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설 - 과소비사회의 소비심리를 분석한 미래사회 전망 보고서
질 리포베츠키 지음, 정미애 옮김 / 알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A. J. 크로닌의『성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처음에는 일 년에 1000파운드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한 수입이 들어오자 곧 희망 금액을 두 배로 올리고 그 숫자를 최대치로 잡았다. 그러나 그 최대치에 도달하고서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높여 나갔다. 가지면 더 갖고 싶었다. 그리고 그대로 갔다면, 그는 결국 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그(앤드루)처럼 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으로 행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물질적 성공으로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과시할수록 이러한 기댓값은 최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댓값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돈이 있는데도 역설적으로 그가 불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질 리포베츠키는『행복의 역설』에서 흥미롭게도 과소비사회를 분석하면서 현대인의 불행에 접근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비주의 3단계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즉 생산과 대중 마케팅의 1단계, 대중소비사회의 2단계 그리고 과소비사회의 3단계다. 특히 2단계인 대중소비사회는 물질적 안락함으로 인해 풍요로운 사회이며 욕망의 사회였다. 결과적으로 욕망이 양적으로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3단계는 비소비사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대중소비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소비사회를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단순한 생각과 달리 과소비사회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상품과 불가분의 관계며 결국에는 소비하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저자는 3단계에서는 우리가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소비자 즉 ‘소비주체(consommacteur)'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정체성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창조적 소비, 감정적 소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소비사회라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비록 질적으로 소비패턴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행복의 추구에 대한 또 다른 갈등이 있다. 이것이 곧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행복의 역설’이다. 저자는 5가지 패러다임을 통해 과소비사회의 심리를조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페니아(Penia)다. 소비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욕구를 자극하는데 그런 만큼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절망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디오니소스다. 쾌락도시에서는 안락함과 풍요로움의 디오니소스다. 그러나 과소비사회에서는 유희-축제의 가치 기준이 확산되며 사실상 완전히 반디오니소스(anti-dionysiaque)다. 즉 개인이 디오니소tm적인 게 아니라, 개인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공동체를 도구화하며서 디오니소스적인 분위기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슈퍼맨이다. 실적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잠재력이 주요 결정 요소가 되었다. 완벽에 대한 집착이다.

네 번째는 네메시스다. 과소비사회는 투명한 사회다. 모두 보여주고 모두 말하고 모두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개인의 사적 영역의 마지막 힘이 바로 질투심이다. 풍요로운 사회일수록 질투가 더 심하며 ‘모방의 지옥’에 따라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호모 펠릭스다. 대중 미학의 소비시대에서 파괴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책임감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또한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미시 유토피아시대다. 개인의 자아도취에 따른 지혜조차 즉흥성과 감정이라는 ‘가벼운 지혜’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를 역설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정복과 위험에 대한 열정이 높은 사회라는 것이다. 행복의 보편화 현상과 위험한 행동의 증가가 함께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의 과소비사회에서 개인의 위치는 역동적이며 초개인주의다. 그래서 단순하게 소비재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을 정복하면서 재창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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