를 많이 마실수록 투명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밀회」에서 이 남자는 제목대로 ‘밀회’를 하고 있다. 해파리의 밀회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해파리가 마신 공기는 더 이상 윤리적이지 않았다. 사랑일까, 비극일까? 라는 진부한 혹은 경건함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밀회」의 두 남녀에게 ‘정신적 정당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쩌면 이것은 밀회를 나누는 여자의 남편이 앓고 있는 ‘카푸그라 증후군’이라는 특이한 감정이 농후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을 낯선 사람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의 남편에게 여자는 가짜 아내에 불과했다. 가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밀회를 나눈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이혼할 필요가 없었다. 진짜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욕망의 이면에는 친밀감이 사라진 외로운 존재의 꿈이 담겨져 있었다. 즉 밀회는 단순한 바람이 났다는 것이 아니라 외로운 인간의 버팀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친밀감에 대한 희구가 뒤섞인, 기인한 감정의 칵테일 같은 것’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악어」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허약하고 별 볼일 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만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눈동자’였다. 그런데 변성기(變聲期)가 찾아오면서 그의 일생은 ‘날카롭고 위험한 것’이 되었다. 그의 노래는 ‘모두에게 자기 생애 가장 슬픈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변성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나약함에 대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변성이 목소리로 끝나지 않고 변성(變性) 즉 악어(鰐魚)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악어의 정체는 뭘까?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성기를 겪는 남자에게 악어(樂語)가 되는 것은 최고의 복수일 것이다. 비록 어느 순간 악어(惡語)로 나락하게 될지라도.
만약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악어(惡語)를 말한다면「퀴즈쇼」에 나오는 동국처럼 실패하고 말 것이다. 동국은 ‘퀴즈쇼’에서 마지막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국의 경쟁자였던 은이의 담담한 얼굴과 마주치며 전혀 뜻밖의 오답을 말해버렸다. 은이는 동국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래서 동국은 그녀의 불행한 가족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것일까? 사이코패스의 희생자로 성장한다는 것은 저런 것일까? 그때의 불행으로 스물 살에 벌써 다 늙어버렸다는 그녀의 입에서 동국에게 ‘소양강 댐’이라는 시시한 말을 그냥 던진 것은 아니었다.
이 소설집에서 운명의 모호함에 대한 또 하나의 막막함은「조」였다. 작가는「조」를 ‘이것은 타락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하였다. 우리 모두 타락해 있으면서도 이것을 모른 채 서로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증폭하고 있다. 그럴 때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조」에는 필리핀에서 양봉업을 하는 사람의 성공과 실패라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양봉업자에게 필리핀은 아마도 천국일 것이다. 필리핀에는 겨울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가 졸지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약삭빠른 벌들이 필리핀에 겨울이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제살 갉아먹는 타락은 비극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하는 도시인들의 가짜 사랑, 타락, 성적 욕망이라는 내면의 고통을 영화처럼 찍어내고 있다. 그의 단편소설들이 영화같다고 하는 것은 바흐친의 따르면 ‘일상예찬론’이다. 그만큼 동시대적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정지 상태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명예살인」에 나오는 ‘작은 뾰루지로 시작한 트러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집을 읽어보면「퀴즈쇼」에 나오는 ‘인간은 타인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단편소설들의 반전(反轉)에는 타인의 마음을 충분히 상상해보게 했다. 김영하가 말하는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은 뭐랄까, 아무도 모른다에 대한 찬란한 채찍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