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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한평생 - 민속으로 살핀 탄생에서 죽음까지
정종수 지음 / 학고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장례식장에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발걸음이 무겁다. 망자(亡子)에 대한 예의 때문일까? 아니면 두려움 때문일까? 어쩌면 예의 때문에 두려움이 떠나질 않았다. 예의가 너무나 현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이런 죽음이 일상화되었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망자를 떠나보냈다. 어릴 때 마을에서 상여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자란 탓에 장례식장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사람의 한평생』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앞서 말한 충돌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굳이 이유를 따져보면 장례식장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죽음을 다루는 의례를 상례(喪禮)라고 한다. 그리고 장례(葬禮)는 상례의 한 절차이다. 그런데 장례의 의미를 알고 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장례란 시체의 처리 방법, 매장과 관련한 예절이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장례식장이라는 이름의 반전(反轉)은 상례의 허구에 불과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점이 이것뿐만 아니었다. 혼례(婚禮)에 있어서는 남녀차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을 두고 결혼(結婚)이라고 한다. 하지만 혼인(婚姻)일고 해야 옳다. 혼이란 여자의 집이란 뜻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장가든다는 것이다. 인은 남자의 집으로 여자가 시집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이라고 하면 남자가 여자에게 장가가는 것 밖에 안 된다. 결국 결혼은 반쪽 잔치의 행복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 불행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를 지레짐작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에는 전통이 혼란한 현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사람의 한 평생에 대한 다양한 풍속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풍속을 설명하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술성이 돋보였다. 그만큼 예를 다하는 데 있어 소홀하지 않았다. 요즘같이 간편한 세상에서 책 속의 의례들은 다소 복잡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관혼상제는 우리의 역사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잘못된 예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실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관혼상제의 의미를 밝히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에 대한 발자취인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반추하게 한다. 그런데도 관혼상제라고 하면 그저 재미없고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 덕분에 관혼상제의 이모저모를 흥미롭게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의례의 절차나 형식을 정리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저자가 ‘저승사자’로 불릴 정도로 발로 뛰며 체험한 결과물이다. 특히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궁금하게 한다. 그러면서 그 해답을 실생활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일찍이 공자(孔子)는『논어』(論語)「안연」(顔淵) 편에서 ‘非禮勿視, 非禮勿言, 非禮勿動’을 말했다. 풀이하자면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공자가 말한 예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경고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예가 아닌 것을 보고 예가 아닌 것을 말하고 예가 아닌 것을 움직이고 있다.
공자 말한 예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면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문명화 과정』에서 말한 ‘문명화 과정’일 수도 있다. 즉 내가 어릴 때 상여를 보고 자란 반면에 내 아들은 장례식장을 보고 자란다. 복잡한 현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내 아들이 상여를 보고 자라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래야 우리 선조들이 상복을 벗더라도 적어도 3년 동안은 마음으로나마 상중(喪中)에 있는 것처럼 행동을 삼가는 ‘심상삼년(心喪三年)을 만든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한평생』은 바쁜 현대인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예의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의 형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의 형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모든 문화는 예의 형식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일까? 이 책에 담긴 관혼상제의 뜻을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더구나 잘못 알고 있거나 이해하고 있었던 옛 사람들의 내면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