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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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프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는 전혀 고민해 본 적어 없었던 인생 전체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인공들의 고민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 모두의 절박한 문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래서 단지 머나먼 러시아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는 인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군대에 가려고 한 안드레이 공작은 평화스러운 생각으로 보였다. 전쟁의 반대가 곧 평화라는 오래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안드레이 공작이 바라는 평화는 달랐다. 전쟁을 반대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을 위대한 영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려보면, "보나파르트도 일을 하고 한 걸음씩 자기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는 자유로웠어.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리고 그는 목적을 달성했어."

 

다른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건방진 작자'라고 했다. 혁명을 하는 것은 괜찮은데 권력을 잡고 나서부터는 자유와 평등은 공허한 호언장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그래서 더욱 쓸모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그가 군대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목적, 다시 말하면 자기 의지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자기 의지의 문제는 영웅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인생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않을까?

 

한편, 자신의 의지 없이 방탕했던 피예르는 아내 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투를 벌어야 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프리메이슨의 형제단인 노인과 대화하면서 그토록 거리가 멀다고 느껴진 하느님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가 불행했던 것은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을 모른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하느님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살아가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이 눈에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은 불행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떻게든 불행을 피하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딜레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지혜의 극한인지 모른다. 만약에 하느님이 없다면 굳이 하느님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에 대한 구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최고의 지혜와 진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구원이지 않을까? 최고의 지혜와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정화해야 한다. 이유인즉,"최고의 지혜와 진리는 우리가 마시고 싶어 하는 가장 깨끗한 액체"와 같으며 이 깨끗한 액체를 더러운 그릇에 담아놓으면 깨끗함을 판단할 수 없다. 오직 마음의 양심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은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다. 불행을 사용하다보면 슬픔만 있는 게 아니다. 얼마든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전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적이 동지가 될 수도 있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총과 칼이 없을 뿐 질투와 연민으로 상대방을 구속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는 언젠가 상처라는 부메랑이 되고 만다.


그러면 불행을 사용하는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톨스토이의 시선으로 보면 '역사의 도구'다. 그가 나폴레옹을 역사의 노예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으로는 역사의 도구가 되어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도구에 맞는 역사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새로운 역사학은 관찰 대상이 다르다. 이것은 운동의 절대성을 인간의 이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운동의 연속성을 우리가 자의대로 단편적으로 분할하면서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류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의 미분과 적분이라는 방법을 통해 역사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작가는 전쟁과 사랑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인간이라는 역사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영원한 고통일수도 있다. 그리고 영원한 고통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르면서도 사랑이라는 경이로움을 깨닫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워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좋아하니까 아름다운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은 물방울 같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합쳐지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세상의 고통 속에서, 죄 없이 받는 고통 속에서 삶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가장 커다란 기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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