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  사진 1,2,3 은 Museum SAN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




Museum SAN (뮤지엄 산)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 2길 260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있는 뮤지엄 산에 다녀왔습니다.

2013년 5월 "한솔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2014년에 <뮤지엄 산>이라고 명칭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생존해있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지어졌는데 뮤지엄 이름처럼 정말 산 속에 위치하고 있어 혼자 찾아가기 쉬운 곳이 아니었고 오래 전 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그래서 이제야 가보게 되었답니다.


자작나무길을 따라 입구로 들어가면

  • 웰컴센터,
  • 플라워가든,
  • 워터가든,
  • 뮤지엄 본관,
  • 스톤가든,
  • 명상관 (2019년 개관)
  • James Turrell관 

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가 계속 오는 중이라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건물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물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어서 더 특별한 느낌을 주었고 몽환적 분위기를 더해주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James Turrell 이라는 사람의 설치작품을 전시해놓은 James Turrell 관으로, 안내자를 따라 들어가서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총 세 작품을 보았는데 그 중 두 작품을 보면서 느낀 감상이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그 두 작품이 뭐냐면요,


1. Ganzfeld (위 사진중 1번)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 (complete field)'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어떤 공간에 이르게 되면 왼쪽, 오른쪽, 앞, 뒤의 개념이 사라지고 어디가 이 공간의 끝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저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으리라는 짐작뿐 내 감각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인 것이지요.

나중에 설명과 안내에 따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엄연히 제한된 공간, 보통의 공간 속에 우리가 서 있음을.

이 작품의 주제가 "착각"이라는 설명에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깨달음이랄까요.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도 어쩌면 '착각'이 아닐까 하는. 실제 진실은 가려지고 우리의 감각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겠다는 것이요.


2. Wedgework (위 사진중 2번)

조각케잌을 옆에서 본 것 처럼 사각형이 쐐기 모양 (wedge)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 한쪽 끝은 다른 색의 좁은 면으로 이어져 있는 작품이 보입니다. 밤에 방문이 빠끔이 열려 있고 그 사이로 방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빛을 이용한 작품이라서 이 작품이 설치된 방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빛이 차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안내자로부터 벽을 따라 있는 바 (bar)를 손으로 잡고 따라 걸어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그렇게 따라 들어가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그 어둠에 적응이 되어 내가 있는 위치가 가늠이 되고 어둠이라는 상황이 처음 그 방에 들어올때처럼 두렵거나 당황스럽지 않게 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적응".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속임수, 착각이라는 내용의 앞의 작품보다 이 작품이 더 무서웠습니다. 착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적응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낯설고 거부감을 가지고 경계하던 상황에 나도 모르게 적응되어 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 능력인가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21-05-31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좋아하는 미술관요.
여기도 또 가고싶은데 오랫만에 사진으로 보니 좋네요

hnine 2021-05-31 15:40   좋아요 1 | URL
사진만 주루룩 올렸는데 느낀 점이 많았어요. 비가 주룩주룩, 우산 쓰고 다녀야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감상을 지어내더군요.
바람돌이님 가셨을땐 명상관 있었나요? 이곳은 다른 건축물보다 늦게 2019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James Turrell 관에서의 느낌은 좀 더 첨가해서 써넣을까해요.

몰리 2021-05-31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여기 어딘가 멋지다, 하고 찾아보니 원주에 있네요.
멋져요! 가보고 싶어집니다! 타다오 건축이라고 소개하고 있네요.

hnine 2021-05-31 15:43   좋아요 2 | URL
예,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에 있답니다.
2013년에 지어졌고 2013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인데 2021년에 가보게 되었답니다.
맞아요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어요. 건축에 물, 나무, 돌 등 자연을 끌어들이는게 특징인 건축가요.
몰리님, 여기 꼭 가보시고, James Turrell의 빛으로의 여정도 체험해보시고, 명상관에도 가보시고요.

행복한책읽기 2021-05-31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넘 예뻐요. 운전 가능하면 슈웅 날아갔다 오고 싶은 곳이네요. ^^

hnine 2021-05-31 16:18   좋아요 2 | URL
행복한책읽기님, 저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가보기까지 8년 걸렸네요 ㅠㅠ
비가 와서 더 좋았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 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을 더해주었어요.
꼭 다녀오세요~

scott 2021-05-31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안도 타타오가 설계한 물의 집(명상이 저절로 되는 힐링터)!
에이치 나인님 오월 마지막 휴일 멋지게 보내 셨네요
James Turrell의 빛으로의 여정
시간과 위치에따리 빛의 세기가 조절되는 신비로움

원주에 있다는게 아쉽
매주 가고 싶은뎅 ㅜ.ㅜ

hnine 2021-05-31 16:27   좋아요 1 | URL
사실은 울적한 기분으로 나선 길이었는데 나서기가 주저되어서 그렇지 일단 출발하면 후회하는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위에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만 James Turrell 작품중 Space Division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천장에 보이는 타원이 어느 지점에 가면 타원이 아니라 원으로 보이는 작품인데 이 아이디어를 이용한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던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 가면 천장 가운데 아직도 남아있다고 하네요.
 
분노의 포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세기 발표된 미국 문학 작품들은 제목은 익숙한 것들이 많아도 실제로 책으로 읽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라면 영화 산업이 한창 발달하며 인기 가도를 달릴 때이고 미국은 수익 창출에 유리한 영화 산업이 특히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인기 있는 작품들은 바로 영화로 만들어져서 책 보다 영화로 더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존 스타인벡의 대표 작품중 하나인 <분노의 포도>는 출판한 바로 그해 (1939) 내셔날 북어워드, 다음해 (1940) 퓰리처상을 받음으로써 일찍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1942년 존 포드 감독에 의해 헨리 폰다를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에게 더욱 유명해졌으며 1962년 존 스타인벡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정될때에도 이 소설의 작품성이 언급되었고 지금도 미국 고등학교에서 대학입학을 위한 필독서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다.

산업 자본 주의 바람으로 일부 계층은 막대한 부를 이루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중산층 사람들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살던 미국 1920, 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부 오클라호마주 한 마을에서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그리고 그의 여섯 자녀, 큰 아버지 이렇게 대 식구가 한 집에서 목화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조드 가족의 사는 모습은 이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다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밀어닥쳤고 가뭄과 한파, 모래 폭풍의 자연 재해로 농민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은행으로부터 농사 자금을 대출받아 버텨보지만 가뭄은 계속되고 농사는 흉작으로 이어진다. 결국 은행에 담보로 맡겼던 토지는 빼앗기고 사람이 짓던 농사는 트랙터가 대신함으로써 임금을 덜 들이고 수확을 거두는 농사 방법이 확산되어 간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일자리가 많다는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감행한다. 그동안 수십년 살아오던 터전을 버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로 온 가족이 떠나는 극단의 모험이었다.

한 가족이 땅을 떠났다. 아버지가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이제 그 은행이 땅을 원한다. 토지 회사, 혹은 토지를 소유한 은행은 트랙터를 원한다. 그들은 땅 위에서 평범한 가족들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트랙터가 나쁜 것인가? (...)

우리는 한때 우리 것이었던 이 땅을 사랑한 것처럼 트랙터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트랙터는 두 가지 일을 한다. 땅을 갈아엎는 일과 우리를 땅에서 쫓아내는 일. 이 트랙터는 탱크와 거의 다르지 않다. 둘 다 사람들을 위협하고 상처를 입혀서 쫓아내 버린다. 우리는 이 점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권, 315쪽)

캘리포니아로 가기만 하면 오렌지 농장, 포도 농장에서 얼마든지 일을 하여 돈을 벌수 있고 그러면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 하나로 대가족이 겨우 마련한 트럭을 타고 굶주려 가며, 이주의 수단이지만 수시로 고장을 일으키는 낡은 트럭을 수리해가며,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일정, 즉, 왜 이주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주해갔으며, 이주하여 정착은 어떻게 해갔는지가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은 미국 자국 내에서 시작된 말이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 생존의 위기, 상실의 위기에 닥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주제 때문에 고발의 성격이 짙고 사회적인 목소리가 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읽는 동안 작가의 목적과 의도가 꼭 거기에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무너지는 것보다는 어떡해든 다시 일어날 것 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어한달까.

등 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에 영원히 불이 켜질 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1권, 252쪽)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 거다. 넌 아직 어려서 앞날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겠지만, 난 그냥 지금 이 길만 생각해. 그리고 식구들이 언제쯤 돼지 뼈를 더 먹겠다고 할지, 그런 것만 생각해." (1권, 256쪽)

작품 속 등장 인물 중 가장 믿음과 확신을 주는 인물로 대표되는 것은 젊은 세대인 아들 톰 조드보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였다. 위의 인용문은 앞일이 잘 될까 걱정하는 아들에게 하는 어머니의 말이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걱정과 계획이 아니라 당장 오늘 먹을 끼니라는 현실적인 생각이다. 끼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차원이라고 과소평가하면 안되는 것은 작품의 결말에서 확실해진다.


힘들게 도착한 캘리포니아 땅. 듣던 대로 오렌지 농장, 포도 농장, 목화 농장은 있지만, 따야할 수확물의 양의 몇백배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오는 바람에 일당은 계속 내려가고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끼니나 겨우 면할 정도의 임금으로까지 내려간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농장을 버리고 간 사람들 때문에 과일은 그냥 떨어져 썩어가고, 바로 옆에 통조림 공장이 세워져서 과일은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통조림으로 만들어져 팔려간다. 썩어가는 과일 수확엔 그저 최저 임금을 주고 최소량만 수확할 뿐이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2권, 255쪽)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의 결과는 여러 가지 길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어떤 방향을 선택하여 보여주고 있을까. 

작품 곳곳에서 희망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다고 보였던 것은 결말에서 더 확실한 작가의 목소리로 맺음한다. 비를 피해 들어간 헛간에서 발견한 모르는 한 노인과 조드가의 딸 로져산과 어머니. 인간이 인간과 뭉칠 수 있는 힘, 혼자가 아니라 서로 기대며 일어설 수 있는 바탕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에 있다는,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메시지로도 보일 수 있는 결말이다. 

사용된 언어와 주제 때문에 일부 지역과 단체에서 금서로 지정되고 소각되기도 했었다는 작품.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노아 루스벨트가 읽고서 광팬이 되었다는 작품.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천사백만권 이상 팔렸다는 작품.

개인적으로 결말 부분이 옥의 티 같아 별 네개를 주려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작이라는 생각에 별 다섯개를 주었다.

바로 이어서 작가의 다른 대표작, <에덴의 동쪽>으로 넘어간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1-05-2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부분의 옥의 티....는 유럽 문명에선 ˝시몬과 페로˝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된 장면의 패러디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생각하시면 조금 덜 끔찍하실 겁니다.
<에덴의 동쪽>도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hnine 2021-05-21 05:21   좋아요 0 | URL
옥의 티라 여겼던 이유는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앞의 내용에 비해 좀 감상적이고 억지스런 결말이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시몬과 페로> 그림 보고 왔습니다 ㅠㅠ
책을 읽으면서는 인간에 대한 여성의 근원적 모성 본능, 생명에 대한 애착 등으로 나름 해석하며 넘어갔는데 오히려 그림으로 시각화 된 것을 보니 ‘허걱!‘ 하게 되네요.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존 스타인벡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결말인줄로 알았을텐데, 덕분에 알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살짝 기독교적 메시지를 느꼈는데 <에덴의 동쪽>은 제목에서부터 그런 느낌이 팍 오는데 과연 내용은 어떤지 이제 50쪽 정도 읽었으니 더 읽어봐야겠어요.

scott 2021-05-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 승!
영화보다 원작!

개인적으로 찰리와 함께 한 여행 에세이를 가장 좋아 합니다 (ᐡ-ܫ•ᐡ)

hnine 2021-05-20 22:52   좋아요 0 | URL
찰리가 사람 친구가 아니었군요 ^^
책 소개글 읽어봤더니 저도 딱 좋아할 내용인데 절판.
중고라도 사서 읽으려고요.
scott님, <분노의 포도> 영화도 보셨나봐요. 정말 미국의 웬만한 문학 작품들은 영화화된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scott 2021-05-20 22:54   좋아요 0 | URL
영어 원서가 러프컷으로 출간되어서
소장용으로도 강추
문장도 깔끔합니다.


hnine 2021-05-20 23:04   좋아요 1 | URL
주문하고 왔어요~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5-21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함다. 이 두꺼운 장편을!! 짝짝짝!
영화와 문학은 샴쌍둥이 같은 관계 아니겠습니까?^^

hnine 2021-05-22 13:26   좋아요 1 | URL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면 절대 못했을거예요.
그만큼 내용도 재미있고 책장 넘기게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작가는 이런 사람이 해야하는구나 생각이 들만큼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은 단순히 노력에만 있을것 같지 않고 작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영화로 보고 책으로 읽는건 좋은데 책 부터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기 마련이라고 하던데 아마 책 읽으면서 더 큰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왑샷 가문 몰락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3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 <왑샷 가문 연대기 (The Wapshot Chronicle)>의 후속작이다. 원제는 The Wapshot Scandal 

번역자도 고심하여 '몰락기'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하였겠으나 그러고나니 한 가문이 완전 풍지박산 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주어 은근히 그런 내용을 기대하며 읽었다. 그런데 몰락기라기 보다는 한 가문이 겪어가는 흥망성쇠를 그렸다고, 더 넓은 의미로 보고 싶다. 가족중 누구도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은 없으나 꼭 성공을 이루어야하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이어야 하나.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만 가능한가.

아버지 리앤더의 죽음으로 끝난 왑샷 가문 연대기에 이어, 재정적 도움을 줄 수 없으니 고향 세인트보톨프스를 떠나 각자 생존을 위한 길을 가라는 사촌 고모격인 오노라의 명을 받고 리앤더의 두 아들 모지스와 코벌리가 집을 떠나 그들의 길을 개척해가는 과정이 왑샷 가문 몰락기의 중심 뼈대를 이룬다. 모지스와 코벌리는 결혼하여 그들의 가정을 꾸리지만 그들의 일과 가정 생활, 부부 생활은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 큰아들 모지스는 부유한 후견인을 둔 여자 멜리사와 결혼하여 넓은 저택에 살게 되지만 멜리사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식료품 배달원과 눈이 맞아 혼외정사를 벌이고, 테이프기록원으로 일하게 된 남편 코벌리를 따라 척박한 군사도시 탤리퍼로 내키지 않는 이사를 하게 된 부인 벳시는 장소와 사람 모두에 적응을 못하여 힘들고 불만스런 생활을 억지로 버텨나간다. 성격이 정상은 아닌 것 같은 상사 캐머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벌리는 우연히 의도하지 않게 반미활동위원회에 연루된것이 아닌가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코벌리는 코벌리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 없이 별 소득 없는 삶만 이어질 뿐. 모지스와 코벌리 모두 고향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 영 뿌리를 못 내리고 방황은 계속되지만 이런 중에서도 사회의 유혹에 무릎 꿇거나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며 살아내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삶이란 위험한 도덕적 여정이다. - 존 치버 -

아버지 리앤더는 아들들에게 도덕적이고 신앙의 가치를 강조하는 메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삶이 어차피 위험한 도덕적 여정이라면, 생을 붙들고 사는 방법으로서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것. 그것은 아버지 리앤더의 충고임과 동시에 작가인 존 치버의 목소리라고 해석하면 안될까? 작가 자신이 꼭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알콜중독, 평탄하지 못한 가정생활, 마약, 동성애) 그런 경험에서 얻은 작가의 통찰이랄까 그런 것을 작품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생 말년에 금욕과 절제를 강조했던 톨스토이의 삶이 그러했듯이. 원제 Scandal이라는 단어와도 그렇게 연관지어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책장을 덮고 나니 왑샷 가문의 '몰락기'가 아닌, 매우 다른 관점으로 이 책을 보게 된다. 


왑샷 가문 연대기를 내고 2년 후 이 소설 집필을 시작하여 5년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왜 후속작을 쓰고 싶었을까. 왜 5년의 시간이 걸렸을까.

노벨상을 제외하고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학상을 다 받았다는 존 치버.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문의 몰락기가 아닌, 물질 주의와 인간성 상실로 가는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흔들리는 인간상, 특히 젊은 세대의 분투와 방황을 그리고 싶었다고,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그들은 아직 몰락하지 않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1-05-1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제목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hnine 2021-05-15 05:14   좋아요 0 | URL
Falstaff님 리뷰 읽어보고 왔어요.
존 치버가 더 오래 살아서, 이 책의 다음 후속작을 더 냈더라면 이 책 제목도 바뀌었겠죠? ^^
이 사람 단편을 아직 한편도 못읽은 사람으로서 곧 단편소설의 대가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하나를 배우면 모르는게 열가지씩 생긴다더니, 책도 한권을 읽으면 이어서 읽고 싶은 책이 몇배로 늘어나니 참. ^^

scott 2021-05-1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샵 가문 스토리가 치버 자신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라서 후속작을 오년 뒤에 출간 하게 된 이유도 이모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출간 한 왑샷도 어머니가 돌아가신후에 출간 했고 가족들은 치버가 정신 분열증 증세를 글쓰기로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데요.
치버는 평생 헤밍웨이의 문장력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정작 헤밍웨이는 치버의 단편 이야기를 아주 즐겨 읽었던 애독자였고 나보코프도 치버는 장편 보다 단편! 이라고 평가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카버의 단편이 치버보다 많이 읽혀지고 있지만
치버는 단편! ^ㅅ^

hnine 2021-05-15 05:24   좋아요 0 | URL
작품 해설을 찾아보니 그런 얘기가 써있더군요. 치버 가족 얘기가 많이 들어가있다고요. 특히 엄마인 새러 왑샷은 치버의 어머니가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이라네요. 그렇다면 치버 자신은 여기 나오는 인물중 어디에 가장 많이 반영되었을까 생각해보게되는데 모지스 아니면 코벌리이겠죠?
단편과 장편은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작가 입장에서도 참 다른 장르처럼 취급되나봅니다. 확실히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절제된 길이 속에 강한 임팩트와 여운을 남겨야 하는 단편도 매력있고, 전체적인 구성과 스토리를 치밀하게 엮어나가야 하는 장편도 매력있고요.

서니데이 2021-05-1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작가의 책 같은데, 저는 이 책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몰락기와 스캔들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잘 모르는 책일 때는 hnine님이 리뷰 첫부분에 쓰신 것처럼 제목을 보고 기대하는 것들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이번주 날씨가 더웠는데, 주말엔 비가 오고 있어요.
hnine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hnine 2021-05-15 22:49   좋아요 1 | URL
저도 존 치버의 작품은 이게 처음인데 여기서 끝낼 작가는 분명 아닌 것 같네요. 단편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비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특히 주말에 비가 오니까 좀 처져있던 중이랍니다.

페크pek0501 2021-05-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따라서 읽고 싶은데 이 책은 4백 쪽이 넘네요. 4백 쪽이 넘는 건 안 사려고 맘 먹고 있었는데...ㅋ
너무 유명한 작가라 많이 들었음에도 저는 한 권도 읽지 못했네요.
해서 저도 검색해 보고 한 권 구매해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hnine 2021-05-20 21:29   좋아요 1 | URL
두권 짜리니까 4백쪽 x 2 입니다 ^^
재미있는 책 부터 읽으시고 천천히 읽으세요~
분량이 많지 않아도 끝내는데 오래 걸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 책 처럼 의외로 빨리 읽히는 책이 있기도 하네요.
방금 읽은 분노의 포도 역시 비슷한 분량인데 더 빨리 읽히더라고요.
 


'포도가 그 포도 (grape)야?'

고등학교 때 책 제목을 듣고 생각했다.

'설마, 애들 책도 아니고. 유명한 작가의 장편 소설인데 제목에 먹는 과일 이름을 넣었겠어? 더구나 분노의 포도라니, 말이 안되잖아, 포장도로를 말하는 그 포도 (pavement) 라면 몰라도.'

이후로도 나는 이 책 또는 영화 제목을 들을때마다 갸우뚱하며 한번씩 더 생각해볼뿐이었는데 드디어 오늘 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제목의 포도는 pavement 가 아니라 grape이라는 걸. 

번역본 책이지만 표지에 딱 하니 나와있는데. The Grapes of Wrath 라고.

(이제야 알다니 좀 창피하긴 하다.)






두권 짜리. 지루해도 참고 읽어야지 시작했는데,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눈길을 끈다.


오클라호마 시골의 붉은색 땅과 회색 땅에 마지막 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이미 상처 입은 땅이 빗줄기에 다시 베이지 않을 만큼.

뭐지, 이 감성적이고 시적인 표현은? 상처 입은 땅이 빗줄기에 다시 베이지 않을 만큼?

이렇게 시작하여 1장은 대화없이 배경 묘사만 하고 넘어가는데 연거퍼 두번을 읽었다. 그리고, 원문이 궁금해서 Youtube에 올라와있는 원문 낭독본을 찾아서 앞부분만 들어보았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To the red country and part of the gray country of Oklahoma, the last rains came gently, and they did not cut the scarred earth.

The plows crossed and recrossed the rivulet marks.

The last rains lifted the corn quickly and scattered weed colonies and grass along the sides of the roads so that the gray country and dark red country began to disappear under a green cover.

In the last part of May, the sky grew pale and the clouds that had hung in high puffs for so long in the spring were dissipated.

감옥에서 막 석방되어 나온 주인공 톰 조드가 일자리를 찾아 아버지가 사는 농가로 가기 위해 트럭을 빌려타고 가는 장면이 곧 나온다.

감옥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첫 장면으로 하는 것부터가 이 소설의 큰 줄기를 반영하는 것인가, 넘겨 짚어가며 읽는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태양이 트럭의 그림자를 파고들었다. (18쪽)

이 문장도 그렇고, 아직 몇 페이지 읽지 않았는데도 작가의 세심한 표현과 문장력이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생각보다 덜 지루하게 읽을지도 모른다는 좋은 예감을 가지면서.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1-05-1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옛날에 갸우뚱했었어요. 과일인지 도로인지ㅎㅎ 반갑습니다 ^^ 너무 예전에 읽어서 꼭 다시 읽고싶은 책인데 시간과 능력 부족ㅠㅠ;;;;;;

hnine 2021-05-13 21:48   좋아요 0 | URL
제 경우엔 제가 관심가지기 전에 이미 너무 유명해져있는 책은 때로 더 읽기를 미루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책도 아마 그런 류에 속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에덴의 동쪽>읽으려고 책꽂이에서 꺼내서 작가 소개글을 보니 <분노의 포도>를 먼저 읽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드디어 선택되었답니다.
오늘 우연히 김중미 작가의 신간 관련 인터뷰 글을 보니까 학교 다닐때 읽은 <분노의 포도>가 지금 하는 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더라고요. 이래 저래 이 책과 타이밍이 제대로 맞았습니다.

Falstaff 2021-05-1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안 지루하실 겁니다. ^^

hnine 2021-05-13 21:49   좋아요 0 | URL
옙! 선배님! ^^
알라딘엔 이런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좋아요.
잘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왑샷 가문 몰락기 리뷰도 써야하는데 미루고)

바람돌이 2021-05-14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워낙에 유명하고 사회사적으로도 유명해서 미국역사관련 책만 보면 소개가 되는.... 그래서 읽지도 않았으면서 꼭 읽은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ㅎㅎ 좋은 독서 되세요. 저도 언젠가는 도전할거예요. ^^

hnine 2021-05-14 04:34   좋아요 2 | URL
그렇죠? 귀에 이미 익은 제목이고 그 의의도 알고 있으니 언제든 읽기만 하면 되는 책, 그래서 급할것 없다고 미루게 되는 책 ^^
요즘은 또 너무 짧은 책은 읽기 싫고 두툼한 책이 좋더라고요. 이것 다음 읽어야겠다 미리 정해놓은 에덴의 동쪽도 2권짜리, 그리고 역시 익숙한 제목과 내용이네요. 저의 책 읽는 경향도 참 종잡을 수 없습니다.

페크pek0501 2021-05-1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명작이라는 것, 많이 들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나인 님이 읽고 리뷰 올려 주시면 참고해 사야지, 라고 생각하는 페크입니당~~

hnine 2021-05-15 05:29   좋아요 0 | URL
이거 재미있네요. 페이지가 쑥쑥 넘어가요.
고등학교 아이들 권장독서 목록 보면 꼭 들어가는 책 중 한권이지요. <앵무새 죽이기>처럼요. 읽어보면 과연 그렇겠다 생각이 들어요.
두툼한 책 두권짜리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읽다가 마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읽고 꼭 리뷰 올리겠습니다~

초딩 2021-05-15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연필 때문에 읽고 싶은 책입니다 ㅎㅎㅎ :-)

hnine 2021-05-15 22:38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인지 못알아듣고 갸우뚱~ ㅠㅠ )
 
왑샷 가문 연대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2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치버는 사실 장편 보다 단편 소설을 훨씬 많이 쓴 작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 헨리가 그렇고 앨리슨 먼로, F.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러한데 존 치버는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인 17세에 첫 단편 <퇴학>을 시작으로 생전에 157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1912년 매사추세츠주 퀸시에서 부모의 원치 않는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파산과 자살 시도, 부모의 결혼 생활 파경, 학교에서 퇴학 등으로 순탄하지 않은 성장기를 거친 그는 고등학교 퇴학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몇몇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불우하고 좌절스런 삶의 경험은 그의 문학적 동기 부여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그의 문학의 소중한 자료 역할을 하였다. 

소설이란 예술이며, 예술은 혼돈에 대한 승리 - 존 치버 -

고등학교 재학시 공부에 관심도 없었지만 담배를 피다 적발된 것을 계기로 퇴학을 당했다. 17세때 그 경험을 <퇴학>이라는 단편으로 써서 잡지사에 보내 채택된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첫발로 성공의 사인이었고 좌절과 방황 끝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대 그의 나이 40대에 이르기까지 단편 소설만 발표해오다가 장편 소설가로 인정받고 싶은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 첫 변신이 이 소설 <왑샷 가문 연대기>였고 비평가들로부터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대하던 소설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중 하나이다. 탄탄한 플롯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에피소드의 나열로 읽히기 쉬운 내용이라는 것은 어쩌면 제목에서부터 시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가문의 연대기라니까.

나는 플롯을 가지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나는 직관, 이해력, 몽상, 개념으로 작품을 쓴다. - 존 치버 -

에피소드들의 나열일 뿐이라는 것은 비평가가 아니라도 읽어보면 알수 있지만 그것은 작가가 선택한 방식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존 치버 그가 그려내고 싶은 세계는 플롯에 짜여 촘촘하게 흘러가는 방식이 아니라 구비구비 흘러가는 물처럼 무계획 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만하게 보이기도 하는 방식 속에서 더 잘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발음이 입에 잘 안익다가 책을 다 읽을 때쯤 겨우 제대로 발음하게 된 <왑샷 가문 연대기> (자꾸 '왓샵'이라고 읽었다) 는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어촌 마을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온 왑샷 집안의 연대기를 다룬 내용이다. 성경의 한 구절처럼 누구는 누구를,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하는 식의 서술이 나오기도 하는데 중심 인물은 리앤더 왑샷, 그리고 그의 두 아들 모지스 왑샷과 코벌리 왑샷이다. 흥망성쇠, 그중 흥과 성이 망과 쇠로 이어지는 것은 아버지 리앤더 세대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아들들 모지스와 코벌리는 고향 을 떠나 뉴욕, 하와이등을 다니며 자수성가를 꿈꾸지만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의도되로 되어갈지. 아버지인 리앤드 왑샷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작품이 나오고서 7년 후 발표된 <왑샷 가문 몰락기>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존 치버를 일컬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는데 그 말은 어쩌면 이 소설보다는 그의 단편소설에서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장편소설에서는 그런 선입견이 오히려 작품을 제대로 보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산만한 에피소드의 이어짐으로 지적된 바 있는 작품에서 이야기꾼 작가의 능력을 찾을 기대를 하고 읽는 것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된 문장이긴 하지만 그가 문장 표현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곳이 읽아보니 꽤 여러 곳 있었다.


나지막이 뜬 태양을 가리며 구름이 지나가자 계곡이 어두워지고, 식구들은 순간적으로 크게 불편해진다. 마치 마음이라는 대륙이 어둠에 잠길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처럼. 바람이 기운을 북돋워 주자 그들은 자신의 회복 능력을 새로이 인식한 사람들처럼 모두 기분이 좋아진다. (51쪽)


단지 태양이 구름에 살짝 가려졌다가 지나가는 장면일 뿐인데 정작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이 장면을 이용한 사람들의 분위기 묘사라는 걸 알수 있는 대목이다.

리앤더 왑샷이 평소에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에서 낭독해달라고 부탁한 문구도 인상적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의 연설문이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내가 예언했듯이, 우리의 이 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으며, 이제 공기 속으로 허공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들이며, 우리의 하찮은 삶은 잠으로 완성된다.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중 프로스페로의 대사 -

'이제 우리의 잔치는 끝났다 (Our rebels now are ended.)' 는 말의 유래를 알게 되기도 하는 구절이다.

이 문구는 리앤더 왑샷의 장례식에서 아들 코벌리에 의해 낭독된다.

이어서 발표된 <왑샷 가문 몰락기>는 제목이 결론을 이미 말해주고 있을지 모르지만 결론만 중요한게 아니니까, 경로와 과정이 더 의미있을 수 있는게 인생이니까, 이어서 읽어보기로 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는 잘 알지만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읽어본 적 없다. 영화로 보든가 읽든가 해야겠다. 그리고 존 치버의 단편들도 꼭.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1-05-08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놈의 플롯이 문제입니다.ㅋ 맞아요. 처음엔왓샵. 그러나 욉샤.발음이 의외로 어렵승다.ㅠ

hnine 2021-05-09 04:59   좋아요 1 | URL
학교에서 배웠잖아요? 소설의 3 요소 중 하나가 플롯이라고.
플롯을 무시할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 정도 인정을 받은 작가의 경우엔 그만한 주관이 있어서 채택한 방식이라고 봐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저 책 뒤에 번역자의 해설이 나오는데 예전엔 안읽고 넘어갔던걸 요즘은 해설까지 다 읽을 때가 많아요. 해설 읽으면서 배우는게 많더라고요. 작가 연보로만 알 수 없었던 작가에 대한 사실도 좀 더 알수 있고요.
예전에 권여선 작가가 그러던데 단편과 장편은 완전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도 좋다고요. 독자의 입장에서도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매력은 따로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 작가의 단편을 꼭 읽어보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1-05-0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고등학교에서 담배 피다 퇴학당했다는데서 깜놀입니다. 미국도 그럴때가 있어군요. ㅎㅎ
항상 좋은 책을 소개해주시는 hnine님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hnine 2021-05-09 05:03   좋아요 1 | URL
담배 피운 것 만은 아닌 것 같고 ( 제 짐작에 ^^) 워낙 미운 털 박혀 있는 상황에서 학교 규율에 명시 되어 있는 위반 행위를 하다가 딱 걸린게 아닐까...^^
제가 생일때마다 생일선물로 민음사와 펭귄클래식 세계문학시리즈를 한 세트씩 선물로 요청해서 받기를 몇년 했더니 (남편에게 요청) 세계문학 책들이 꽤 되어서, 요즘 핫한 책들 보다 문학전집 속의 책들을 주로 읽게 되네요. 그래도 아직 못 읽은 책이 수두룩 하지만요.
바람돌이님도 주말 잘 보내시길. 여기는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냥 바람이면 좋은데 미세먼지를 잔뜩 담고 있는 바람이라니 ㅠㅠ

scott 2021-06-04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존 치버 단편집들 완독의 문턱에 들어가셔야 할것 같습니다.
이달의 당선작 !
추카~추카~~

hnine 2021-06-06 04:3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제가 한 작가 작품 파헤쳐 읽는 것 좋아하기도 하고요.
scott님도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리고, 감사합니다~

초딩 2021-06-0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6-06 04: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은 이달의 리뷰와 이달의 페이퍼 더블 당선!! 축하합니다.