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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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입니다. 이러한 까닭에는 사랑과 가정생활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변화, 인생의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오블론스키는 자유주의자입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자가 보다 합리적이라는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유주의가 그의 생활방식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그는 자기 집의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자들이란 나사와 같으며 그 위에서 모든 것이 돌아간다고 변명했습니다. 더구나 그를 찾아온 레빈이 결혼했고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데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마치 지금 배가 부른데, 빵집 옆을 지나면서 빵을 훔치는 것과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좋은 냄새를 풍기는 빵을 훔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블론스키의 갑자기 불어 닥친 사랑은 매력적이면서 외로운 여자에 대한 연민이었습니다. 하지만 레빈은 아름다운 타락한 창조물인 파충류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오블론스키가 두 여자가 있는데 한 명은 자신의 권리만을 주상합니다. 그 권리란 그녀에게 도저히 줄 수 없는 사랑을 요구합니다. 또 한 명은 모든 걸 희생하면서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누구를 선택하는가를 따지면서 바로 여기에 끔직한 드라마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레빈은『플라톤』의 향연의 두 가지 사랑을 기억했습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한쪽 사랑만 알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쪽 사랑만 압니다. 그리고 육체적 사랑만 아는 사람이 꼭 쓸데없이 드라마를 운운한다고 하면서 그런 사랑에는 드라마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플라토닉한 사랑에도 드라마는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도덕군자로 불린 레빈은 이 세상의 모든 아가씨를 두 부류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온갖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지극히 평범한 여자들입니다. 또 하나는 어떠한 약점도 없고 모든 인간적인 것을 초월한 여자입니다. 레빈에게 오블론스키의 처제였던 키티가 전부였습니다. 오직 그녀만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레빈이 키티와 결혼하려면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브론스키와 경쟁해야 했습니다. 공작의 딸 키티에게 젊고 매력적인 장교인 브론스키는 좋은 남편감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던 야만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뚜렷한 직업도, 사회적인 지위도 없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나 하는 일에 매달려 있는 레빈이 야만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키티는 사랑을 선택하는 데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브론스키는 대단히 사교적이고 침착한 사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거북한 느낌이었습니다. 반면에 레빈을 생가할 때는 너무나 담백하고 깨끗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이 어떠한 위선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과는 달랐습니다. 브론스키와 함께 할 미래는 찬란하게 빛나는 행복한 전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레빈과의 미래는 앞날이 안개처럼 흐릿해보였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그녀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결혼 상대자였던 브론스키는 가정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교계에서 만나는 아가씨들과 교제하면서 그는 황홀함만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에게 결혼은 남의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아가씨들을 유혹하는 것이 그저 젊은이들 사이에 흔한 나쁜 행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키티의 작은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큰 불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빠 문제로 페테르부르크 철도역에서 안나 카레니니가 브론스키를 만나면서 그들의 불길한 징조는 시작되었습니다. 무도회에서 그들이 보여준 운명적인 사랑을 보면서 그 순간 키티는 10년을 산다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수치를 느꼈습니다.

안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기차에서 브론스키를 우연한 만났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객차에서 브론스키를 보면서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눈동자와 미소에서 떨리던 억제할 수 없는 불꽃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지 오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그녀가 있는 곳에 있고 싶어서라는 고백을 듣기라도 한 듯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당신이 이 기차에 타고 있는 줄 몰랐어요, 어째서 모스크바로 떠나시나요?”라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도 알잖습니까, 당신이 있는 곳에 있고 싶어서 떠난다‘는 것을. 이러한 그의 사랑은 마중을 나온 그녀의 남편을 보면서 더욱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그이 예리함은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 사랑할 수도 없어’라고 단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안나가 모스크바에 다녀온 뒤로 많이 변했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브론스키라는 그림자를 달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림자가 없는 사나이, 그림자를 잃은 사나이는 어떤 경우일까? 사나이가 그림자를 잃은 건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무분별한 사랑 행동에 대해 그녀의 남편인 알렉섹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을 파고들다 보면 우리는 종종 그 속에서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던 것을 발견하고 하지. 당신의 감정, 그건 당신의 양심 문제야.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 앞에서, 나 자신 앞에서, 하느님 앞에서 당신의 의무를 일깨워 줄 의무가 있어 우리의 삶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어. 그리고 우리를 묶은 건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야. 이 결합을 파괴할 수 있는 건 오직 죄악뿐이지.” 안나는 이런 남편을 브론스키에게 인형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즉 그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관청의 기계였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는 데 있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형이하학적인 반면에 남자들은 사랑으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만들고자 합니다. 안나가 브론스키에게 사랑을 갈망하고자 하였지만 브론스키는 그녀에 대한 사랑에서 사회적인 출세로 옮겨갔습니다. 그럴스록 안나는 사교계에서 지옥에 놓인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안나에게 수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안나는 ‘난 사랑을 원해 그런데 사랑이 없어 그러니 모든 게 끝난 거야’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리고는 브론스키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하면서 책망하는 것에 대해 정직하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심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안나는 당신이 그에게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모습 그대로 그를 온전히 사랑하고자 했습니다. 그 사람의 미덕이나 명예를 증오했습니다. 그 사람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일수록 자신은 그 사람의 손톱 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불행만이 앙상하게 가슴을 후볐습니다. 그 사람은 뭐랄까, 당신을 사랑하는 데도 어머니의 반대로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마는 ‘심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나는 질투하는 여성이 아니라 ‘심장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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