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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오 자히르!
당신은 우리를 어디론가 떠나게 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그렇습니다. 일찍이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사랑에 눈 먼 사람을 말했습니다. 사랑하기 전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뭇가지가 사랑한 후에 놀랍게도 다이아몬드 가지로 반짝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다이아몬드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을 스치는 남녀 간의 흔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결혼 문제가 놓여 있지만 빛이 납니다. 반면에 오자히르! 당신을 사랑하면 웬일인지 우리는 고독해졌습니다. 당신은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의 외로움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은 어두웠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겉을 화려하게 하는 타인의 사랑이라면 당신과의 사랑은 나를 정면으로 만나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노예인가요? 자유인가요?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에서 처음 만난 당신을 통해 사랑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종군 여기자 에스테르는 어느 날 당신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에스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그랬습니다.
에스테르는 떠나기 전 그동안 같이 살아온 남편에게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즉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당신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질문에도 똑같이“예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대답을 곱씹어 보면 사랑의 앞모습은 전자이며 사랑의 뒷모습은 후자였습니다. 전자가 사랑의 노예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랑의 자유였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의 자유는 다름 아닌 ‘자아 찾기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매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절망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녀는 결코 이런 삶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절망은 죽음보다 훨씬 무섭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습니다. 절망의 굴레는 그녀 말대로 어제와 같은 삶입니다.
오늘이 어제의 허기를 채우며 가까스로 산다고 한다면 ‘어떠한 모험도 할 수 없는 철저한 외로움’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녀의 슬픔을 어루만지면서 어떻게 불쑥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버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피 묻은 천조각인가요?
그녀는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을 들여다봤습니다. 삶이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면 총알이 빗발치는 진짜 전쟁에서 그녀가 찾고자 했던 것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어두움이 속살을 드러냈지만 그녀는 전쟁터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전쟁 밖에서 이루어지는 로맨틱한 사랑은 사랑의 한계 중에서도 ‘신의 사랑’에 불과했습니다. 신의 사랑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의 모든 면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군인이 의사를 부르지 않고 자신의 피 묻은 천 조각을 주면서 ‘아들과 아내에게 내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라고 가슴 뭉클한 사연을 통해 그녀는 우리는 혼자가 아닌 같이 살 수 밖에 존재라는 것이 뼛속 깊이 사무쳤습니다. 즉 ‘우리가 이웃들을 사랑한다면 그건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들려주었습니다.
사랑의 거리는 143,5㎝?
오자히르! 당신은 사랑을 잃지 않고 살아갈 때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파편화된 삶의 고통에 맞서며 우리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게 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치여 혹은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 보려는 사랑 때문에 결국에는 나 자신의 가치가 제로인 상태에서 당신의 사랑은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기찻길 선로 같은 사랑이 얼마나 활력이 없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기찻길 선로는 143,5㎝로 반듯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 길이를 줄이거나 늘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기찻길 선로 같은 규칙적인 사랑은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의 오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당신과 나 사이의 사랑은 아마도 그 거리를 찾아내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