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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호모 사피엔스(Homo Sspiens)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로 생각의 잔가지를 잘라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데카르트를 볼 수 있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럴 때 생각은 만만하지 않다. 생각은 양식이며 에너지다. 아주 일상적이어서 우리가 굳이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생각의 무감각과 생각의 감각은 다르다. 전자가 생각의 권태라고 한다면 후자는 생각의 쾌락이다. 전자가 생각하는데 불편하지 않는 반면에 후자는 오히려 불편하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의 별종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별종이란 바로 이현우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나오는 호모 사피엔자(Homo Sapienza)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인플루엔자의 합성어인 호모 사피엔자는 제목에 나와 있듯 인문학자에 가깝다. 우선적으로 저자는 수잔 손택이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를 인용하고 있다. 인문학자는 폭발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문학자는 로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쟈는『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이며 살인자다. 살인자에 대한 변명을 카프카의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말을 빌려보면 좀 더 의미가 있다. 견고한 학문을 깨트리는 것 못지않게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로쟈만의 인문학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곁다리 인문학자’의 세상 보는 법이 매우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이 책을 몇 장만 읽어보면 금세 곁다리의 놀라운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책읽기와 종횡무진 경계를 넘나드는 명쾌한 비평은 확실히 뒤샹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뒤샹의「자전거바퀴」는 자전거바퀴와 의자를 접붙임한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리 이동’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곳(도구)에서 저곳(이미지)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것이다. 혹은 저자 말대로 ‘아직도 내가 알아야만 하는 것’보다는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더 관심으로 저공비행하는 것이다.
가령, 로쟈는 영화「나쁜 피」에 나오는 “순간에 완성되는 사랑이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두려운 사랑의 흔적을 찾아내고 있다. 순간은 시간적이면서 동시에 반시간적이다. 이로 인해 순간에 완성되는 사랑은 더 이상 ‘감성적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감성적 사랑이 생존의 욕구에 의해 제어되는 사랑이라면 초감성적 사랑은 생존의 욕구에 제어되지 않는다. 그래서 순간에 완성되는 사랑은 죽음을 무릅쓰는 사랑인 탓에 숭고하고 두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로쟈의 유쾌한 철학은 “진리가 여성이라면, 어쩔텐가?”라고 도발적인 물음을 던졌던 니체의 사유와 가깝다. 남성의 진리는 어린아이며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것이며 도둑질 한 것이다. 반면에 여성의 진리는 위버멘쉬(초인)이며 바다며 자궁이다. 전자가 “이게 다가 아니야.”라는 이데아 철학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게 다 예요.”라는 아줌마 철학이라고 한다. 즉 이데아 철학이 현실 너머라고 한다면 아줌마 철학은 충만한 현실이다.
로쟈에게 니체가 아줌마 철학자였다면 괴물 같은 지젝은 대중적인 철학자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지젝주의자’라고 주저하지 않는다. “레닌을 반복해야 한다.”라는 지젝의 주장보다는 ‘이데올로기의 환상’이 눈여겨 볼만 했다.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이 ‘앎’이 아니라 ‘행함’에 있다는 것이다. 지젝은 변기의 물을 내리는 하찮은 일에서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는 지 설명한다. 그리고는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화장실에 들르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이데올로기에 몰입하게 된다고 한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그야말로 잡학(雜學)하고 다식(多識)하다. 누군가 뭘 물어봐도 막힘없이 대답하고 있다. 그가 말한 대로 ‘책 읽기가 즐거운 도망이고 즐거운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모두가 아는 것에서 모두가 모르는 것’으로 뒤집어 본다. 그래서 이 책은 즐겁게 읽혀지는 좋은 번역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원저나 다른 언어의 번역본을 참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게 한다.
그런가하면 시오랑이 말한 ‘눈물의 일반이론’을 웅숭깊게 감싸고 있다. 어려움이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철학의 무능력을 부정하면서 그의 글쓰기는 쉽고 명쾌하며 무엇보다도 고전(古典)이다. 결과적으로 철학이 메마른 시대에 이 책은 대중지성을 적시는 단비와 같다. 고리타분하고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한 고체(固體)라는 학문의 빈틈을 파고든다. 이것은 마치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대로 유동하는 액체(液體), 유동하는 지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