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구판절판


물론 세상에 통용되는 몇 가지 이별의 지침들이 있기는 했다. 떠난 사람은 깨끗이 잊는 게 낫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곧 괜찮아질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지내야 한다. 슬픔이나 고통은 혼자 조용히 처리해야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 지침들은 그러나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아픔이 더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17쪽

그보다 좋은 것은 애도 작업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상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혼자 힘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감과 자율성이 강화된다. 그리하여 애도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결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생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새로운 자기, 새로운 비전, 새로운 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45쪽

'괜찬하'라고 말하지 않기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인사할 때 '괜찮다'는 의례적인 답을 건네지 말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여전히 좀 슬프다. 무거운 마음이 걷히지 않는다 등등. 감정을 표횬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문제가 조금씩 해결된다.-88쪽

정신분석은 늘 '지금 이곳'을 강조한다. 그 단어 속에는 과거나 미래에 살지 말라는 경고뿐 아니라, 현실 너머를 꿈꾸지 말라는 의미도 들어 있을 것이다. 환상은 의존성이나 나르시시즘처럼 성장하면서 버려야 하는 생존법이다. 그러지 않으면 외부 현실을 인식하는 눈을 갖지 못하게 되어 허공에서 비둘기를 꺼내고자 애쓰게 되기 때문이다.-106쪽

용기 있게 살아가기
세상의 모든 가치가 사라지고 생이 무의미해질 때, 그런 때조차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애도 작업의 일부이다. 인간 뿐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길 때, 의혹을 품은 채 신에게 경배하는 일이 삶의 일부이다. 실패나 실연을 무릅쓰고 다시 미래를 꿈꾸는 것, 밥을 먹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참아내며 계속 먹는 일이 바로 용기이다. -169쪽

울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눈물은 한 사람의 가장 위대한 용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간혹 어떤 이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자가가 울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나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때 부종에 시달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부종의 고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부종을 이겨냈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고배했다.
"실컷 울어서 부종을 몸 밖으로 내보냈다네."-212쪽

용서하지 않을 자유, 용서할 수 있는 용기
정말로 용서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다.용서하지 않고도 과거를 정리하고 화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하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다면 가해자보다 강해졌다는 뜻이다. 진정한 자유는 용서한 사람이 받는 선물이다.-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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