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때때로 새 작품을 시작하려는데 도저히 진전이 없을 때가 있다.……나는 일어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걱정하지 마. 너는 예전에도 썼고 지금도 쓸 수 있어. 네가 할 일은 단지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는 거야. 네가 아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하나 써봐.’ 그래서 마침내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고 나면 나는 거기서부터 계속 진행해나갔다.

-헤밍웨이

 

예전에 내가 자란 마을은 집집마다 소가 어슬렁거리는 시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빈 섬이 되었다. 고향이라는 인연이 차츰 사그라지면서 시골은 낯선 사람들이 잠깐씩 거주하는 빌라 단지가 되었다. 그래서 고향에 갔다 올 때마다 마음이 다쳤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더 이상 절망할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골이라는 메시지는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얼마나 버티는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손홍규의『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을 곱씹어 읽으면서 자욱한 안개 속에서 흐릿했던 사연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모르게 꼭꼭 숨어 있었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을 사연들이었다. 만약에 사연들이 없다고 한다면 굳이 고향이라는 이야기꽃은 피지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꽃은 마음속에서 반짝반짝 핀다. 그러니 작가 말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이 이야기들은 너무나 절망스러운데도 아름답다. 놀랍게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한다.


작가의 안부 인사를 받을 때마다 시골의 논밭이 떠올랐고, 가난했으나 가난을 모르며 재밌게 놀던 동네 친구들이 떠올랐고, 이른 새벽 아궁이에 불 피우며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에서야 ‘아짐찮은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될 정도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작가의 안부 인사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일상을 마주하면서 환상이 되고 만다.


그런데 아짐찮은 시간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비밀이란 단순히 말하면 우리가 언제까지나 환상적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살 수도 없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환상이 아닌 일상적으로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일상은 소설이 될 수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보면 ‘아름다운 소설’이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소설은 스스로 사전이 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빈틈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소설가에는 삶의 흔적들 모두가 문학과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소설은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삶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다. 다시 말하면 삶이 곧 소설이며 소설이 곧 삶이다. 가령, ‘아짐찮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사전이 아닌 삶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 나는 소설가인데 여전히 내 꿈은 소설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소설은 우리네 인생을 담은 이야기꽃이다. 동시에 소설을 통해 글쓰기에 대해 회의하는 작가의 모습을 진솔하게 볼 수 있다.


매번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작가 자신의 내면 고백을 들으면서 진실한 문장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었다. 살다보면 우리 몸 어딘가에는 고통이 박혀 있을 것이다. 몸이 애써 품고 있는 상처와 아픔을 들여다보면 몸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삶의 육중한 무게를 견뎌내면서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다쳐 더욱 몸이 아프다는 걸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절망도 그러하다. 절망을 깊이 들여다보면 사랑에 대한 반성에 가깝다는 것이다. 해서 더욱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읽는 내내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인간이 되어야 하는 너무 아름다운 삶의 비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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