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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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신 디케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디케의 눈』을 읽은 덕분이었다. 디케는 법의 여신이다. 이 여신은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여신의 두 눈이 두건으로 가려져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눈을 가려야하는 운명이겠지 지레 짐작하는 게 우리들의 변명이다. 우리들은 법의 문외한이며 생산자도 아니다.

그러나 금태섭 변호사가 바라보는 디케는 어떨까? 법을 공부하면서 성장했고 법을 통해서 법을 사랑하게 된 그에게도 디케라는 여신의 진실을 찾는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숨겨진 눈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사명감에 불타는 날카로운 광채를 띄고 있을까? 약자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연민이 가득할까? 아니면 찾기 어려운 진실 앞에서 끝없이 같은 질문을 되묻고 다시 생각해보는 고뇌에 차 있을까?

법의 심판이 오판(誤判)일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피할 수 없다. 그는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오판이 발생한다고 생각했고 대부분 위증이나 증거조작 등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순진했다고 고백한다.

가령, 목격자나 피해자 등의 진술을 믿고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어 옥살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이 누명을 벗게 되면서 오판이 우연이 아닌 필연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즉 진실은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 당연한 듯 보이는 결론에 대해서도 다시 의심해보았다면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징벌적 배상을 둘러싼 법의 정의(正義)와 정의(定義)에 대한 회의적인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징벌적 배상이란 악의적이거나 극도로 심한 과실로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재산에 손해를 입혔을 때 실제로 입은 손해의 크기와 상관없이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불법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항상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책에 나오는 맥도날드 커피 사건을 보면 뜨거운 커피 때문에 화상을 입은 피해자가 나온다. 따라서 앞으로는 맥도날드 사가 거액의 손해 배상을 당하지 않으려면 섭씨 60도 이하의 커피를 판매해야 한다. 그러나 커피가 최상의 맛을 내는 온도는 섭씨 85에서 95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어느 누가 맛없는 커피를 마시려고 할까?

이 책을 통해 검사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저자는 법의 속살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가 증거물로 제시하고자 하는 법은 깨지기 쉬운 ‘유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조심하게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법률만능주의의 영향으로 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유리가 깨지고 마는 우려를 거듭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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