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데카르트를 읽으면 행복한가요?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어. 표현하려고 하면 혼란스럽기만 하고. 어떤 땐 이런 생각이 들어. ‘이런 것 저런 것 고민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내가 거만하고 몹쓸 인간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나도 남들 가는 길을 가면서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 내가 제안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지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을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면…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서머싯 몸의『면도날』중에서







여기 세 종류의 면도날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인라인의 면도날(Heinleini Razor)입니다. 이 면도날은 로버트 하인라인의『스타쉽트루퍼스』에 나오는데 ‘어리석음(stupidity)으로 인한 일을 악의(malice)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기꾼에게 속아 친구 돈마저 잃어버렸을 때 그의 잘못은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혹 그 사람을 사기꾼과 한패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입니다. 이 면도날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복잡한 설명은 싹둑 잘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머싯 몸의 면도날(Somerse Maugham’s Razor)입니다. 이 면도날은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의 가슴에 선명한 자국을 남깁니다.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 나오는 래리는 삶이 단지 먹고살기 위해 살아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누구나 자기 확신이라는 극적이 순간과 부딪히게 마련입니다. 언제 찾아오겠다고 어떻게 해서 그렇다는 것도 없이 어느 순간 불쑥 삶의 강렬한 열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때 조종사였던 래리는 전쟁터에서 허망하게 전사한 전우를 보고 난 후 백지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백지상태에 놓이면서 그는 세상 모든 일을 알았던 것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세상에 대해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오른 절망감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쓰디쓴 진실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많은 사람의 기대감을 저버리고 그 무엇을 찾아 미지의 삶으로 외로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그를 어느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바라보며 제발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사람은 약혼녀 이사벨이었습니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래리와 이사벨은 아무 걱정없이 결혼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사벨에게 모피코트를 사주기 위해 래리는 남들처럼 적당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평범한 삶이었지만 동시에 안전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평범하게 살아도 행복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래리는 이 모든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래리 말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었고 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보다는 공부하고자 하는 욕구가 뼛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일찍이 E.F. 슈마허는『자발적 가난』에서 삶에 있어 직선의 논리와 곡선의 논리를 말합니다. 직선의 논리가 많음이 곧 많음이라고 한다면 곡선의 논리는 적음이 곧 많음이라고 했습니다. 전자가 생존의 논리를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이를 부(富)가 가져오는 문제에 있어 전자가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자라고 한다면 후자는 자발적 가난이었습니다.

인생의 앞날에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작가 말대로 사람이란 오로지 그 삶 자체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돈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돈에는 개인적인 자존심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은 그래서 1분 1초를 낭비할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는 시간을 절약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래리는 돈보다는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사랑을 열망합니다. 앞서 말했듯 래리에게 돈은 자발적 가난이라는 최소한의 버팀목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래리가 평범한 삶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을 두루두루 살피면서도 데카르트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래리는 데카르트를 읽으면서 ‘평온함, 품격, 명석함’을 배웠습니다.

어느 누구는 래리를 나약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정말이지 현실감각이라고 찾기 힘들다고 쓴소리를 할 것입니다. 남들처럼 공부를 하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데도 래리는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 어두운 싸움을 합니다. 비록 그 싸움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끝가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데카르트를 읽으며 맛보는 순수한 기쁨은 실패를 잊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데카르트를 읽지 않는 것일까요? 데카르트를 읽으면 우리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에게는 지혜가 자유의 수단이었습니다. 반대로 우리에게는 데카르트가 골치 아픈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성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돈인데 데카르트는 돈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데카르트를 사랑하는 래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는 용기 있는 행동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지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래리 혼자만의 작은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면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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