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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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녀하면 8등신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네 몸매는 7등신이 아름답다고 한다. 신체를 둘러싼 서양과 우리의 미의 기준은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에 있어 황금(黃金)비례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은 폭과 높이가 1.618:1이다. 반면에 우리 건축물에 있어 아름다운 비례를 금강(金剛)비례라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용마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1.414:1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대조에는 아름다움이 모두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활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다움의 잣대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금강비례를 촌(村)스럽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화의 편식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안타까움이 절로 나온다. 서구화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이른바 맥맨션(McMansion: 획일적인 주택이라는 뜻에서 맥도날드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같은 아파트 틈에서 한옥은 숨 가쁘다. 살기에 불편하다고 해서 버림받은 지 오래다.

하지만 주거에 있어 편리함만이 능사가 아니다. 맛과 멋이 있어야 한다. 이재열이 쓴『담장 속의 과학』에는 우리의 전통 의식주(衣食住)를 구수하게 담아내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고향 살림을 차근차근 음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과거의 여행이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전통이라고 하면 왠지 비과학적이라고 몰아세우는 덕지덕지 묻어있는 마음의 때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말끔히 씻어 내렸다. 즉 과학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생활의 지혜라고 해야 정갈하고 단정하다.

가령, 주(住)에 있어 마을을 이루며 집들이 들어앉았다. 이럴 때 장풍득수(藏風得水)가 되는 땅이어야 했다.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주는 곳이다. 또한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갖추어야 했다. 그리고 집터를 잡을 때도 좌청룡에 해당하는 흐르는 물길, 우백호에 해당하는 큰 길, 남주작에 해당하는 연못 그리고 북현무에 해당하는 구릉이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집은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집이 살아 숨쉬려면 틈새 사이사이로 바람이 통해야 가능했다. 이것이 우리 집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어릴 때 기억을 되돌려보아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름 한낮에 안팎 방문을 열고 마루에 앉아 있으면 시원했다. 말 그대로 냉방과 통풍을 하는 교묘하고 지혜로운 구조였다. 이러한 열린 마음에는 자연주의 즉 순환의 질서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셈이었다.

반면에 아파트는 닫힌 공간이다. 물론 아파트는 물리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아주 과학적이다. 일거수일투족이 편리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정신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앞서 말했듯 삶의 향기가 없다. 기계의 지혜에 익숙하다 보니 어느새 생태맹이 되고 만다.

집을 장 담그기에 비유한다면 충분히 발효해야 한다. 사람만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가지 미생물과 공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서로간의 아무런 도움이 없다면 집은 부패하고 만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우리의 전통 의식주의 다양한 사례들은 그 자체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문명사회의 질병이 날로 팽창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일까? 그 어느 때보다 온고지신이 절실하다. 저자 말대로 서양의 담장 밖의 과학과 우리의 담장 속의 과학이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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