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후반생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인생 화두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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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매년 6월 16일 블룸스데이(Blooms day)라는 축제가 열립니다. 블롬은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에 나오는 주인공입니다. 사람들이 제임스 조이스를 기념하고자 소설 속 주인공처럼 더블린 시내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행적을 따라 하거나『율리시스』를 낭독합니다.


그런데『율리시스』가 어떤 책인가요? 영문학사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난해한 소설입니다. 오죽했으면 ‘싫은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는 악명 높은 소리까지 들었을까요?『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아일랜드 더블린을 무대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단 하루, 좀 더 시간을 확인해보면 6월 16일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 반까지 되는 19시간여 동안 일어난 소설입니다. 한편, 6월 16일은 제임스 조이스가 평생의 반려자인 노라를 만난 첫날을 기억하는 영원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제임스 조이스를 보면서 미스터리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단 하루,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이 곧『율리시스』입니다. 단 하루 만에 방대한 분량의 『율리시스』를 쓰는 일도 놀라운데 위대한 작품이라는 영광은 더욱 놀라운 사실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떠오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정진홍의『남자의 후반생』은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율리시스』는 하루 만에 쓴 이야기이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반면에『남자의 후반생』은 작가가 40대 시절에 걸쳐 쓴 이야기이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인생 화두’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 화두라는 주제는 감당하기가 어렵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시공을 초월한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은 쉽고 흥미롭습니다. 그럼에도 죽비소리가 가득 넘쳐납니다. 놀랍게도 죽비소리를 들을 때마다 ‘후반생(後半生)’을 생생하게 깨달았습니다.


무릇 삶을 전반생(前半生)과 후반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생은 정해진 운명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후반생은 “더는 이따위로 살지 않겠다.”라고 각성하며 흔들립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인생의 후반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인생이 축구 경기라고 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반전과 후반전이 명확합니다.


이런 까닭에 인생의 딜레마는 후반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삶을 선택하는 결연한 의지라고 하더라도 선택에 따른 수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 후반생을 후회하지 않으며 끝까지 갈 수 있을까요? 어느 것 하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할 후반생을 패배하지 않고 갈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마음의 굳은살’을 떼어내야 합니다. 보통 굳은살이라고 하면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굳은살이 생기는 과정을 보면 반복적인 고통을 참아 내거나 노력을 한 결과물이라 그렇습니다. 이로 인해 굳은살은 마음의 창이 아니라 든든한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굳은살의 선한 영향력은 안타깝게도 체념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굳은살이 박일수록 우리의 마음은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무감각해집니다. 무료한 일상을 반복하고 쉽게 지치고 맙니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어왔던 삶의 가치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저자는 마음의 굳은살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경계하며 인생의 후반생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련(鍛鍊)하라고 합니다. 단련이라는 한자를 풀이해보면 그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단(鍛)은 일천 번의 일을, 연(鍊)은 일만 번의 일을 말합니다. 마음을 단련해야 비로소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것처럼 녹슨 ‘쇠붙이’가 아니라 날선 ‘면도날’로 살아가게 됩니다.


바야흐로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너무나 절실한 세상입니다. 정진홍의『인생의 후반생』을 읽어보면 송곳 같은 질문이 많습니다. 하나같이 절문(切問)이기 때문입니다. 절문 즉, 절실한 질문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후반생의 절문은 정신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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