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외로울 때가 있다. 무엇을 해도 그렇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외로움은 정말이지 외롭지 않다. 그보다는 보다는 가슴 한구석으로 휑한 바람이 분다. 그 빈자리에 잡초들이 무성해져 꽃다운 꽃 한 번 피지 못하고 수그러든다. 이처럼 내 안에 깃든 삶의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공지영의 산문집『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읽고 나니 답답했던 명치부분이 오랜만에 소통된 느낌이다. 그녀의 울림은 묵직한 성찰로 되돌아 왔다. 삶이 의욕이 없어진다면 늙어가고 있다고 하던데 그녀의 글은 늙음에 대한 변명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그녀는 놀랄 만한 말을 한다. 즉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후에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밋밋한 일상은 그렇지 못한다. 그녀처럼 삶의 절묘한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만다. 시인 브레히트가 말했듯 ‘죽은 물고기만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어느 순간 우리는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놓아버린 손에 대한 허허로움에 차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한계에 놓인다.
그녀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10년 만에 나온 산문집은 말 그대로 10년 동안 그녀의 자서전이었다. 과거 그녀의 삶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은 두근거렸다. 작가 공지영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한 개인의 일상을 만나는 일은 소설보다 더욱 소설다운 감흥이 있었다. 그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과거에 몰입하고 나서 정말로 외로운 자신을 발견해냈다.
이 책에서 J는 그런 사람인지 모른다. 그녀는 J에게 편지를 쓰면서 말 걸기를 하고 있다. J와 삶을 공유하면서 상처받았던 지난날을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때로는 처연하면서 때로는 천진난만하게 그리고 때로는 유희 가득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간절함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가령,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한 자신의 파란만장한 아픔을 허물없이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눈물이 남아있지 않다고 오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이런 오만함이 자칫 잘못하면 그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타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서로가 기대고 경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질투하고 경계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그녀는 글을 쓰면서 삶의 진실을 깨달았다. 즉 이모두가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는 이 땅에 행복해지려고 태어났지 이혼하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것이 그녀가 보내는 매력적인 메시지다.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나서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에게 강렬하게 이제는 삶을 유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이 늘 제멋대로이어서 불안하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삶은 별처럼 반짝거린다는 희망을 그녀는 버리지 않는다. 이 책에서 그녀는 시(詩)와 교감하면서 세상과 이별의 고통을 치료하고 있다. 그녀는 시를 통해서 삶을 관통하는 사색(思索)을 쏟아내는 동시에 사심(私心)을 쏟아낸다. 즉 ‘빗방울은 또 다른 빗방울과 합쳐져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며’ 사색한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가진 모든 외로움과 상처의 빗방울들이 화해와 용서의 바다로 흘러들어 치유되길 바란다’고 사심한다.
이처럼 그녀의 글쓰기는 삶의 매순간 고비마다 진통제였다. 일찍이 루이제 린저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행복해진다면 글을 쓸 수 있겠니? 물었다. 그러면서 너와 나의 행복이 다르다는 것이 공평하다고 했다. 너(니나)의 고단하면서 치열한 글쓰기가 행복이라면 나(니나의 언니)에게 행복은 신문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공지영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외롭다고 불평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사람들은 삶은 미로라고 한다. 미로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치열하다. 그녀의 희망적인 글은 상처와 고통속에 남겨진 이들을 보듬고 있다. 더욱이 이런 감정을 은근하게 다스리며 삶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이르게 한다. 그녀 말대로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지나가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이로 인해 외로움의 정체가 확연히 밝혀진다. 시인 루미의 시 한 구절을 빌리자면 물레방아처럼 울어야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