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
마크 보일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뭘까? 이러한 질문에 어렵지 않게 답하는 것이 ‘의식주’다. 돌이켜보면 의식주에 대한 고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전보다는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욕망은 보다 더 좋은 의식주를 충족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돈의 지배를 달갑지 않게 받고 있다. 의식주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다고 한다면 하루하루를 돈을 벌기 위해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삶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의식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돈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어야 한다. 이러한 무한경쟁에서 승자는 당연히 돈이다. 돈만 주면 다 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니 돈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의식주는 돈의 위조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프리코노미’(freeconomy)운동을 벌이고 있는 마크 보일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놀랍게도 돈의 문명에 대해 빛과 소금을 선물해주고 있다. 그의『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는 우리들 눈으로 허구 같지만 사실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여 자연과 더불어 펼쳐지고 있다. 정말로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가 가능할까? 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우리가 돈을 위해 일한다. 돈이 이 세상을 접수하고 말았다, 라는 저자의 충고를 깊이 있게 받아 들여야 했다. 더구나 ‘화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불평등과 환경파괴와 인간에 대한 경멸을 추진하는 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당면한 지구의 위기다. 신용경색이 구제받을 수 있다면 조지 몬비오트가 ‘자연경색’(nature crunch)은 구제 받을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


이 책을 보면 자연경색은 우리들이 돈과 수많은 갈등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한 ‘돈이 곧 빚이다’라는 은유는 매우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그래서 저자는 ‘응용 영성’(applied spirituality)을 실천하고자 했다. 응용 영성이란 나의 믿음들을 물질적인 세계에적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머리와 가슴과 손 사이에 모순이 적을수록 정직한 삶에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돈 없이 사는 삶에서 비(非)물질적인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누군가의 삶을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당신이 무엇인가를 아낌없이 준다면 그 행위는 유대와 우정을 돈독하고 그 결과 밝은 공동체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충돌이 아니라 공동체를 투쟁이 아니라 우정을 그리고 지구의 모든 종(種)들과 화합하는 것을 원했다.


저자는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라는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했다. 먼저 ‘노 머니’에 관한 원칙이다. 1년 동안 어떠한 돈도 받을 수 없고 지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정상’에 관한 원칙이다. 1년 동안 나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전기를 켠다고 해서 그 방을 나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받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재능의 하나였다. 셋째, 다음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에 관한 원칙이다. ‘다음 사람에게 베풀기’(pay it forward)는 무조건적이 베풂이다. 넷째, 타인에 대한 존경에 관한 원칙이다. 다른 사람의 희망을 존중해준다면 그 사람도 당신의 생활방식을 존경해줄 것이다. 다섯째, ‘화석연료 반대’에 대한 원칙이다. 국경을 넘는 것처럼 걸어서나 자전거로 불가능한 여행일 경우만 히치하이킹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경비 선(先)지급 불가에 관한 원칙이다. 평소 예상할 수 있는 청구서에 대해 돈을 미리 지급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말한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라는 체험을 다양하게 공감할 수 이었다. 저자 말대로 돈을 포기한 삶의 구석구석은 황량했다. 그것은 그 삶 자체가 힘들어서 아니라 현대 서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안락에 너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소비지상주의가 우리의 행복을 비틀거리게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소비지상주의는 아마도 정상적인 삶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는데도 여전히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만족할 줄 모르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데 있다. 그래서 저자가 지향하는 ‘슬로우 라이프’는 아주 소중한 삶의 지혜다. 단순히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경이로움이거나 환겨에 이로운 점이 많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보다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과 더욱 가까워질수록 감사의 마음이 더욱 커지는 덕분에 있다.


일찍이 E. F. 슈마허는『자발적 가난』에서 삶에 있어 ‘직선의 논리’와 ‘곡선의 논리’를 말했다. 직선의 논리가 많음이 곧 많음이라고 한다면 곡선의 논리는 적음이 곧 많음이라고 했다. 전자가 생존의 논리를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삶의 가치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부(富)가 가져오는 문제에 있어 전자가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자라고 한다면 후자는 자발적 가난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돈의 지배에 대한 비판 의식과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를 직접 부대끼며 느낀 실존적 고민은 다름 아닌 ‘베풂의 정신’이었다. 즉 아무런 보답도 생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 베풀면 당신도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의 유기적 흐름이며 마법의 댄스다. 그래서 우리가 마법의 댄스와 함께 여럿이 춤을 추면서 돈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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