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공감하는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공감하는데 부족하다는 말은 서로 반대인데요. 대부분의 공감을 정서적 공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공감은 남의 감정에 대하여 자신의 감정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감 능력은 인지적 공감에 좌우됩니다.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람의 이해를 통한 공감입니다.
이금희의 『공감에 관하여』는 말 그대로 ‘소통 에세이’입니다.이 책에서 저자는 “천 명의 사람에게는 천 개의 공감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인지적 공감을 이야기하는 데 있습니다. 정서적 공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감각입니다. 결과적으로 천 명의 사람에게 한 개의 공감만 필요합니다. 반면에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개별적인 감각입니다. 우리가 소통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인지적 공감입니다.
이 책을 열면 정말로 저자 특유의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엄마는 양자역학’이라는 부분을 읽다 보면 엄마와 양자역학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이 과학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소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엄마가 두서없이 말하는 모습이 마치 양자역학과 같다는 이야기에 놀랐습니다.
한편으로 제 자신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가끔씩 아내와 의견이 충돌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가 있는 말, 없는 말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짜증을 참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아내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더라면, 다시 말해서 아내의 말을 양자역학으로 소통했으면 서로 상처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자기 연민’에 대해서도 용기 있는 말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연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문제는 자기 연민이라고 했을 때입니다. 연민의 대상이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데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마련입니다. “왜 나만 힘들까?” 하소연하며 자기연민이라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게 됩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상처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일찍이 스위스의 시인이며 철학자인 앙리프레데릭 아미엘은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는 자기 연민을 버리고, 삶을 직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하루아침에 방송을 그만두었을 때 힘들었지만 자기 연민이 별로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에게 삶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이었습니다.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고 세상만사에 언제나 웃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버거운 삶을 마주하면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슬픔의 정서와 무게를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더 중요한 일은 슬픔이 아니라 ‘이해’를 향한 노력입니다. 진정한 공감은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열린 마음입니다. “왜 저래” 말고 “왜 그럴까”라고 말해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