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 엔지니어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29
새뮤얼 C. 플러먼 지음, 문은실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찍이 C.P.스노우는『두 문화』에서 ‘과학자는 셰익스피어를 모르고’ 인문학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견주어 새뮤얼 C. 플러먼은『교양있는 엔지니어』에서 엔지니어는 ‘죄와 벌을 모르고’ 인문학자들은 ‘열역학 제1법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공학과 인문의 만남을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왜 두 학문이 서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며 설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 교양있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다. 이것은 마치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학이 만든 세계이다. 즉 엔지니어들의 섬세하고 역동적인 작품이다. 만약 공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미래는 회색빛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공학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에 대한 중요성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공학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엔지니어대한 냉소적인 편견은 역사적으로 오래되었다. 플라톤이 말하고 있듯 ‘기계적 예술’이라고 하면서 이런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나쁜 친구이자 비애국자로 간주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유토피아로 가는 마법의 양탄자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공학의 변화는 그만큼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류의 무한한 도전을 만들어냈다. 가령, 지구에 사는 우리가 우주를 여행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밖에도 상상만으로 만족했던 여러 가지 경이로운 일들은 분명 공학의 힘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주선 챌린저 호 폭발사고에서 보듯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공학이 무너져 내릴 때 마다 공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단지 기술적인 결함을 문제 삼는다면 진실을 왜곡하고 만다. 그 보다는 엔지니어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엔지니어가 엘리트내지 재너럴 엔지니어라고 한다면 불의의 사고는 피할 수 없다. 반면에 교양있는 엔지니어이라고 한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양심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학의 미래를 볼 수 있어 유익했다. 공학이 점점 더 포괄적이고 복잡해지며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책 읽는 엔지니어 혹은 악기를 연주하는 엔지니어를 바라는 것이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이라는 깊이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엔지니어가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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