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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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랑' '', 이 세 단어의 유사성을 토대로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

이기주, 언어의 온도

 

온도(溫度)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물체의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를 말합니다. 기온에 따라 우리 몸의 온도는 본능적으로 싹둑싹둑 오르고 내립니다. 그런데 살아오는 동안 마음에 담겨지는 온도는 어떤가요? 체감온도라고 해서 마음속에서 흩어지거나 부서집니다. 가슴 한 편에서 희노애락의 투명한 감정들이 생겨납니다. 그런가하면 이름 모를 감정도 있습니다. 기쁜 일들을 당연히 기뻐야 하는데 마냥 그렇지 않습니다. 늘 슬픔이 하나 둘 따라다니기 마련이니까요. 때로는 슬픔의 밑바닥에 가라앉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 이상으로 그리움으로 뭉클해집니다.

 

한지혜의 산문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으면서 괜찮다라는 온도를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온도계로는 체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괜찮다, 라는 혼잣말을 하려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돌아야 합니다. 살아온 과거를 애틋하게 기억하면서 내뱉는 그 말에 담긴 온도는 정말이지 괜찮다, 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맙고 미안한 지난날을 위로하는 것은 삶의 지문(指紋)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미생(未生)과 완생(完生)의 팽팽한 슬픔을 견디며 다시 살아보겠다는 삶의 가장 긍정적인 순간에 가장 긍정적인 말, 괜찮다는 말은 과거도 현재도 아니며 미래처럼 들렸습니다.

 

작가의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알게 됩니다. 괜찮다는 말은 삶이 간직할 만한 소중한 감정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삶을 지탱하는 부드러운 리듬이 되기도 합니다. 가령, 삶이 도통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 작가로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출발을 하기도 전에 한 아이의 엄마가 짊어져야 할 가사노동이라는 현실이 역주행하면서 자신에게 무섭게 달려왔습니다. “아이는 어쩌고?”라는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쉽게 원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상은 작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외칠 수밖에 없다는 울분이 너무나 부조리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고민하는 순간을 생략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작가로서의 의무와 권리라는 가속 페달을 밟습니다. 고민하는 순간, 작가의 감정이 무너지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달리 앞으로 달린다고 해서 삶의 어떤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비록 답을 못 찾았다거나 모를 수 있더라도 더 이상 원망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일단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해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괜찮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시포스의 불행이 아니라 시시포스의 행복이라는 에너지로 충만해졌습니다.

 

작가의 골목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비가 내리고 단풍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붑니다. 모르는 사람이 내 앞에서 말을 걸면 낯선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은 친숙한 사람이 말을 건네는 듯해서 오히려 온기(溫氣)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를 아낌없이 받아서일까요? 마음껏 울고, 웃고 싶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의 씨줄과 살아갈 날들의 날줄이 아픈 마음에 수를 놓습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괜찮은 마음이 부드럽게 꽃을 피우며 삶을 견디게 합니다.

 

오늘을 사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나의 온도는 몇 도인가? 라는 물음과 같은 골목에 서 만나게 됩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에 따라다닙니다. 적어도 차가운 사람은 아니길 바라는 것보다 절실한 것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누군가에게 온기를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온기가 곧 사랑이며 삶이니까요. 작가의 소박하고 담백한 생활언어에서 인간의 문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문법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다보면 운명이라는 커다란 그림이 완성됩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인생의 토정비결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참 괜찮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운명은 사주에도 타로에도 없습니다. ‘발열(發熱)하는 인간참 괜찮은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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