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식의 이점은 무엇일까? 엘빈 토플러는『부의 미래』에서 가슴에 새길만한 몇 가지를 말했다. 그중에 지식은 원래 비경쟁적이라는 것이다. 즉 지식은 수백만 명이 사용하더라도 감소되지 않으며 수백만 명이 똑같은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은 지식을 생성해 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지식은 명시적일 수도 암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표현될 수도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타인과 공유하거나 자기 마음속에 간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탁자, 트럭이나 다른 유형의 물건들은 마음속에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고 부르는 지식인이 있다. 바로 끊임없이 읽고 쓰는 유시민이다. 18세기 이덕무가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고 자신의 습관적 사고를 말했다면 21세기 유시민은 이러한 관성의 법칙에서 변화해왔다. 다시 말하면 책에서 지식으로, 바보에서 소매상이라는 진보적인 사고방식으로 내면적인 성장을 계속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저자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정신 궤적을 따라가는데 만족했다면 그의『청춘의 독서』는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아널드 토인비가 말한 ‘역할의 전도’현상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토인비의 역사는 도전과 순응의 연속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대가 바뀌고 도전의 성격이 달라지면 응전에 성공하는 주체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명확한 지를 반성하면서 앎의 절실함을 고백하고 있다. 가령, 랑케의『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를 읽으며 ‘역사는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리저리 변화할 따름이라는 것’을 믿었다. 하지만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후 비로소 지식인의 고뇌 즉 무지의 자각이 충격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진보적 지식인이 되었다.
진보는 곧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성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대담한 결의’였다. 그래서 그는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역사가의 임무는 랑케의 ‘가위와 풀’로 만든 것이 아니라 E. H. 카가 말한 ‘자루’와 같다는 것에 공감했다. 즉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루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지 않으면 사실은 일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지식인의 의무는 지식을 일어서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지식의 자루에 담았던 것은 고전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전을 낡은 지도라고 달리 불렀던 것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방법적인 회의를 했던 청춘을 고전 작품들과 동고동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신념을 명확하기 위해 또 다른 고전을 읽고 읽었다. 이러한 지나한 독서를 통해 그는 그릇된 편견과 고정 관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가령, 도스토옙스키의『죄와 벌』을 읽고 사회악을 어떻게 바라 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 소설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 이유는 전당포 노파가 사회악이기 때문이었다. 니체의 초인(超人)사상에 따르면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 혹은 도스토옙스키처럼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대에 마지막으로 읽은 고전이었던 헨리 조지의『진보와 빈곤』에서는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헨리 조지는 문명이 발전해도 단순 노동의 임금은 오르지 않으며 오히려 지대(地代) 즉 토지 가치가 오른다고 했다. 그의 지대이론에는 토지의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리카도가 말한 토지의 비옥도가 아니라 토지의 위치라고 설득력있게 주장했다.
유시민의『청춘의 독서』를 유쾌하게 읽으면서 고전 작품들의 실체를 만날 수 있었으며 그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 흔히 고전이라고 하면 꼭 읽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이 “고전 문학을 누구나 다 읽고 싶어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던 고전콤플렉스에서 누구나 자유롭지 못한 게 우울한 현실이다.
저자는 이점을 우려하면서 고전을 읽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동시에 고전에 나와 있는 단편적인 주요 사상하나만으로 마치 고전을 다 앍고 있다는 착각의 오류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것은 훌륭한 독서가 아니며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라는 저자의 진심을 거부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킨 책들은 많다. 이러한 책 속에 담긴 지혜와 지식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유시민이『청춘의 독서』에서 언급했던 고전 작품들은 여전히 녹슬지 않는 주옥같은 책들이다. 그렇기에 세계를 보다 열린 눈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힘을 자신의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를 보면서 지식은 탁자가 아니다, 라는 강한 인상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