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24절기 중에 입춘(立春)이 첫 번째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시작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입춘이 오면 집 앞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한자를 붙여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봄의 기운이 뭔지 몰랐으나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봄이 왔으니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소원을 바랐습니다. 봄의 힘으로 비로소 인생이라는 꽃이 필 것 같으니까요.


책방아지트의 문을 열고 난 후 두 번의 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입춘대길이라는 글자를 가게 건물 벽면에 붙이지 않았습니다. 일이 바쁘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입춘대길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좋아하지만 생각해보니 오래된 믿음이라는 게 발목을 잡았습니다. 오래되었으니 그냥 지나쳐도 괜찮겠지, 라며 무감각해진 것이지요.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아무 탈이 없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입버릇처럼 손쉽게 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아무 때나 할 수 있으니 신통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수리수리 마수리라고 주문을 넣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놀라운 마법이 생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비록 내가 무엇을 원한다고 해서 100% 되지는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갈망이 있어 답답한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어디선가 크게 부서지는 느낌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주문은 틀렸습니다. 원래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입니다. 영화에서나 마술 공연을 보면 마술사들이 수리수리 마수리하며 주문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덩달아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즐거운 리듬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속아 넘어가고야 맙니다. 만약 마술사의 주문대로 우리가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면 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마술사가 만든 주문이 아니라 불교경전천수경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천수경은 불자들이 독송(讀誦)으로 쓰는데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으로 시작합니다. 풀이하자면,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참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정구업진언에 나오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마법사가 주문하는 대로 수리수리 마수리가 아니라 스님의 염불하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을 세 번 외워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데 아마도 마법사는 한 번 하는 것마저 많다고 생각했는지 수리수리 마수리로 줄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입춘대길, 수리수리 마수리 같은 말들을 쓰고 있을까요? 물론 세상에는 좋은 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핏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망토 같기도 합니다. 망토를 걷어내면 그 속에는 우리가 바라는 단단한 희망이 자리를 잡고 놓여 있습니다. 희망은 간절한 너머까지 가보는 일,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하는 일, 미래는 우리를 자유롭게 때로는 행복하게 하는 기적 같은 일. 그러고 보니 기적 같은 말입니다. 기적이 생겨날 때까지 기적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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