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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은 절집 -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심인보 글 사진 / 지안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행복한 동행이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느껴졌다. 때로는 산사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우울함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시공을 초월한 곱게 늙은 절집은 생(生)과 사(死)의 모진 인연을 털어놓게 해서 좋다.
이 책에 나오는 25가지 절은 그냥 절이 아닌 산사(山寺)였다. 말 그대로 산에 있다. 더구나 산에서 곱게 늙은 절이라고 하니 그 속내가 궁금했다. 우리가 도시에서 바쁘게 살면서 늙어가는 반면에 산사는 자연에 몸을 맡긴 체 늙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 산사는 어떻게 늙어가는 것일까? 바로 명상하기 좋게 늙어간다. 가령, 먹고 사는 속세 때문에 걱정된다면 팔공산 은해사 운부암에 가볼 일이다. 그곳 보화루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말(곡식의 양을 재는 계량 도구)을 엎어 놓은 것이다. 즉 말을 의자로 쓴다는 것인데 순간 마음이 탁 트였다.
그리고 닫힌 마음을 열고 싶을 때는 상왕산 개심사에 가볼 일이다. 개심사 가는 길에는 돌멩이 두 개가 놓여 있다. 그저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돌멩이에 불과 할 수 있으나 이것이 개심사의 일주문이라고 하면 놀랄 것이다. 저자 말대로 일으켜 세우면 일주문이고 누워 있으면 돌이다. 세심(洗心), 혹은 개심(開心)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밖에도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명상하고자 한다면 선운산 선운사에 가볼 일이다. 그곳의 도솔암으로 가는 오솔길이 최고의 명상길이라고 한다. 또한 부처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 천불 천탑이 있는 영귀산 운주사에 가볼 일이다. 또한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싶으면 사자산 쌍봉사에 가는 것이 제격이다.
이처럼 작가는 아름다운 사찰 25곳을 찾았다. 사찰이라고 해서 종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그 보다는 산사에 깃든 늙음의 미학이 공감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산사는 늙음으로써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생기(生氣)를 주고 있다.
일찍이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짤막한 화두를 남겼지만 그 의미는 무척이나 각별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인가? 오늘날 마음이 사막화(砂漠化)될 때 산사에 가볼 일이다. 언뜻 보면 비슷비슷하지만 모두가 제각각이다. 우리가 알아야 모든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어느 누구는 산사 가는 길이 고행(苦行)이라고 하면서 투덜투덜 하겠지만 모름지기 산사 가는 길은 가난해야 좋다. 문명의 이로움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어야 우리의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 질 것이다. 이것이 산사의 독특한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