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각성의 현장 - 한국인다움의 증거를 찾아가다
조동일 지음 / 학고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이렇게 까지 책을 읽으면서 쓴 소리를 들어보기는 아주 오랜만이다. 독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제목도 한 몫 한다. 바로『의식각성의 현장』이라고 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현장을 누비며 삶의 흔적들을 속속들이 찾아 나선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속이 후련해진다. 그동안 손이 닿지 않아 가려운 곳을 구수한 입담으로 치료한다.


이 책은 한국인다움을 찾아나서는 우리 땅 인문학 답사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여행서이며 동시에 당대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교양서이다. 이로 인해 의식각성에 있어 가속도가 붙는다. 현장을 많이 다닐수록 한국인에 깨달음에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식각성과 여행과는 어떤 묘한 관계일까? 일찍이 니체는『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여행자의 5등급을 이야기했다. 1등급은 여행하면서 오히려 관찰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행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눈먼 자들이다. 2등급은 실제로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3등급은 관찰한 결과에서 그 무엇을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4등급은 체험한 것을 자신 속에 가지고 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다. 5등급은 자신이 관찰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곧 그것을 여러 가지 행위와 작업 속에서 기필코 다시 되살려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여행자의 등급이 높을수록 의식각성도 지적이며 강렬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의 부조화를 토해낸다. 가령 성덕대왕신종을 보자. 이 종의 아름다움이 아닌 새겨진 명문은 대립과 갈등을 넘어 번영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종에 대한 깃든 전설은 사뭇 다르다. 민초들의 삶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이 종을 흔히 에밀레 종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종을 만들면서 희생당한 딸이 어머니를 부른다고 해서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임진왜란 때 동래부가 함락되었을 때 선조 실록은 부사 송상현이 죽었다. 첩도 죽었다.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일본군이 전즉전(戰則戰) 부전즉가도(不戰則假道)-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 고 하자 송상현은 전사이(戰死易) 가도난(假道難)- 전사하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지는 어렵다- 고 하면서 필사적으로 항전하다 끝내는 전사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삶의 부조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책의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역사적 현장을 두루 살펴야 한다. 또한 눈 앞에 보는 것만으로 안 된다. 눈 앞의 형상의 이면에 가려진 글을 읽어야 한다. 더 나아가 형상에 깃든 옛사람의 숨결(口碑)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부석사에 가고 싶어졌다. 부석사에 있는 무량수전의 부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부처가 비로자니불이 아니고 아미타불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부처가 오른쪽으로 돌아 앉아 동쪽을 향하고 있다.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석사의 경치가 좋고 나쁨이 한 순간 멀어졌다. 내가 알고 있었던 앎의 허상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원효가 혜능에게 “네가 눈 똥이 내가 잡은 물고기다”라는 깨달음을 경계로 삼을 만하다. 모르면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 말하는 사람이 제대로 의식각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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