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삽질공화국이 대한민국의 4대강을 파헤치고 있다.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경제이다 보니 4대강 하나쯤 희생양이 되는 것쯤이야 ‘나쁜 사마리안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4대강이 아니더라도 무분별한 개발 독주는 맹렬하게 확산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4대강만 특별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라는 궁색한 변명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러한 폭력적인 방식은 한 나라의 경제성장의 지표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GNP에서 GDP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GNP는 한 나라가 소유한 생산요소를 국내외의 생산활동에 투여한 대로 받은 소득을 산출하는 ‘소득지표’다. 반면에 GDP는 국내에 있는 모든 생산요소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최종생산물의 합인 ‘생산활동지표’다. 거시경제에서는 GNP가 경제성장의 지표였으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GDP의 체계가 되었다. GNP가 국내경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세계화로 변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장을 개방하면 한 나라의 경제 문제는 시장의 자연적인 힘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시장자유주의가 필수다. 이른바 탈규제, 최소국가론이라는 구조조정을 통해서 모든 나라가 ‘하나 밖에 없는 최선의 모델(one-best way)'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의 장밋빛 미래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는 비슷한 정도로 성장하고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기대와 달리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하나 밖에 없는 모델이란 미국식 자본주의를 말한다. 이 모델은 신자유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는 획일적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칼 폴라니가『거대한 전환』이라고 부른 대변동을 거치면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생겨났다. 즉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는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1980년 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본격화되면서 세계는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 세계는 시장을 전폭적으로 개방하는 ‘우월한 자본주의’와 시장 개방을 억제하는 ‘열등한 자본주의’가 있을 뿐이라고 우려의 목소리가 팽배하고 있다.

장하준은『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하여 가장 명료하게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만큼 우월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노엄 촘스키가 이 책을 ‘현실로서의 경제학’이라고 추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충돌이 불공평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독일식 자본주의를 주장했던 리스트는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했다. 즉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미국식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위반한 결과였다.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으로 국가가 경제시스템을 장악하면서 오늘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무역을 일관되게 실천해온 최상의 국가라고 하면서 유인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악순환을 부각시키고 있는『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내용을 보면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을 알리는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토머스 L 프리드먼의『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다시 읽는데서 시작하고 있다. 토마스 L 프리드먼은『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새로운 글로벌 패션을 주장했다. 냉전 시대에는 인민복, 네루 의상, 러시아의 가죽 모자와 가죽 코트가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는 오직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 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황금 구속복은 곧 세계화 시대를 규정짓는 정치, 경제적 의복이었다.

저자는 황금 구속복을 입고자 하는 나라는 16가지 황금률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폐지하거나 인하할 것, 외국인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를 폐지할 것, 공기업과 수도, 전기, 가스 등 국유 사업이나 공익사업을 민영화할 것,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것 등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황금 구속복을 입어야 세계화가 덫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만약 방직기 제조사로 출발한 도요타가 프리드먼 말대로 황금 구속복을 입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렉서스를 수출하는 국민이 아니라 누가 뽕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국민이 되었을 것‘이라고 비유한 저자의 통찰력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쯤에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사실은 세계화의 상징이 된 렉서스와 반세계화의 상징이 된 올리브나무의 역학 관계다. 돌이켜보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불가분의 관계다. 렉서스인 동시에 올리브나무여야 한다.

다음으로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에는 등을 돌려야 하는가? 에 있다. 저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부정부패를 부당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을 통해 부정부패를 줄일 수 있다고 했지만 ‘시장의 힘이 지나치게 작아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부정부패의 원칙을 간과한 나머지 실패하고 마는 것을 역설적으로 경고했다. 그리고 시장과 민주주의에 있어 결코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는 타고난 짝이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1인 1표라고 한다면 시장은 1달러 1표의 원리였다. 이로 인해 ‘강한 긴장’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문화는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가? 를 살폈다. 보통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게으름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국민들이 게을러서 나라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게으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경제와 문화의 관계에 있어 경제를 발전시키기 전에 먼저 문화 혁명을 단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 경제 발전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며 문화의 재발명에 있어 그를 뒷받침하는 경제 구조와 제도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속셈을 파악하게 되었다. 세계화라는 승자독식 게임에서 그들은 줄기차게 ‘경기장을 평평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러나 저자는 ‘기울어진 경기장’이어야 한다고 독특한 주장을 펼쳤다. 경기장의 높은 쪽이 개발도상국이고 낮은 쪽이 선진국이어야 한다. 그래서 평평한 경기장에서는 불공정했던 게임이 오히려 기울어진 경기장에서는 공정해진다는 것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하나 있다. 조지프 스티클리츠가 “GDP가 보여주는 숫자 너머를 봐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같이 일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면 GDP는 증가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세계화를 단순한 성장 논리만으로 질주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그만큼 삶의 질을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HDI)’는 밑바닥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HDI는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역량’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행위자가 자신의 목적, 지향, 가치 등을 실제로 수행할 수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세계화라는 자본주의의 단일성이 가진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