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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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태어나는 것일까요, 만들어지는 것일까요?『제2의 성』을 쓴 시몬느 드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녀는 남성을 제1의 성, 여성을 제2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에서 한정되고 달라지지만, 남자는 여자에 대해 그렇지가 않다. 여자는 우발적인 존재다. 여자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비본질적이다. 남자는 주체다. 남자는 절대이다. 그러나 여자는 타자이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남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자궁이며 난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헨리크 입센의『인형의 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종달새’로 불리는 노라가 나옵니다. 세 아이를 둔 엄마인 노라를 그녀의 남편인 헬메르는 작고 귀여운 종달새라고 불렀습니다. 남편을 위해 즐겁게 노래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낭비꾼 새’라고 했습니다. 돈을 최고로 좋아하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첫 월급을 받으려면 아직 네 달이 남아 있는데 노라는 아무 걱정없이 크리스마스 주간에 돈을 다 써버렸습니다. 남편인 헬메르가 보기에는 낭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돈을 낭비하는 것은 경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헬메르는 노라의 낭비벽을 보면서 ‘여자는 어쩔 수가 없다’라고 실망했습니다. 도무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손에 넣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도 돈이 생기면 그 돈은 바로 노라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 그 보다는 노라가 돈을 잘 가지고 있고 그 돈으로 정말로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였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돈을 빌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노라의 생각인 반면에 헬메르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빌린 돈, 빚을 가지고 살림을 하면 뭔가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 보기 안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안 좋은 일은 죽을병에 걸린 남편을 위해 노라가 가장 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변호사인 크로그스타드에게 돈을 빌리고야 말았습니다. 빌린 돈으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습니다. 돌아올 때는 그녀의 말대로 남편은 싱싱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크로그스타드에게 돈을 빌리지 않았다면 남편의 생명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남편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것을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에게는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에게 돈을 빌려도 괜찮은지 물어봤지만 그는 화를 냈으며 그녀의 경박을 다스리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라는 사랑 때문에 남편을 구했습니다. 비록 여자가 남편의 동의 없이 돈을 빌린다는 것은 사회적인 잣대로 보면 잘못이었습니다. 물론 남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아내라면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다만 남편 모르게 하는 일이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크로그스타드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이미 죽은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했습니다. 결국에는 이것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지만 노라는 그것까지 신경을 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사건의 과정을 묻지 않는 다고 하자 노라는 ‘아주 나쁜 법’이라고 심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내라면 남편의 생명을 구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제가 아는 건, 이런 것들을 어디에선가는 허용해야 한다는 거예요’

[인형의 집]에는 노라가 말한 아주 나쁜 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헬메르의 위선입니다. 그는 도덕적 환자였습니다. 도덕적인 타락을 파헤치고 거기 관계된 사람들에게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지위를 얻어내려고 했습니다. 노라의 비밀을 밝혀지자 그는 경박한 여자 때문에 자신의 행복과 미래가 모두 망가졌다고 증오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건을 축소하고 싶었습니다. 가령, 노라가 모든 책임을 지고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는 계속 당신은 집에 있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전과 똑같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거짓 행복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크리그스타드가 차용증서를 돌려주면서 그녀를 용서하자 그는 ‘나는 살았어! 나는 살았어!’라고 기뻐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사건은 헬메르에게 끔찍했습니다. 도덕적인 불명예를 용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노라가 보호했다는 것이 정말이지 꿈에 지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모든 사건이 아무 탈 없이 끝나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노라가 아내의 도리 그대로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통찰력이 부족해서 수단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신에게 기대면 노라에게 충고를 해 주고 여자인 노라의 무력함이 그녀를 두 배로 매력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는 남편이 되어서는 안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마음을 열기만 하면 그는 노라의 의지와 양심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노라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남편의 ‘인형 아내’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남편에게는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일이며 자신을 두 배로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노라에게 그것은 두 배의 고통이었습니다.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은 집에서 그녀는 남편에게 재주를 두 배로 부려야 했습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인형의 집에서는 단지 재미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라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될 수도 없다는 불행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노라에게 아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의무라든지 종교라든지 도덕적인 감각이라든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결혼을 위한 놀랄만한 기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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