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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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은『문학은 자유다』에서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공감과 새로운 관심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과 다르게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에 따르면 “정신적 약탈자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는 제목에서부터 끝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1Q가 IQ라는 단순한 오해도 있었지만 조지 오웰의『1984』와 유사하다는 단순한 의견이 더욱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조지 오웰이 말한 ‘빅 브라더’와 달리 하루키는 ‘리틀 피플’을 말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리틀 피플이 공기번데기를 만들 때 하늘의 달이 두 개가 돼.”라는 섬뜩하면서도 환상적인 메시지가 뒤흔들었습니다. 왜 하늘의 달이 두 개일까?라는 물음이 곧 Q(question park)이며 이 소설의 ‘1Q84'라는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무대는 1984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갈비뼈를 무수히 부러뜨려야 했던 아오마메와 덴고가 나옵니다. 20여 년 전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들은 서로 손을 한 번 잡았습니다. 그러나 쫀득한 감정이 미처 사라지기 전에 그들은 헤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그들이 오랜 사랑의 공백을 끝내고 1984년 만나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떨림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고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오마메의 말을 옮기자면 “우리는 좀 더 일찍이 용기를 내어 서로를 찾아야 했어요. 그랬다면 우리는 본래의 세계에서 하나가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사랑의 언저리를 맴돌던 그들이 서로를 끌어당겼던 것은 어느 날 하늘의 달이 두 개인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보는 달, 닐 암스트롱이 발견한 달은 노랗습니다. 반면에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달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초록색 빛을 내는 작고 일그러진 달입니다. 조금은 엉뚱하다고 느끼겠지만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루나틱(lunatic)인데 달에 의해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눈앞의 1984년은 가짜 세계였습니다. 대신에 1Q84가 진짜 세계였습니다.

그들이 1Q84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미래에 대해서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사지 트레이너인 아오마메는 성폭력을 일삼는 남자들을 살해하거나 보복하는 쿨한 살인자였습니다. 그리고 입시학원에서 수학강사였던 덴고는 소설을 쓰면서도 자신의 상상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뭔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완벽한 삶을 쫓아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가슴은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그래서 1Q84에서는 시간 또한 일그러져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착각만은 아니었습니다. 작가 말대로 어떤 시간은 지독히 무겁고 길며 어떤 시간은 가볍고 짧습니다. 만약 시간이 반듯하거나 혹은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균일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런 인생은 아마도 고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든지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1Q84에서 그들은 과거를 구원받고자 했습니다. 덴고 말대로 ‘과거를 바꿔 쓰는 것’이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하루키는 과거를 바꿔 쓰는 것으로 그들의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봤습니다. 살면서 어슴푸레한 느낌만 있었던 그들의 사랑이 비로소 손만 뻗치면 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루키는 우리의 희망 하나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사랑이 행복하리라는 그럴싸한 기대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하루키의 사랑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리틀 피플이 만든 공기 번데기에 있었습니다. 선과 악이 불분명한 정체불명의 리틀 피플이 ‘1Q84’라는 왕국을 세우기 위해 종교적 리더 후카다를 리시버(받아들이는 자)로 삼았습니다. 또한『공기 번데기』를 쓴 그의 딸 후카에리는 퍼시버(지각하는 자)이자 마더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교합은 우리들에게는 불쾌한 성폭행으로 보였지만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망설임도 후회도 없었습니다. 도덕이라는 잣대가 오히려 위선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1Q84에서 아오마메와 덴고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1984에서는 작고 초라한 그들이었지만 1Q84에서는 세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아오마메에게 후카다는 제거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운동권 출신의 공동체 지도자에서 종교적 리더가 된 후카다는 사회의 악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덴고는 후카에리의『공기 번데기』를 리라이팅하면서 시시각각 좁혀오는 죽음의 손아귀에서 후키에리의 액막이를 통해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안전할 수 없었습니다. 1Q84에서 불문율은 마더를 절대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마더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상실되고 맙니다.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후카다를 통해 리틀 피플의 실체를 알게 된 아오마메에게 마지막 선택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후카다를 죽이면 덴고가 살고 후카다를 죽이지 않으면 덴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후카다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오마메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자신도 끝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덴고를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만약 아오마메에게 사랑이 없다면 후카다 말대로 이 모든 것은 싸구려 연극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 사랑은 어떤가요? 일찍이 융은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곱씹어 보면 꽃이라고 하는 것은 새살이 돋아나려는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슴을 저미는『1Q84』를 읽으면서 낯설고 독특한 감정이 묻어났습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사랑을 다시금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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