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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고통은 작은 죽음이다. 죽음은 큰 고통이다.
-하이데거
황시운의『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페이지 한 장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삶의 최전선이라는 게 있다. 그것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또 하나의 시작이 없다면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허무하게 마침표로 끝났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불행을 몸소 마주하게 된다. 마주하는 순간이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슬픔이 택배’로 오거나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날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니 더욱 믿을 수 없었다. 하반신이 마비되고 그것으로도 가혹한 운명은 부족했는지 신경병증성 통증에 시달린다고 하면 거짓말이 마치 진실과 뒤엉키기도 한다. 그러나 통증 때문에 사납게 비명을 지르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악취 나는 몸뚱아리 신세라는 작가의 고백을 듣고 나면 차라리 이 모든 게 거짓말이었으면 했다. 당신을 몰랐기에 더욱 그랬다.
어디 그뿐인가? 하반신이 마비된 체 ‘반쪽짜리’ 인생이 감당해야 할 수치심과 분노는 매번 곪아터졌다. 장애 때문에 남들과 같은 일상생활은 어렵다.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야 할 턱과 틈을 생각하면 당신을 모르는 나 또한 관자놀이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이 채 사라지기 전에 차별과 혐오라는 타인의 무례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아닌 ‘시한폭탄’같은 존재라는 죄책감을 끌어안고 버텨야만 했다. 슬픔이 빼곡해질수록 눈동자는 침묵할 수 없었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무게만큼이나 고통이 사라진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당신은 세상에는 울어도 해결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프지 않길 마냥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애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적처럼 물러설 리가 없으며 제 살을 긁어내는 통증이 한바탕 눈물로 사라질 리가 없다. 장애는 삶의 불편한 조건이며 이러한 불편함을 선택하기까지 그만큼의 눈물겨운 시간을 지나왔을 테니까. 당신은 이것 밖에는 아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신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우리의 심장과 맥박을 뛰게 하는 걸 보면 참 괜찮은 방법이었다.
돌이켜보면 장애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한다는 좌절은 절망이 흘러가는 아픈 종착지다. 통증이 신체적인 고통이라고 한다면 좌절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고통 때문에 삶의 의지가 여지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며 쓸쓸하다. 작가에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버티며 지내왔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가는 통증과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맑은 정신’으로 다시 살고 싶었다. 맑은 정신은 견딜 수 있는 경계이며 살고 싶은 의지였다.
그러니 작가의 생존에 가까운 글을 읽고 다시 봄을 맞이했으면 한다. 아프고 다친 몸은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져도 좋을 마땅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불행 때문에 자주 뒷걸음치는 이유에서다. 불편한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면서 죽을힘으로 버텨야낼 때 비로소 슬픔이 완성되는 것이다. 결코 슬픔의 미화(美化)가 아니다. 이러한 다짐은 우리의 삶을 더욱 삶답게 하는, 그리하여 우리는 수많은 장애를 결국 극복하며 사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어이 믿고 싶어졌다.
당신을 몰랐던 우리는 이제 당신을 알게 되었다. 너무 바빠서 혹은 너무 무료해서 고쳐지지 않고 뾰족했던 마음이 조금씩 무너졌다. 눈을 감으니 낙엽처럼 메마른 가슴에 온기가 가득해졌다. 그리하여 오로지 이 세상을 끝내 사랑하고야 말겠다는 맑은 정신을 끝까지 움직이고 싶었다. 최소한으로 아주 가볍고도 촘촘하게 움직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